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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전라 Insight] 승동표, 전북에서 이어진 회화의 시간

전북 근대미술은 지역에서 태어난 작가들만으로 이루어진 역사가 아니다. 시대의 변화와 개인의 삶을 따라 전북에 정착한 작가들 역시 지역 미술의 한 흐름을 형성했다. 이번 글에서는 승동표의 삶과 작품을 통해 전북 근대미술의 또 다른 흐름을 살펴본다.

[전라 Insight] 승동표, 전북에서 이어진 회화의 시간

전북 근대미술은 지역에서 태어난 작가들만으로 이루어진 역사가 아니다. 시대의 변화와 개인의 삶을 따라 전북에 정착한 작가들 역시 지역 미술의 한 흐름을 형성했다. 이번 글에서는 승동표의 삶과 작품을 통해 전북 근대미술의 또 다른 흐름을 살펴본다.

전북 근대미술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지역에서 태어난 화가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또 하나의 흐름을 만나게 된다. 전쟁과 분단으로 삶의 터전을 옮겨 전북에 정착하고, 오랜 세월 교단과 작업실을 오가며 자신의 회화를 이어간 화가들이 있기 때문이다. 운봉 승동표(1918~1996)는 그 가운데 주목할 만한 인물이다. 생전에는 중앙 화단과 거리를 두었고 전시에도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그의 그림은 전북이라는 삶의 공간 안에서 오랫동안 지속됐다.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난 승동표는 1933년 오산고보에 입학해 임용련에게 유화를 배웠다. 1936년 조선일보가 주최한 제1회 전조선학생미술전람회에서 ‘꽃다발이 있는 정물’로 특선을 받았고, 1938년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미술학교에서 서양화를 공부했다. 재학 중에는 도쿄 독립미술협회전에 세 차례, 조선미술전람회에 두 차례 입선했다. 해방 뒤에는 모교인 오산학교에서 미술을 가르쳤다. 전북에 정착하기 이전부터 근대 서양화의 여러 조형적 방법을 접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던 것이다.

한국전쟁은 삶의 터전을 바꾸었다. 1951년 1·4후퇴 때 가족을 북에 남겨둔 채 홀로 남하했고, 이후 전북에 정착해 남원과 정읍 등지의 학교에서 미술을 가르쳤다. 1982년 고산중학교 교장으로 퇴임하기까지 오랜 세월 교육 현장에 몸담았으며, 교직생활과 함께 회화 작업도 계속했다. 주변의 자연과 풍경은 꾸준히 작품의 소재가 됐다.

‘중인리의 겨울’, ‘무주구천동의 가을’, ‘구이저수지’, ‘채석강’ 등에는 실제 전북의 여러 장소가 등장한다. 산과 들, 물과 마을 같은 익숙한 자연이 작품 속으로 들어온 것이다. 그러나 승동표의 풍경에서 주목할 것은 어느 장소를 그렸는가에만 있지 않다. 같은 자연이라도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덜어냈는지, 그것을 어떤 형태와 색채로 바꾸었는지가 작품을 이해하는 데 더욱 중요하다.

‘미루나무가 있는 마을의 길’(1983)은 그의 특징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높이 솟은 미루나무와 안쪽으로 이어지는 길이 중심을 이루고, 주변의 대숲과 집, 수목은 세부적인 묘사보다 간결한 형태와 색면으로 정리돼 있다. 미루나무의 수직적인 형태가 시선을 붙잡는다면 길은 안쪽으로 이어지며 공간의 깊이를 만든다. 눈앞의 풍경을 그대로 옮겼다기보다 나무와 길, 마을을 이루는 요소들을 선택하고 정리해 익숙한 풍경을 하나의 회화적 구조로 바꾸었다.

‘강가 풍경’(1986)은 강과 주변 지형이 펼쳐진 자연 공간을 다룬다. 강과 지형이 큰 흐름을 이루고 나무와 수면, 뒤편의 지형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놓인다. 수직으로 자리한 요소와 넓게 펼쳐진 수평의 공간이 대비되고, 겹쳐진 형태들은 깊이를 만든다. 자연의 세부를 빠짐없이 재현하기보다 큰 형태를 파악하고 필요한 요소를 선택해 구성하는 방식이 두드러진다. 자연은 그대로 복제되는 것이 아니라 화가의 시선을 거치면서 단순화되고 다시 배열된다.

이러한 조형적 관심은 정물에서도 확인된다. ‘정물-차와 과일’(1989)에서는 주전자와 용기, 과일 등의 사물이 서로 다른 크기와 위치를 차지한다. 사물은 겹치고 떨어지면서 공간을 만들고, 분명한 윤곽과 색면은 각각의 형태를 구별한다. 세밀한 표면 묘사보다 사물의 부피와 배치, 형태 사이의 관계가 강조된다. 풍경과 소재는 다르지만 대상을 단순화하고 형태와 색채의 관계를 통해 구성하려는 관심은 정물에서도 이어진다.

세 작품은 승동표 회화의 단계적인 변화 과정을 보여준다기보다 서로 다른 소재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조형적 성향을 확인하게 한다. 눈에 보이는 대상을 그대로 옮기기보다 형태를 파악하고 다시 구성하려는 태도는 정물과 인물, 풍경을 아우르는 그의 작업에서 지속적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이 작품들은 1980년대에 새롭게 나타난 특징이라기보다 오랜 작업에서 이어진 회화적 성향의 한 단면으로 볼 수 있다.

이 지점에서 승동표의 회화를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해 온 세잔이라는 이름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승동표에게는 ‘한국의 세잔’ 또는 ‘조선의 세잔’이라는 명칭이 따라붙기도 했다. 1998년 ‘다시 찾은 근대미술전’을 통해 작품을 발굴한 정준모 당시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은 대상을 구와 원통, 원뿔과 같은 기본 형태로 분석하고 다시 조합하는 방식에 주목했다. 미술평론가 김선태 역시 서구의 여러 양식을 탐구한 뒤 자신만의 화풍과 미적 감각을 구축했으며, 조형성을 중시한 구축적이고 논리적인 화면을 전개했다고 평가했다.

두 평론이 공통적으로 주목한 것은 대상의 외형보다 그것을 분석하고 회화적으로 구성하는 방식이다. 세잔과의 관련성 역시 단순한 외형적 유사성보다 자연과 사물을 바라보고 다시 구성하는 조형적 태도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강한 색채와 붓질, 단순화된 형태, 분명한 외곽선은 작품 전반에서 확인되는 특징이다. 정물과 인물, 풍경으로 소재가 달라져도 사물의 형태를 파악하고 색채와 면의 관계를 조절해 회화적 구조를 만들어가는 방식은 일관되게 나타난다.

그러나 ‘한국의 세잔’이라는 명칭만으로 승동표의 회화를 모두 설명하기는 어렵다. 특정 서구 화가와의 영향 관계를 확인하는 것과 한 화가가 오랜 작업을 통해 자신의 조형언어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세잔과 얼마나 닮았는가가 아니라 서구 근대회화에서 익힌 조형적 경험을 자신의 작업 안에서 어떻게 지속하고 변용했는가 하는 점이다. 그 과정에서 정물과 인물은 물론 주변의 자연 역시 고유한 회화의 대상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풍경화에서는 전북이라는 삶의 공간과 그의 조형적 태도가 만난다. 이 점에서 승동표의 풍경은 전북 풍경의 조형화라는 측면에서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 조형화란 전북의 산과 강, 마을과 바다를 사실적으로 기록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실제 자연에서 필요한 요소를 선택하고 형태를 단순화하며 색채와 면의 관계를 조율해 하나의 회화적 공간으로 전환하는 과정에 가깝다.

따라서 ‘중인리의 겨울’, ‘무주구천동의 가을’, ‘구이저수지’, ‘채석강’ 같은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장소의 이름 자체가 아니라 그 장소가 어떤 회화적 언어를 얻었는가 하는 점이다. 전북의 자연은 단순한 풍경의 소재에 머물지 않고 그의 조형적 시선을 거쳐 새롭게 구성되는 회화의 대상이 됐다.

그럼에도 이러한 작품은 생전에 널리 알려질 기회를 거의 갖지 못했다. 승동표는 남하 이후 개인전을 열지 않았고 작품 출품이나 화단과의 교류도 제한적이었다. 관련 자료에는 북에 남겨둔 가족에게 피해가 갈 것을 염려해 자신의 이름이 알려지는 것을 꺼렸다는 이야기가 전하며, 작품을 돈을 받고 판매하지 않았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다만 작품 발표가 제한적이었다는 사실과 작업 자체가 중단되었다는 것은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 남아 있는 정물과 인물, 풍경은 화단 활동과 별개로 오랜 기간 회화 작업이 계속되었음을 보여준다.

생전에 충분히 알려지지 않았던 작품세계는 사후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1998년 국립현대미술관의 ‘다시 찾은 근대미술전’에서 작품이 소개되었고, 2002년 한국소리문화의전당에서는 유작초대전이 열렸다. 2006년에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전시를 통해 다시 조명되었으며, 이후 전북에서도 작품을 소개하는 전시가 이어졌다. 이 과정은 단순히 잊힌 화가의 이름을 다시 알리는 데 그치지 않았다. 흩어져 있던 작품이 공개되면서 승동표의 회화를 실제 작품을 통해 검토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

2013년에는 가족이 보관해 온 작품과 자료 149점이 전북대학교박물관에 기탁되면서 작품세계를 보다 폭넓게 살펴볼 수 있게 되었다. 서양화 75점과 드로잉 33점을 비롯한 자료가 함께 전해지면서 몇몇 대표작만이 아니라 정물과 인물, 풍경을 아우르는 작업의 흐름을 확인할 수 있게 됐다.

한 지역의 미술사는 중심 화단에서 활동한 작가와 주요 전시의 기록만으로 설명되지는 않는다. 지역에서 오랜 시간 지속된 작업과 뒤늦게 확인된 작품 역시 그 역사를 이루는 중요한 부분이다. 승동표의 회화를 다시 살펴보는 일은 그동안 충분히 조명되지 않았던 한 작가를 복원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남겨진 작품을 통해 전북 근대미술의 범위와 그 형성 과정을 보다 넓게 바라보게 한다.

전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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