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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등록 등본이나 초본을 위해 행정복지센터에 갈 필요가 없다. 졸업증명서나 성적증명서를 위해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된다. 토지/건물의 등기부등본과 법인 등기부등본은 대법원 인터넷등기소에서, 직장인들의 ‘2월 말 특별 보너스’를 위한 연말정산은 국세청 홈택스에서 온라인으로 해결된다. 매달 낸 세금에서 얼마를 돌려받게 되는지 금방 알 수 있다. 조달청의 나라장터 서비스는 공공기관의 물품·공사·용역 구매에 필요한 입찰·계약·대금 지급 등을 전자적으로 처리해준다. 정부와 기업의 거래비용을 줄이고 공정성과 투명성, 효율성을 높인 사례로 OECD 등 국제기구에서 자주 소개되고 있다.
전자정부(e-Government) 서비스는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확산을 억제하고 경기 침체를 최소화하고 생명을 구하는 데에도 기여했다. 2020년 당시 OECD와 세계은행 등에서는 한국의 초고속 정보통신 인프라와 디지털정부 역량이 코로나-19 대처에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유엔(UN)의 정의에 따르면, 전자정부란 정부 기관이 광대역 네트워크, 인터넷, 모바일 컴퓨팅 등의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하여 시민, 기업 및 타 정부 기관과의 관계를 변혁하는 것이다. 우리의 전자정부 인프라는 2005년 이후, 전자정부 서비스는 2010년 이후 세계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국제전기통신연합(ITU)에서 인프라 보급, 통신 요금, 초고속 인터넷 비율 등을 종합 평가하는 디지털 기회 지수(DOI)에서 한국은 2005·2006·2007년 3회 연속 1위를 기록했다. 유엔의 전자정부 평가에서는 2010·2012·2014년 3회 연속 1위 평가를 받았다. 전자정부보다 더 포괄적인 디지털정부 평가에서는 OECD 회원국 가운데 3회 연속 1위를 차지했다. 최근(2019·2023·2025년)의 일이다.
1945년 해방 당시에 우리는 일본이나 서구보다 산업화에서 100~200년가량 뒤진 나라,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에 속했다. 1967년 우리는 미국, 일본, 싱가포르보다 한 세대 뒤진 IBM-1401 컴퓨터를 도입해 인구조사와 예산업무 전산화를 시도했다. 그로부터 불과 40년 후에 전자정부 분야에서 우수한 성과를 거뒀다. 그 비결은 뭘까? 산업혁명의 흐름에서는 뒤졌지만, 정보혁명이라는 『제3의 물결』(토플러, 1980)에서는 뒤질 수 없다는 각오로 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정부 20여 년에 걸쳐 정책과 자원을 집중한 덕분이었다.
전임 박정희 정부가 수출진흥과 중화학공업 육성에 매진했다면, 1980년 집권한 전두환 정부는 기술진흥과 정보산업 육성으로 방향을 틀고 차별화를 시도했다. 1983년을 ‘정보산업의 해’로 지정하고, 정보산업육성위원회를 신설했다. 대통령비서실장이 위원장을 겸하고, 과기처, 상공부, 체신부, 문교부, 총무처 등 5개 부처 차관과 경제수석이 위원으로, 청와대 과학기술비서관이 실무 간사로 참여하는 특별한 위원회였다(한세억, 1998:106). 1984년에는 5대 국가기간전산망(행정, 금융, 교육, 국방, 공안) 조정위원회를 신설했고, 1986년에는 ‘전산망보급확장과이용촉진에관한법률’을 제정했으며, 1987년에는 한국전산원을 설립해 1단계(1987~1991) 국가기간전산망 사업을 주관하도록 했다.
노태우 정부는 국가정보화 정책의 지속성에 포커스를 맞췄다. 1990년 정보사회 종합대책을 발표했고, 국가기간전산망 1단계 사업에 이어 2단계(1992~1996) 사업을 이어갔다.
김영삼 정부는 지속 가능한 국가정보화 추진체계의 구축에 기여했다. 1994년 초고속정보통신망 구축 기획단 출범과 정보통신부 신설, 1995년 초고속정보통신망 사업(1995~2005) 개시, 1995년 정보화촉진기본법 제정, 1995년 정보화촉진기금 설치, 1996년 정보화추진위원회 출범 등의 성과를 남겼다.
김대중 정부는 전자정부 사업을 대통령 아젠다(Presidential Agenda)로 격상시켰다. 대통령이 기회 있을 때마다 장관들과 수석비서관들에게 전자정부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전자정부 사업을 담당하는 정책기획수석으로부터 수시로 진도를 보고 받았다(정충식, 2023:10). 김대중 대통령의 전자정부에 관한 열정 덕분에 전자정부 11대 사업들은 예산의 적절한 지원을 받았고, 전자정부특별위원회(안문석 위원장)는 부처들의 적극적인 협력을 끌어냈다(전자정부특별위원회, 2003). 홈택스·나라장터·G4C(요즘의 ‘정부24’)라는 서비스를 개시했고, 전자정부법을 제정했다. 1천만 명 컴퓨터 교육, 초고속정보통신망 조기 구축, 초고속 인터넷 보급에 힘썼다.
노무현 정부의 성과도 두드러진다. 김대중 정부가 11대 핵심 온라인 서비스를 출범시켰다면, 노무현 정부는 이를 31대 과제로 확대하고 로드맵을 확정했다. 전자정부 서비스를 업무혁신과 기관 간 연계·통합 운영과 결합했다. 노무현 정부는 추진력이 강한 임기 초반에 전자정부 서비스의 드라이브를 걸었고, 개별 서비스를 넘어 범정부 차원의 서비스 제공체계로 발전시켰다는 점에서 평가받고 있다(정충식, 2023:12-13).
요컨대 전자정부 사업의 성공 요인을 종합해보면, “변화하는 환경에 대응하여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와 리더십을 바탕으로, 목표 지향적인 중장기종합계획 수립, 추진조직 정비, 예산, 법제도 도입, 정보기술 자원 등을 사회기술적 환경과 수준에 맞게 동원하면서, 지속적으로 추진한 결과로 해석된다.”(송희준·조택, 2007:34)
여기서 간과해선 안 될 요소는 전자정부 관련 재원의 조달이다. 정보화 및 전자정부 관련 투자 재원은 국가 예산에 통신사업자의 출연금 등을 결합해 기금을 만들어 조달했고, 이를 기술개발·통신망 구축·공공 정보화에 활용했다. 1993년 정보통신진흥기금을, 1996년 정보화촉진기금을 조성했다. 국회예산정책처 자료에 따르면 1993년부터 2004년까지 두 기금을 통해 11.1조 원을 조성했고, 8.5조 원을 집행했다.
특기할 점은 전자정부 추진의 정책환경이다. 1980년의 오일쇼크 등 어려운 국내외 환경 속에서도 국가정보화의 기틀을 다진 5대 기간전산망 구축 사업을 시작했고, 외환위기로 인해 어려웠던 1998년에도 전자정부 서비스 구현을 위한 정책을 추진했다.
어려운 정책환경을 대통령 리더십으로 극복한 셈이다. 결국, 대통령 의제(Presidential Agenda) 여부도 정책 성공에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다. 대통령의 취임 초기에 국정 비전과 국정 과제의 틀 안에 들어가 있다면 정책의 추진력이 커지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시대적 흐름에 부합하느냐다. 국내외 정책환경의 분석을 토대로 시대와 유권자의 요구에 조응하는 정책이라면, 향후 정책의 결정과 집행에 있어서 추진력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1982년 10월 9일 서울 하얏트 호텔에서 개최된 『제3의 물결』 저자 앨빈 토플러 초청 강연은 빈자리 없이 대성황이었다. ‘정보화’ 물결에 우리도 올라타야 한다는 절실함이었다.
마지막은 사람이다. 국가기간전산망조정위원회, 정보화추진위원회, 전자정부특별위원회에 많은 인재가 참여했다. 그렇다면 정보화의 불모지 한국에서 정보화 선진국, 전자정부 1등 국가의 꿈을 현실로 바꾼 정책선도자(Policy Entrepreneur)는 누구인가? 정책선도자란 선호하는 미래의 정책을 위해 보유하고 있는 자원을 기꺼이 투자하는 사람(Kingdon, 1995), 아이디어의 전파와 활동으로 정책변동을 유도하는 사람(유훈, 2001)이다. 1980년대 국가정보화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했던 오명 장관(비서관, 차관, 장관)과 홍성원 비서관, 삼보컴퓨터 이용태 회장, 정보화에 남다른 열정을 갖고 있었던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두 정부에 걸쳐 전자정부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안문석 교수 등이다.
지금은 인공지능(AI) 시대로의 전환(AX)이 메가 트렌드다. 미국과 중국이 핵심 서비스를 개발하며 앞서가고 있다. 전자정부처럼 AI 시대로의 전환에서도 앞서갈 수 있을까?
전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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