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
원전·핵심 광물 협력 강화하기로
이재명 대통령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국빈 오찬을 함께한 뒤 포옹하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의 이번 방한은 2017년 취임 이후 처음이다. /청와대 제공
이재명 대통령은 한국을 방문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3일 청와대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호르무즈 해협 내 안전한 해상 수송로 확보를 위해 협력하겠다는 (양국 정상의) 의지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확대 정상회담 모두 발언에서 “중동 전쟁의 여파가 국제 질서를 뒤흔들고 있다”며 “위기 대응을 위한 공동의 협력 방안을 모색하길 희망한다”고 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호르무즈를 포함해 폭격과 폭력이 진정되도록 해야 한다”며 “헤게모니를 원하지 않는 국가, 현재의 예측 불허 상황을 우려하는 국가들이 협력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회담 후 공동 언론 발표에서 이 대통령은 “(양 정상은) 중동 전쟁이 야기한 경제 및 에너지 위기에 공동 대응하고자 정책 경험과 전략을 공유했다”고 전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전 세계적으로 상황이 상당히 불안정한 가운데 다자주의적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미국이 주도하는 해법보다는 다자적 해결책을 모색하겠다는 취지다.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달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군함 파견 요구를 거절했지만, 이후 프랑스 국방부는 “교전 중단 후 호르무즈 해협에서의 항해 재개를 조직”하겠다며 한국 등 세계 35국 합참의장을 초청해 화상회의를 열었다.
한국과 프랑스의 수교 140주년을 맞아 이뤄진 이번 회담을 계기로 양측은 양국 관계를 ‘글로벌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하고, 협정 3건과 양해각서·협력의향서 11건을 체결했다. 한국수력원자력과 프랑스 국영 원전 기업 오라노는 원자력 연료 공급망 강화를 위한 협력 양해각서를 교환했다. 양국 정부는 ‘핵심 광물 공급망 협력 의향서’에 서명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3일 정상회담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에게 자리를 안내하고 있다. /뉴스1
李 “오랜 친구”… 마크롱, 한강 인용 “금실로 이어진 관계”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이번 국빈 방한은 2017년 취임 후 9년 만의 첫 한국 방문이다. 이 대통령은 3일 정상회담 뒤 공동 언론 발표에서 “양국 관계를 ‘글로벌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하기로 했다”며 “양국 관계를 미래지향적 방향으로 발전시키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담긴 공동 성명을 채택했다”고 밝혔다. 2004년 맺은 ‘21세기 포괄적 동반자 관계’를 22년 만에 격상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한·영 수교 140주년이 되던 2023년 영국과 처음 글로벌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었고, 프랑스와도 올해 같은 단계로 관계를 격상하게 됐다. 세계 질서 전반을 함께 논의하는 관계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당초 이 대통령과 마크롱 대통령은 이날 오전 10시 20분부터 30분간 비공개 소인수 회담을 할 예정이었으나, 실제로는 일정보다 40여 분가량 길어졌다. 이에 대해 마크롱 대통령은 “저희가 얼마나 많이 국제 위기에 대해 이야기를 했는지 모른다”며 “대한민국과 프랑스는 다자주의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고 유엔(UN)이 지향하는 역할도 인정한다”고 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오는 6월 프랑스 에비앙에서 열리는 G7(주요 7국) 정상회의에 이 대통령을 초청했고, 이 대통령은 이를 수락했다. 프랑스는 올해 G7 정상회의 의장국이다.
한국과 프랑스는 이날 3개 협정 개정안을 체결하고, 11개 양해각서(MOU)와 협력 의향서를 교환했다. 양국은 우선 한국수력원자력과 프랑스 국영 원전 기업인 오라노 간 MOU 교환을 통해 원자력 연료 공급망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한국은 핵연료의 30%가량을 러시아에서 수입하는데, 오라노는 세계 2위의 우라늄 생산 기업이다. 청와대는 또 다른 프랑스 원자력 기업 프로마톰과도 조만간 양해각서를 서명·교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양국 정부는 ‘핵심 광물 공급망 협력 의향서’도 교환했다. 프랑스의 정련 기술과 한국의 제조·비축 경험을 결합해 배터리 등에 쓰이는 핵심 광물 프로젝트를 공동 발굴하기로 한 것이다. AI·반도체·양자 공동 연구도 진행하기로 했다. 워킹홀리데이 참여 연령을 기존 18~30세에서 18~35세로 상향 조정하는 내용의 협정 개정에도 서명했다.
이재명 대통령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3일 청와대에서 확대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대통령은 “우주·방산 등에서도 상호 보완적인 협력을 더 확대하겠다”며 “양국 유산청의 양해각서 체결은 대한민국 종묘와 프랑스의 생드니 대성당 등 유구한 문화유산을 세계인에게 알릴 기회가 될 것”이라고 했다. 양국은 관계 격상에 따라 양국 교역액을 지난해 150억달러(약 22조6000억원)에서 2030년까지 200억달러까지 늘리기로 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소고기·가금류·주류 교역도 논의했다고 밝혔다.
정상회담 후 양 정상은 정통 한식으로 국빈 오찬을 했다. 프랑스 국가 표어인 자유·평등·박애를 의미하는 삼색 밀쌈 등이 나왔다. 이 자리에서 이 대통령은 “프랑스는 오랜 친구이자 동료”라며 “산업화 과정에서도 중요한 조력자 역할을 했다”고 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한국어로 “안녕하십니까”라고 말하며 “한·프랑스 관계는 우리의 심장을 잇는 ‘금실’과 같다”고 했다. 한강 작가가 2024년 12월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에서 여덟 살 때 썼다며 소개한 “사랑이란 무얼까?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주는 금실이지”라는 시 구절을 인용한 것이다.
오찬에는 한·프랑스 수교 140주년 계기 프랑스 측 명예 대사인 K팝 그룹 스트레이키즈 멤버 필릭스와 배우 전지현도 함께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손경식 CJ그룹 회장,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류진 풍산 회장, 이부진 호텔신라 대표 등도 참석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날 오후 ‘한·프랑스 경제계 미래 대화’에서 “프랑스는 미국보다 예측 가능하다”며 “우리는 법치국가로서 국제법을 준수하고, 관세도 미국처럼 하지 않는다”고 했다. “한국이 프랑스에 더 투자해야 한다”는 취지였지만 트럼프 미 행정부를 겨냥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연세대 강연에서도 마크롱 대통령은 “미국이 국제 질서 원칙을 스스로 흔드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특정 국가나 정권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군사 개입을 정당화하기 시작하면 국제법을 지키려는 노력 자체의 신뢰가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1박 2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이날 밤 출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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