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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폭 피해·차별 넘은 일본 안타왕…‘하늘의 야구장’으로

일본프로야구(NPB) 통산 최다 안타 기록을 보유한 ‘안타제조기’ 장훈(일본명 하리모토 이사오)이 9일 별세했다. 향년 86세. 일본 TBS는 10일 장훈이 전날 오후 5시쯤 도쿄 한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고 보도했다.

원폭 피해·차별 넘은 일본 안타왕…‘하늘의 야구장’으로

재일동포 장훈 별세

2009년 3월6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아시아라운드 한국-대만전에 앞서 재일동포 야구인 장훈이 시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프로야구(NPB) 통산 최다 안타 기록을 보유한 ‘안타제조기’ 장훈(일본명 하리모토 이사오)이 9일 별세했다. 향년 86세. 일본 TBS는 10일 장훈이 전날 오후 5시쯤 도쿄 한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고 보도했다.

장훈은 1959년부터 1981년까지 NPB에서 23시즌을 뛰며 통산 3085안타를 기록했다. NPB에서만 3000안타를 넘긴 선수는 장훈이 유일하다.

재일동포 2세인 장훈은 1940년 일본 히로시마에서 4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네 살 때 화상 사고로 오른손을 크게 다쳐 장애가 남았고, 초등학교 5학년 때 야구를 시작하면서 왼손으로 던지고 치는 법을 익혔다.

프로야구 선수를 꿈꾸게 된 데는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난 뒤 어머니 박순분씨가 곱창구이 포장마차를 하며 자식들을 키웠다. 장훈은 히로시마 원정을 온 요미우리 선수들이 스테이크를 먹는 모습을 보며 “어머니에게도 저런 음식을 먹여드리고 싶다”고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오사카 나니와상고를 거쳐 1959년 도에이(현 닛폰햄)에 입단한 장훈은 계약금 200만엔을 봉투도 뜯지 않고 어머니에게 건넸다.

프로 첫해부터 신인왕을 받은 장훈은 일본 야구를 대표하는 타자로 성장했다. 1959년부터 1978년까지 20시즌 연속 100안타 이상을 때렸고, 7차례 타격왕과 18차례 올스타 선정, 16차례 베스트나인을 기록했다. 1962년에는 퍼시픽리그 최우수선수(MVP)에 오르고 도에이의 일본시리즈 우승도 주도했다.

1976년 요미우리로 이적한 뒤에는 오 사다하루(왕정치)와 ‘OH포’를 이루며 중심타선을 이끌었다. 두 사람은 1976~1977년 요미우리의 센트럴리그 2연패에 힘을 보탰고, 평생 절친한 관계를 이어갔다.

장훈은 1980년 5월28일 한큐전에서 통산 3000번째 안타를 홈런으로 장식했다. 경기 후에는 어머니와 함께 그라운드에 나와 관중의 환호에 답했다. 장훈은 통산 타율 0.319, 3085안타, 504홈런, 319도루를 남기고 1981년 은퇴했다. NPB에서 500홈런과 300도루를 모두 기록한 선수도 장훈이 유일하다.

장훈은 재일동포로 차별을 겪으면서도 오랫동안 한국 국적을 유지하며 자신의 뿌리를 숨기지 않았다. 이후 일본 국적을 취득했지만 2024년 인터뷰에서도 “재일교포로서 자부심을 품고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히로시마 원자폭탄 피폭자이기도 했다. 다섯 살이던 1945년 8월6일 폭심지에서 2.3㎞ 떨어진 집에서 어머니, 작은누나와 함께 피폭됐다. 시내에서 근로동원 중이던 큰누나는 심한 화상을 입고 가족과 재회했지만 결국 숨졌다.

장훈은 오랫동안 피폭 경험을 공개적으로 말하지 않았지만 말년에는 전쟁과 원폭의 참상을 알리는 데 나섰다.

은퇴 후에는 TBS 야구 해설위원으로 장기간 활동했다. 잘못한 선수에게 던지는 호통인 ‘가쓰’(喝·갈)가 그의 상징처럼 자리 잡았다.

한국 야구와도 인연이 깊었다. 1982년부터 2005년까지 한국프로야구 총재특별보좌를 맡았고 재일동포 선수들의 한국 진출을 도왔다. 체육 발전 공로와 한·일 양국의 가교 역할을 인정받아 1980년 체육훈장 맹호장, 2007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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