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넘긴 전쟁, 각국의 득실은
3월 11일 오만 무산담 주 경계 인근 라스알카이마 북부에서 바라본 호르무즈 해협 인근 페르시아만에 정박해 있는 화물선들. /로이터 연합뉴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이 지난 2월 28일 발발 후 5주차에 접어들었다. 이란이 세계 원유 물동량의 20%가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한 이후 세계 에너지 공급망에 일대 지각 변동이 일고, 미국이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와 서방 동맹국들에 참전을 압박하면서 각국의 경제·안보 상황이 극명하게 엇갈리는 상황이다.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2일 “비전투 국가 중 한국이 가장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며 “에너지·석유화학·반도체 등 거시 경제 전반에 걸쳐 치명적인 취약성이 노출됐다”고 했다.
美 “이길 수는 있지만, 끝낼 수는 없다”
미국은 개전 초기 이란 핵심 지도부를 정밀 타격하고 방공망 등 주요 군사 인프라를 무력화하며 압도적 전력을 과시했다. 이란의 잠재적 핵 위협을 물리적으로 지연시킨 점도 확실한 이득이다. 여기에 더해 걸프 해역 주변국들의 대미(對美) 안보 의존도를 다시금 끌어올리며 중동 내 군사 패권을 재확인했다.
하지만 치명적인 손실은 호르무즈 해협 개방 실패다. 글로벌 에너지의 핵심 길목이 통제되면서 국제 유가가 배럴당 110달러 선을 위협하고 있다. 미국 내 휘발유 가격 폭등과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재발은 단순한 경제 타격을 넘어,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행정부의 지지율을 최저치로 끌어내리는 거대한 정치적 리스크로 직결됐다.
글로벌 리더십 손상과 동맹의 신뢰 하락도 뼈아프다. 유럽연합(EU)은 물론 한국과 일본조차 직접적인 군사 개입을 회피하며 사실상 ‘미국과 이스라엘만의 전쟁’이라는 고립된 구도가 굳어졌다.
지난 1일 백악관에서 이란 전쟁 관련 대국민연설위해 회견장에 들어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대통령. /AP 연합뉴스
미 국방부가 의회에 2000억달러(약 300조원) 규모의 긴급 예산을 요청하는 등 천문학적인 전비 청구서도 날아들었다. 단기전으로 기획된 작전이 진흙탕 소모전으로 변질되면서 백악관의 전략 부재를 겨냥한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침묵하며 관망하는 中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전쟁 발발 한 달이 넘은 시점까지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시진핑의 ‘침묵’을 두고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1일 “중국은 이란 전쟁이 미국의 쇠퇴를 부추길 것으로 판단하고 관망한다”면서 “중국이 ‘적이 실수할 땐 절대 방해하지 마라’는 나폴레옹의 격언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브루킹스연구소 존친 연구원은 “트럼프의 관심이 중동에 쏠렸고 미국의 군사 자산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빠져나갔다”면서 “중국이 국력 강화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과 여유를 얻었다”고 했다.
왕이 외교부장이 이란 외무장관 등과의 통화에서 평화 회담 개시를 촉구하면서 중국이 대외적으로 ‘평화 중재자’로 비치게 된 점도 성과다. 이란이 호르무즈 통행료를 중국 위안화로 받겠다고 하면서 미국의 ‘페트로 달러’ 패권도 흔들리게 됐다. 그러나 중국이 일방적 수혜를 입는 것은 아니다. 싱가포르 연합조보는 3일 “중국 역시 고유가와 호르무즈 리스크 등 비용 부담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짚었다.
그래픽=양진경
최대 수혜자 푸틴, 대서양 동맹은 붕괴 위기
이란의 대량 보복에 노출된 중동국은 최대 피해자다. 유엔개발계획(UNDP)은 지난 한 달 동안 중동국이 국내총생산의 6%에 이르는 최대 1940억달러(약 291조원)의 경제적 피해를 봤다고 추산했다. 걸프 왕정 국가들의 물류·금융·관광 허브로서의 위상이 무너지면서, 향후 360만개 일자리가 사라지고 400만명이 빈곤층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이 기구는 밝혔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최대 수혜자로 꼽힌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이 러시아산 원유 제재를 완화하면서 전쟁 발발 후 12일간 추가로 벌어들인 석유 수입만 19억달러(약 2조8500억원)에 이른다. 미국의 군사력이 중동에 집중되면서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도 러시아에 유리하게 기울고 있다. 최대 쟁점인 돈바스 영토 할양 문제를 두고 미국이 한층 유연한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러시아는 이란에 드론 등 군수 물자를 지원하고, 주요 미군 자산 좌표를 은밀하게 전달하고 있다.
유럽과 미국의 ‘대서양 동맹’은 존폐 위기에 몰렸다. 나토가 트럼프의 호르무즈 파병 요청을 거부하고, 주요 국가들이 미군의 자국 영공 통과까지 막자 트럼프는 “나토 탈퇴를 절대적으로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카를라 노로뢰프 토론토대 교수는 “미국이 직면한 가장 큰 위협은 중국이나 러시아가 아니라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리더십을 뒷받침해 온 동맹 체제의 점진적 붕괴”라고 했다.
파키스탄 휘발유값 43% 인상… 주유소에 몰린 운전자들 2일 파키스탄 카라치의 한 주유소에서 오토바이 운전자 수십 명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중동 전쟁 여파로 세계 각국이 에너지난에 시달리는 가운데 전날 파키스탄에서는 휘발유와 경유 리터당 가격이 각각 42.7%, 54.9% 폭등했다. /AP 연합뉴스
안보·경제 벼랑 몰리는 한·일
한국과 일본은 비전투국 중에서 이란 전쟁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본 나라들로 꼽힌다. CSIS는 “한국이 가장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면서 코스피가 43년 역사상 최악의 하루 하락 폭을 기록했으며, 원화 가치는 17년 만에 최저치로 추락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주요 경제국 중 가장 큰 폭인 0.4%포인트 하향 조정했고, 반대로 물가 상승률 전망치는 2.7%로 상향했다.
일본은 에너지 공급의 약 40%를 석유에 의존하는데, 이 중 95%가 중동에서 온다. 일본 정부는 비축유를 방출하고 정유사에 거액의 보조금을 지급하며 가격을 억제하고 있지만, 전쟁 전 150엔대이던 휘발유 값은 170엔대로 올랐다. 나프타 수입량의 70%를 중동에 의존하는 일본은 석유화학업체 공장이 멈추면서 도요타·닛산 등 자동차 공장까지 감산에 돌입하는 등 공급망 전체가 타격을 입고 있다.
이란 전쟁을 계기로 트럼프가 인도·태평양 안보에도 관심을 줄일 가능성이 있다. 특히 일본이 우려하는 것은 미국이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고 중국의 대만 장악을 용인하는 것이다. 일본의 에너지·원자재 수입 운송로인 대만 해협이 중국의 통제 아래 놓이면, 필요시 군사 압박으로 일본의 생명줄을 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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