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과 연대로 : 전라도 혐오에 맞서는 사람들 ④청소년 독립언론 토끼풀
교실 속 혐오 일상화...대다수 침묵해
경쟁·서열화 교육이 차별과 혐오 부추겨
“혐오 막으려면 학교·사회문화부터 바꿔야”
청소년 독립언론 토끼풀은 지난 5월 전국교직원노동조합로부터 제35회 참교육상을 받았다. 사진제공 교육희망
“전라도에 가려면 여권을 챙겨야 한다는 말을 평소에도 농담처럼 사용해요. 전라도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했다는 뉴스가 나오면 ‘전라도는 원래 그렇다’는 식으로 이야기하죠. 이런 생각이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학생은 있어도 그렇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예요.”
서울 지역 청소년 독립언론 ‘토끼풀’ 문성호(17) 편집장이 전한 교실의 현실이다. 고등학교 1학년인 문 편집장은 전라도 혐오 표현과 5·18민주화운동을 왜곡하는 발언들이 일부 학생의 일탈을 넘어 또래 집단의 일상적인 대화에 스며들었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잘못된 표현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를 제지할 수 없다는 데 있다. 또래문화 특성상 분위기를 주도하는 몇몇 학생들이 혐오 표현을 사용하면 나머지 아이들은 침묵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함께 웃거나 동조할 때 더 재밌고 멋지다고 생각해 따라하는 학생도 적잖다. 그런 상황이 반복되면서 혐오 표현에 무감각해지고 자연스럽게 일상어로 쓰인다는 게 문 편집장의 설명이다.
이 같은 현상의 기저에는 소셜미디어(SNS)가 있다. 문 편집장은 “수익을 위한 전라도 혐오 콘텐츠가 또 다른 혐오를 낳는 악순환을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라도와 관련한 부정적 사건이 발생하면 SNS에서 조회수와 수익을 얻기 위해 이를 왜곡하거나 편견을 줄 수 있는 정보를 확대·재생산하고, 이를 접한 청소년들이 지역에 대한 잘못된 인식으로 혐오 표현을 자연스럽게 사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예컨대 전라도 지역에 살인사건이 일어났을 때 어느 지역에서나 발생할 수 있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전라도에 대한 부정적 정보가 이미 머릿속에 있기 때문에 ‘전라도만의 문제’로 받아이고 이를 다시 혐오 표현을 사용하는 근거로 사용하게 되는 구조다.
대상만 다를 뿐 장애인이나 여성 등을 향한 혐오 표현도 교실에서 일상적으로 사용된다. 배재고 야구부의 혐오 응원 사태 직후인 지난 7월 토끼풀이 청소년 164명을 대상으로 혐오 표현 실태를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53.7%가 하루 한 차례 이상 혐오 표현을 접한다고 답했다. 또 79.3%는 교실에서 혐오 표현을 경험한 것으로 조사됐다. 혐오 표현을 접했을 때 침묵한다는 응답은 56.7%, 자리를 피한다는 응답은 37.2%였다.
청소년 독립언론 ‘토끼풀’이 청소년들의 혐오 표현 실태와 배재고 민주시민교육의 문제점을 다룬 기사 및 편집장 칼럼.
문 편집장은 단연코 학생들에게 잘못을 돌리는 태도는 번지수를 잘못 짚은 거라고 일침했다. 결국 혐오를 가르친 건 어른들이기 때문이다. 경쟁과 서열화를 당연하게 여기고 여기에서 파생된 차별과 혐오까지 용인되는 사회적 분위기가 고스란히 학교로 옮겨졌을 뿐이란 거다. 문 편집장은 “바로 옆에 있는 친구조차 성적으로 평가하고 교실에서 차별받는데 자신이 속하지 않은 집단이라고 다르게 대하겠느냐”고 꼬집었다. 혐오 표현을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놓고도 배재고 야구부의 혐오 응원처럼 사건이 발생한 뒤에야 학생들에 비난과 훈계에 나서는 대응 방식이 잘못됐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배재고 응원 사태 이후 배재고 학생을 대상으로 한 ‘민주시민교육’이 대표적인 예다. 당시 토끼풀은 배재고 학생들 대부분이 교육 시간에 잠을 잤다는 사실을 보도, 민주시민교육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해 파장을 일으켰다. 문 편집장은 “당시 보도는 학생들을 비난하기 위한 게 아니라 문제가 발생한 뒤 급하게 마련된 교육의 한계를 짚기 위해서였다”고 설명했다.
문 편집장은 “평소 혐오와 차별이 왜 잘못됐는지 충분히 가르치지 않다가 사건이 발생한 뒤에야 학생들을 훈계하고 처벌을 강조하는 방식은 오히려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기보다 비난과 처벌의 책임을 혐오의 대상이 된 집단에 돌리면서 해당 집단에 대한 적대감이 더욱 깊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보다는 혐오와 차별이 왜 잘못됐는지를 꾸준히 가르치되, 무조건 하지 말라고 아니라 왜 잘못됐는지를 학생들과 계속 토론해야 한다는 게 그의 대안이다.
문 편집장은 “교육의 분위기가 변하면 학교의 분위기가 변하고 학생들 사이의 분위기 자체도 당연히 변할 거라고 생각한다”며 “혐오와 차별이 반복되는 교육 환경과 사회 분위기부터 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박소영기자 psy1@mdilbo.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