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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전라 Insight] 완주 감

가을은 빛깔로 먼저 찾아온다. 들판에서는 벼가 황금빛으로 고개를 숙이고, 마을 어귀 감나무에는 주황빛 열매가 매달린다. 잎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감은 멀리서 보면 작은 등불 같다.

[전라 Insight] 완주 감

가을은 빛깔로 먼저 찾아온다. 들판에서는 벼가 황금빛으로 고개를 숙이고, 마을 어귀 감나무에는 주황빛 열매가 매달린다. 잎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감은 멀리서 보면 작은 등불 같다. 서늘한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가지 끝에서 흔들리는 그 등불을 바라보면, 어느새 한 해가 깊어졌음을 실감한다. 완주의 가을을 식탁으로 옮겨 놓는 과일, 대봉시도 그렇게 제 계절을 알린다.  편집자

-감의 고장 완주, 대봉시를 만나다

큼직한 감 하나를 손바닥에 올려놓으면 묵직한 존재감부터 전해진다. 하지만 먹음직스러운 빛깔만 믿고 덥석 베어 물어서는 곤란하다. 대봉시는 기다려야 제맛을 내는 떫은감이다. 단단한 열매가 부드럽게 풀리고 떫은맛이 가신 뒤에야 우리가 아는 달콤한 홍시가 된다. 금세 먹을 수 있는 과일이 넘치는 시대에도, 대봉시는 여전히 사람에게 기다림을 청한다.

완주에서 감 이야기를 꺼내면 곶감을 빼놓을 수 없다. 완주군은 지역 대표 농특산물을 소개하는 ‘완주 9품’의 첫 번째 자리에 곶감을 올려놓고 있다. 경천·동상·운주 등에서 생산하는 곶감은 완주의 산골 풍경과 농가의 손길이 어우러진 특산물이다. 군의 설명에 따르면 한로를 전후해 수확한 감을 깎아 약 50일 동안 자연 건조해 만든다. 감 한 알에 가을과 초겨울의 시간이 함께 담기는 셈이다.

그렇다고 완주의 감을 모두 같은 감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동상 곶감으로 잘 알려진 고종시와 대봉시는 구분해야 한다. 전북도의 과거 특산물 소개 자료에서도 완주의 감을 고종시·두레시·대봉시 등으로 나눠 설명하고 있다. 대봉시는 홍시로 즐기는 데서 그 매력이 두드러지지만, 곶감으로도 가공된다. 완주 감의 이야기는 한 가지 이름이나 한 가지 먹는 방식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처럼 서로 다른 감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가을 장보기도 한결 재미있어진다. 곶감으로 먹을 것인지, 말랑한 홍시를 기다릴 것인지에 따라 고르는 즐거움이 달라진다. 완주 대봉시를 소개하는 일은 유명한 곶감의 이름을 빌리는 데 그치지 않는다. 감의 고장 안에 있는 또 하나의 맛을 찾아 독자 앞에 펼쳐 보이는 일이다.

-떫은맛 뒤에 숨어 있는 달콤함

대봉시의 첫인상은 넉넉하다. 큼직한 열매와 도톰한 과육은 보기만 해도 풍성한 가을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단감처럼 아삭하게 베어 먹을 생각으로 다가가면 뜻밖의 떫은맛을 만날 수 있다. 이것은 단순히 덜 익어서 생기는 문제가 아니다. 감에는 단감과 떫은감이 있고, 떫은감은 수확한 뒤에도 떫은맛이 남아 있어 후숙하거나 가공해 먹는다.

그 차이를 만드는 성분이 타닌이다. 물에 녹는 상태의 타닌은 입안에서 떫은 느낌을 일으킨다. 떫은맛을 없애는 과정을 ‘탈삽’이라고 하는데, 쉽게 말해 타닌이 물에 잘 녹지 않는 상태로 바뀌도록 하는 것이다. 감 속에서 떫은 성분이 모조리 없어지는 것이라기보다, 입안에서 떫게 느껴지던 성질이 달라진다고 이해하면 쉽다.

대봉시를 기다리는 시간은 이 변화를 기다리는 시간이기도 하다. 겉이 주황빛으로 물들었다고 곧바로 먹을 준비가 끝난 것은 아니다. 눈으로 보는 익음과 입으로 느끼는 익음 사이에는 간격이 있다. 대봉시는 그 간격을 지나 홍시가 된다. 붉고 부드러운 감 한 알은 자연의 변화가 얼마나 섬세한지 알려주는 친숙한 교과서다.

홍시가 된 대봉시는 먹는 모습부터 다르다. 칼로 단단하게 잘라 먹기보다 껍질을 조심스럽게 열고 속살을 떠먹게 된다. 숟가락 끝에 오른 과육은 부드럽게 풀리고, 입안에는 달콤함이 번진다. 바쁜 걸음을 잠시 멈추고 감 하나에 집중하는 순간이다. 대봉시의 매력은 맛의 진하기만이 아니라, 그 맛을 만나는 느긋한 방식에도 있다.

-감 한 알에 포개지는 사람의 시간

감은 저절로 나무에 달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상품이 돼 식탁에 오르기까지는 사람의 일이 이어진다. 재배부터 수확과 선별, 후숙과 가공까지 어느 한 과정도 열매만 바라보고 끝낼 수 없다. 특히 떫은감은 수확이 곧 소비의 완성을 뜻하지 않는다. 홍시로 먹을지, 말려 먹을지에 따라 수확 뒤에도 서로 다른 과정이 기다리고 있다.

곶감의 고장이라는 완주의 이름 역시 이런 손길 위에 쌓였다. 감을 깎고 말리는 작업은 짧은 순간에 끝나지 않는다. 완주군이 소개하는 약 50일의 자연 건조 기간만 보더라도, 곶감은 열매에 시간을 더해 만드는 먹거리다. 대봉시를 홍시로 기다리는 일과 감을 깎아 곶감으로 말리는 일은 모습은 달라도 닮은 데가 있다. 서둘러서는 얻기 어려운 맛을 완성한다는 점이다.

완주 대봉시를 이야기할 때 농민의 수고가 함께 드러나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소비자가 만나는 것은 상자에 담긴 감이지만, 그 안에는 한 해의 재배와 수확 뒤 관리가 포개져 있다. 크기와 빛깔만으로 값을 매기기 전에, 그 열매가 어떤 과정을 거쳐 왔는지 살펴보면 좋겠다. 특산물의 가치는 지역 이름을 붙이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생산자의 정성과 소비자의 신뢰가 이어질 때 비로소 단단해진다.

-한 가지 열매, 여러 가지 가을의 맛

대봉시를 가장 친숙하게 즐기는 길은 홍시다. 그러나 감을 먹는 방법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떫은감은 홍시와 곶감, 반건시, 감말랭이 등으로 모습을 바꾼다. 농촌진흥청은 가을 별미인 홍시를 다른 계절에도 즐길 수 있는 아이스홍시를 비롯해 다양한 감 가공품을 소개하고 있다. 수확철에 집중되는 과일을 더 오래, 여러 방식으로 즐겨 온 지혜다.

식탁 위의 분위기도 먹는 방식에 따라 달라진다. 홍시는 숟가락으로 떠먹는 부드러움이 있고, 말린 감은 씹으며 맛보는 즐거움이 있다. 같은 감이라도 누군가는 촉촉한 속살을, 누군가는 쫀득한 식감을 더 좋아한다. 가족이 둘러앉아 서로 다른 감 맛을 이야기하는 동안, 지역의 농산물은 단순한 먹거리에서 대화의 소재로 넓어진다.

이 대목은 완주 대봉시의 앞날을 생각하게 한다. 홍시로 먹는 제철 과일이라는 매력을 살리면서도 가공과 포장, 소비 방법을 다양하게 제시할 여지가 있다. 다만 새로운 이름과 화려한 포장보다 앞서야 할 것은 기본이다. 어떤 상태의 감인지, 언제 어떻게 먹으면 좋은지 소비자가 알 수 있어야 한다. 기다림이 필요한 과일인 만큼, 그 기다림을 친절하게 안내하는 일도 상품의 일부다.

-가을을 기억하게 하는 한 알

지역 특산물은 맛으로 기억되고 이야기로 오래 남는다. 완주 대봉시 역시 ‘크고 달다’는 짧은 설명만으로는 매력을 다 전하기 어렵다. 떫은감이 홍시로 바뀌는 과정, 같은 고장 안에서도 서로 다른 감을 길러 온 문화, 수확 뒤까지 이어지는 생산자의 손길이 함께 소개될 때 독자는 감 한 알을 새롭게 바라보게 된다.

완주의 감을 알리는 데도 정확한 구분과 쉬운 설명이 힘이 된다. 고종시와 대봉시를 혼동하지 않고, 홍시와 곶감의 맛을 각각 전하는 것이다. 완주군이 곶감을 대표 특산물로 소개하고, 전북도의 과거 자료가 대봉시를 비롯한 여러 감을 함께 조명한 사실은 완주 감 문화의 폭을 보여준다. 하나의 유명한 이름 뒤에 가려진 다양한 맛을 발견하는 일이다.

대봉시 한 알을 앞에 두고 생각한다. 좋은 맛은 언제나 빠르게 오지는 않는다고. 단단하던 감이 부드러워지고 떫던 맛이 달콤해지는 동안, 먹는 사람의 마음도 조금 느긋해진다. 완주의 가을을 기억하는 방법이 꼭 거창할 필요는 없다. 잘 익은 홍시 하나를 가족과 나누는 일로도 충분하다.

가지 끝에 걸렸던 주황빛 가을이 식탁 위로 내려온다. 그 빛을 숟가락으로 한 입 떠먹으면 계절이 비로소 맛이 된다. 완주 대봉시가 건네는 것은 달콤한 과육만이 아니다. 제때를 기다린 열매와 그 열매를 돌본 사람, 그리고 함께 나누는 식탁의 풍경이다. 이 가을 대봉시를 더욱 맛있게 만드는 마지막 재료는 어쩌면 기다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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