본문 바로가기
연예

[수요칼럼] 영화적 상상력과 역사적 책임 : JFK와 암살자(들)가 마주한 진실

역사적 비극을 스크린으로 소환하는 일은 언제나 거대한 사회적 파장을 동반한다. 국가의 공식 발표에 의문을 품고 그 이면에 숨겨진 실체를 파헤치는 영화들은 관객에게 지적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동시에, 걷잡을 수 없는 이념적·사회적 소용돌이로 몰아넣기도 한다.

[수요칼럼] 영화적 상상력과 역사적 책임 : JFK와 암살자(들)가 마주한 진실

박노광 대구경북소비자연맹 정책실장

역사적 비극을 스크린으로 소환하는 일은 언제나 거대한 사회적 파장을 동반한다. 국가의 공식 발표에 의문을 품고 그 이면에 숨겨진 실체를 파헤치는 영화들은 관객에게 지적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동시에, 걷잡을 수 없는 이념적·사회적 소용돌이로 몰아넣기도 한다.

1991년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올리버 스톤 감독의 명작 <JFK>와 최근 1974년 광복절 날 장충동 국립중앙극장(현 국립극장)에서 발생한 대통령 영부인 피격 사건을 다뤄 거센 사회적 논란의 중심에 선 허준호 감독의 국내 영화 <암살자(들)>는 이러한 영화적 현상의 양극단을 보여준다. 두 작품 모두 국가 수뇌부의 비극적 죽음과 음모론이라는 뼈대를 공유하고 있지만, 그 지향점과 파급력은 판이하다.

올리버 스톤 감독은 1963년 미국 텍사스주 달라스에서 발생한 존 F. 케네디 대통령 암살 사건의 배후로 특정 개인을 지목하지 않았다. 대신 CIA, FBI, 군산복합체로 이어지는 거대한 시스템과 카르텔의 공모 구조를 고발했다. 이는 미국 현대사 속에서 끊임없이 제기되어 온 국가 안보국의 폭주라는 거대 담론과 맞닿아 있었으며, 미국 민주주의 시스템의 어두운 이면에 대한 철학적·정치적 고발에 가까웠다.

반면, 한국 현대사의 민감한 비극인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다룬 국내 영화 <암살자(들)>의 시각은 이와 다르다. 이 영화는 최고 권력자 개인과 정권의 정통성을 직접 무대에 올리며, ‘정권 유지를 위해 영부인까지 희생시켰을 수도 있다’는 식의 극단적인 가설을 은연중에 주입하려 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이는 시스템의 구조적 문제를 고발하는 차원을 넘어, 실존 인물과 유족이 직결된 매우 민감한 국내 정치 투쟁의 영역에 직간접적으로 불을 지피는 성격을 띤다. 결과적으로 이는 소모적인 정쟁을 유발하며, 표현의 자유가 타인에게 가하는 또 다른 폭력으로 변질될 위험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물론 스톤 감독도 과거 허구와 실화를 교묘히 섞어 관객이 극 중 내용을 사실로 오인하게 만들었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그러나 거대한 군산복합체를 향한 미국의 구조적 고발과 한국 현대사의 정점인 최고 권력자를 사선에 올리는 시도는 그 맥락이 완전히 다르다. 사회적 파장의 밀도와 유족 및 이해관계자에게 미치는 충격의 성격이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렇다면 영화 개봉 당시 사회적 반응은 어땠을까? 흥미롭게도 미국 역시 <JFK> 개봉 당시 극심한 사회적 갈등을 겪었다.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등 미국의 주류 언론과 기성 학계는 올리버 스톤 감독을 향해 “증거도 없는 무책임한 음모론으로 대중을 선동하고 공적 신뢰를 무너뜨린다”며 비판했다. 또한 케네디 대통령의 유족 역시 불쾌감을 숨기지 않았다.

반면 진보 진영은 미 정부가 공식 발표한 <워런 보고서>야말로 거짓말이라며, 영화를 “국가 권력이 감추어 온 진실에 의문을 품게 만드는 충격요법”으로 추켜세우며 보수와 진보가 치열한 문화 전쟁을 치렀다.

그러나 두 사회가 이 갈등을 소화해 낸 방식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미국의 경우 거센 비판 속에서도 “정부 비밀문서를 공개하라”는 대중적 여론이 폭발했고, 이는 이듬해 미 의회가 <JFK 기록공개법>을 제정하는 등 제도적 변화로 이어졌다. 사건 발생 약 30년 뒤라는 시간적 거리감 속에서 진상 규명과 기록 검토가 축적된 상태의 예술적 재해석이었기에 가능했던 진화였다.

반면 한국의 <암살자(들)>을 둘러싼 논란은 여전히 진영 논리에 매몰된 감정적 소모전으로 치닫고 있다. 여전히 정치적·사회적 평가가 민감하게 엇갈리는 한국 현대사의 아픈 상흔을 직접 건드리면서 갈등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폭발했다. 영화 내용에 대한 반발은 총탄 자국 티켓 같은 마케팅 윤리 논란으로 번졌고, 주연 배우의 자택 앞 시위 등 출연진을 향한 직접적인 압박으로 확전되는 양상이다.

두 영화는 우리에게 대중 예술이 지닌 ‘표현의 자유’와 ‘역사적 책임’이라는 무거운 화두를 던진다. 과거 미국이 <JFK>를 통해 소모적 논쟁을 넘어 국가 기록물 공개라는 민주주의적 성숙으로 나아갔듯, 오늘날 한국 사회 역시 아픈 현대사를 다루는 창작물의 자유를 존중하되, 그 상처를 소비하는 방식과 윤리적 태도에 대해 깊이 있는 성찰이 요구된다.

역사의 진실은 단단한 침묵 속에서 밝혀지지 않는다. 때로는 대담한 영화적 상상력이 변화의 불씨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상상력이 타인의 깊은 상처를 가벼운 소모품으로 전락시키고 극단적인 진영 논리의 도구로 악용될 때, 그것은 더 이상 예술의 영역에 머물 수 없다. 왜냐하면 표현의 자유가 또 다른 폭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기사 공유하기
페이스북X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i

댓글

0

후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이 기사에 첫 의견을 남겨보세요.

댓글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