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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과학

우주의 온도에서 돌아가는 최고 성능 양자컴…연세대에 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최근 양자컴퓨터를 '다음 인공지능(Next-AI) 시대'로 이름 붙였다. 양자컴퓨터는 어떻게 AI의 다음 단계가 되는 걸까? 신약 개발 분야를 보면, AI는 이미 산업 표준으로 활용되고 있지만, 한계도...

인천 연수구 연세대학교 국제캠퍼스 양자컴퓨팅센터에 설치된 국내 최초 IBM 상용 ‘퀀텀 시스템 원’. photo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일반 컴퓨터는 모든 정보를 0또는 1로 처리한다. 이걸 비트라고 한다. 예를 들어 4비트짜리 컴퓨터는 0000, 0001, 0010… 이런 식으로 16가지 상태를 표현할 수 있는데, 한 번에 그중 딱 하나만 처리할 수 있다. 그릇은 크지만 한 번에 하나씩만 담는 구조인 것이다. 슈퍼컴퓨터는 이 작업을 1초에 100경번 반복하는 '빠른' 컴퓨터다.양자컴퓨터는 단순히 빠른 컴퓨터가 아니다. 기존 컴퓨터로는 아예 계산이 불가능했던 것을 가능하게 해준다. 기본 연산 단위가 비트가 아닌 큐비트다. 0이면서 동시에 1일 수 있는, '중첩'이 일반 컴퓨터와의 핵심 차이다. 4큐비트라면 16가지 상태를 동시에 품고 계산한다. 병렬 연산과도 다르다. 병렬 연산은 그릇을 16개 준비하는 것이고, 양자는 그릇 하나에 16개를 동시에 담는 개념이다. 인슐린을 구성하는 아미노산 하나의 구조를 계산한다고 가정해보자. 정확한 아미노산 구조를 계산하기 위해선 지구상 모든 기기의 메모리를 합친 것의 1000배가 필요하다. 그러나 양자컴퓨터는 큐비트 100개면 되는 셈이다. 그래서 신약 개발, 소재 설계, 암호 해독 같은 분야에서 판도를 바꿀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지난 2월 26일 인천 연수구 연세대학교 국제캠퍼스 연구동. 2024년 11월 국내 최초로 설치된 양자컴퓨터 'IBM 퀀텀 시스템 원'이 유리창 너머로 종처럼 매달려 있었다. 이 원통형 냉각장치 안에는 127큐비트로 구동돼 2127번의 연산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초전도체 양자칩 '이글'이 들어 있다. 양자컴퓨터는 층으로 나뉜 원판이 전선들로 연결돼 마치 샹들리에처럼 보인다고 하지만, 냉각 장치에 둘러싸여 있어 실제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정재호 연세대 양자사업단장은 "양자의 상태를 안정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극저온 환경이 필수"라며 "헬륨가스를 이용한 쿨링 시스템으로 우주의 온도인 영하 273도를 유지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퀀텀 시스템 원은 IBM이 2019년 세계 최초로 선보인 범용 양자 컴퓨터다. 미국 이외의 나라에 설치된 IBM 양자컴퓨터 중에는 최고 성능으로, IBM 퀀텀 시스템 원이 설치된 나라는 미국, 캐나다, 독일, 일본에 이어 한국이 다섯 번째다. 'IBM 퀀텀 시스템 원'이 대학 내에 설치된 것은 일본 도쿄대에 이어 연세대가 전 세계 두 번째다. 최근 구글 등 빅테크들이 선점하고 있는 양자컴퓨터 경쟁에 한국도 뛰어든 것이다.신약·바이오가 첫 실전 무대연세대가 양자컴퓨터의 첫 활용 무대로 선택한 분야는 신약 개발과 바이오다. 신약 개발에서 핵심은 특정 질병을 일으키는 단백질에 딱 맞는 약물 분자를 찾아내는 것이다. 정확한 하나의 정답을 요구하는 계산이 아니라, 수많은 후보 중 독성·효능·대사 조건을 동시에 만족하는 최적 조합을 찾는 작업이다. 양자컴퓨터는 이런 '조합 최적화' 문제에 강점을 갖는다.연세대 양자사업단 측은 "최근 엔비디아(NVIDIA)가 인천 송도 양자컴퓨팅센터를 방문해 퀀텀시스템 원을 견학했다"며 "엔비디아와 바이오 분야 파운데이션 모델을 공동 개발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불과 1년 전만 해도 "양자컴퓨터 실용화까지 몇십년이 걸릴 것"이라고 했지만, 최근 "수년 내 가능하다"고 태세를 전환했다. 엔비디아는 자체 양자컴퓨터를 만드는 대신, GPU와 양자컴퓨팅을 연결하는 통합 플랫폼(CUDA-Q)을 구축하는 전략을 택했다.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최근 양자컴퓨터를 '다음 인공지능(Next-AI) 시대'로 이름 붙였다. 양자컴퓨터는 어떻게 AI의 다음 단계가 되는 걸까? 신약 개발 분야를 보면, AI는 이미 산업 표준으로 활용되고 있지만, 한계도 뚜렷하다. 이상적인 약물 후보를 찾기 위해 탐색해야 할 화합물 공간은 1060개에 달하기 때문이다. 정재호 단장은 "전 우주의 별을 구성하는 원자 수가 1080개인데, 신약 탐색 공간은 그에 맞먹는 숫자"라며 "지식이 없어서가 아니라 계산 자원 때문에 약을 만들다 말고 있다"고 설명했다.AI의 본질은 데이터를 학습하고 패턴을 찾고 예측하는 것, 결국 '계산'에 있다. AI가 아무리 똑똑해도 기존 컴퓨터 위에서 돌아가는 한, 계산 자원 자체가 벽이 된다는 의미다. 데이터센터를 늘려도 전력이 따라오지 못하는 것도 같은 문제다. 실제로 국내에서 AI 전환을 위한 데이터센터 구축이 더딘 이유 중 하나도 한국전력의 전력 공급 한계다.양자컴퓨터는 그 계산 병목을 뚫는 도구로 주목받고 있다. AI가 '더 잘 생각하는 법'이라면, 양자컴퓨터는 '더 잘 계산하는 도구'인 것이다. 신약 개발 현장에서는 이 둘을 결합한 '양자-AI 하이브리드' 연구가 이미 시작됐다. 작년 국제학술지 '네이처 바이오테크놀러지'에는 AI와 양자컴퓨팅을 결합해 항암제를 개발한 연구 실적이 실렸다. 이때 사용한 큐비트는 불과 16개였다.과기정통부는 지난 1월 29일 '제1차 양자 과학기술과 양자 산업 육성 종합계획'을 내놓은 바 있다. 2035년까지 세계 1위 양자칩 제조국 달성, 양자 인력 1만명 육성, 양자 기업 2000개 확보 등을 구체적 목표로 한다. 양자 전환의 지역 거점이 될 '양자 클러스터'는 올해 7월까지 확정할 계획이다. 삼성·LG·SK 등 주요 기업이 참여하는 양자 기술 협의체도 확대한다.조만간 국내 범용성 양자컴퓨터도 1대 더 늘어날 예정이다. 과기정통부 '양자컴퓨팅 서비스 및 활용체계 구축 사업'의 주관기관인 KISTI는 지난해 말 IonQ와 100큐비트급 '템포(Tempo)' 시스템 공급 계약을 최종 확정했다. 템포는 국내 최대 슈퍼컴퓨터인 KISTI-6(한강)에 연결돼 양자·고전 하이브리드 컴퓨팅 환경을 구축할 예정이다.그러나 양자컴퓨터 경쟁의 승부처는 하드웨어만이 아니다. 연세대가 공식적으로 내세운 활용 전략에도 IBM 자원을 활용한 양자 알고리즘 개발 지원, 기술 프로젝트 자문, 교육 프로그램과 인재 양성이 포함돼 있다. 정부 역시 양자기술산업법을 통해 연구·산업 허브와 클러스터, 인력 육성, 사업화를 함께 밀겠다는 방향을 내놨다.정 단장은 "하드웨어는 미국과 격차가 크게 나지만, 소프트웨어와 알고리즘은 아직 각국이 출발선이 비슷하다"며 "지금이 한국이 글로벌 표준을 선점할 수 있는 시간"이라고 강조했다. 장비보다 실제 문제를 풀 수 있는 알고리즘과 인력이 승부처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연세대는 향후 금융, 반도체 설계, 소재, 국방 등 계산 복잡도가 높은 분야로 양자컴퓨터 활용을 넓혀갈 구상이다. 정 단장은 "양자컴퓨터는 기존 컴퓨터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컴퓨터가 계산할 수 없었던 영역을 여는 것"이라며 "농업혁명, 산업혁명, 디지털혁명에 이어 인류가 맞이할 마지막 혁명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인천 연수구 연세대학교 국제캠퍼스 양자컴퓨팅센터에 설치된 국내 최초 IBM 상용 ‘퀀텀 시스템 원’. photo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인천 연수구 연세대학교 국제캠퍼스 양자컴퓨팅센터에 설치된 국내 최초 IBM 상용 ‘퀀텀 시스템 원’. photo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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