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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대구 작은 음악 공간, 지역 음악 생태계를 잇다[예술이 길을 내고, 지역이 답하다]

대구 중구 공평동. 동성로 번화가에서 몇 걸음 벗어나면 만나는 동네다. ‘공평(公平)’이란 이름이 독특하다. 1908년 8월 1일 이곳에 대구공소원과 대구지방재판소가 들어섰다. 당시 대구공소원은 경상도뿐 아니라 전라도와 제주도까지 담당했다.

대구 작은 음악 공간, 지역 음악 생태계를 잇다[예술이 길을 내고, 지역이 답하다]

■ 예술이 길을 내고 지역이 답하다

(2) 대구 제임스레코드

음반사·음반 가게 꿈 꾸던 소년

2016년 공평동 음악 공간 시작

지역 음악가 공연·음반 제작까지

지역민 참여하는 동네 축제로 발전

대구 공평동 제임스레코드 입구. 2024년 8월 이곳으로 옮겨 새로 문을 열었다. /이서후 기자

대구 중구 공평동. 동성로 번화가에서 몇 걸음 벗어나면 만나는 동네다. ‘공평(公平)’이란 이름이 독특하다. 1908년 8월 1일 이곳에 대구공소원과 대구지방재판소가 들어섰다. 당시 대구공소원은 경상도뿐 아니라 전라도와 제주도까지 담당했다. 공평동이라는 이름도 법원에서 모든 일을 공평하게 처리하라는 뜻에서 붙었다고 전해진다. 법원은 1973년 수성구 범어동으로 옮겨갔지만 동네는 지금도 공평이라는 이름으로 남았다.

그 공평동 한 편에 음악이 흐르는 공간 ‘제임스레코드’가 있다.

공평동과 맞닿은 동성로는 대구를 대표하는 번화가로 대구 원도심 역사를 고스란히 품고 있다. 동성로는 본래 대구읍성 동쪽 성곽이 있던 자리다. 1907년 성벽이 헐리고 그 자리에 길이 생겼다. 조선 후기에는 인근에 경상감영이 있었다. 1601년 설치된 경상감영을 중심으로 대구는 영남의 행정과 교통, 상업의 중심도시로 성장했다.

최근 동성로를 비롯한 원도심이 예전 같지 않다. 빈 점포가 눈에 띄고 골목 활기도 줄었다. 황재원(47) 제임스레코드 대표 역시 이를 체감한다. 그는 침체한 원도심에 다시 사람을 불러 모을 수 있는 것 가운데 하나가 문화라고 생각한다.

작은 공간이 공연 명소 되기까지

황재원 제임스레코드 대표가 업무를 보고 있다. /이서후 기자

황재원 제임스레코드 대표. /이서후 기자

황재원 제임스레코드 대표. /이서후 기자

황 대표는 중학생 때부터 음반 가게와 음반사를 하고 싶었다. 좋아하는 노래를 골라 믹스테이프를 만들고 친구들에게 나눠주는 일을 즐겼다. 고등학생 때 학원 선생님이 그를 ‘제임스’라고 부른 뒤 자신이 만든 음악 목록에도 자연스럽게 ‘제임스레코드’라는 이름을 붙였다.

오랫동안 마음에 품었던 이름은 결국 실제 공간이 됐다. 처음에는 음반 가게와 음반사를 생각했지만 음악을 듣는 방식과 음반 시장이 달라지면서 술과 음식을 곁들여 음악을 듣는 공간으로 방향을 잡았다.

이렇게 제임스레코드는 공평동 작은 공간으로 출발했다. 이후 공연을 만들었고 지역 음악가를 소개했다. 음반도 제작하기 시작했다. 공간은 차츰 사람들이 음악을 들으러 오는 곳에서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만나는 곳으로 변했다.

황 대표가 음반 제작을 본격화한 계기는 코로나19였다. 대구에서 코로나19가 크게 확산하면서 가게 운영이 막막해졌다. 황 대표는 ‘이대로 망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오히려 미뤄뒀던 일을 해보고 싶었다고 한다.

“망하기 전에 내가 하고 싶은 것 하나는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음반 제작을 계획한 건 그전이었는데 코로나가 터지고 나니까 오히려 더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대구 공평동 제임스레코드 내부. 2024년 8월 이곳으로 옮겨 새로 문을 열었다. /이서후 기자

대구 공평동 제임스레코드 내부. 2024년 8월 이곳으로 옮겨 새로 문을 열었다. /제임스레코드

제임스레코는 2024년 8월 지금 공간으로 옮겼다. 건물주와 이해관계로 처음 공간에서 나와야했다. 새 공간을 고민하던 그는 우연히 기존 공간 근처에 정원이 있는 주택을 발견했다. 1960년대 공평동에 법원이 있던 시절 한 변호사가 지은 오랜된 집이었다.

새 공간을 얻는 과정도 순탄하지 않았다. 건물주에게 자신이 해온 문화 활동과 앞으로 하려는 일을 직접 설명했다. 문화 활동이 큰돈을 벌기 어렵다는 점까지 털어놓고 임대료를 협상했다. 공사비를 마련하려고 대출을 받았고 직접 공사에 매달리기도 했다.

음악가만큼 중요한 건 ‘관객’

황 대표는 공연이나 음반 제작을 기획하면서 굳이 대구 지역 음악가를 고집하지 않았다. 창원 등 경상권은 물론 광주와 전북 전주를 비롯해 다른 지역 음악가와 기획자까지 연결했다. 제임스레코드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관계가 지역 경계를 넘어 조금씩 넓어졌다. 그렇다고 황 대표에게 대구라는 장소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제 고향이니까요. 대구가 대도시인데도 불구하고 이것밖에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인프라는 충분히 갖춰져 있는데 즐길 사람들이 없는 거죠.”

여기서 ‘즐길 사람’은 관객이다. 지역 음악 생태계를 이야기하면 흔히 음악가 지원부터 떠올린다. 황 대표 생각은 조금 다르다. 좋은 음악가가 있어도 공연을 보러 오는 사람이 없다면 공연장은 버티기 어렵다. 공연장이 사라지면 지역 음악가가 설 무대 역시 사라진다.

대구 제임스레코드에서 5월에 열린 ‘공평사운즈’ 공연 모습. /제임스레코드

하지만, 소규모 공연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일은 결코 쉽지다. 입장권 예매 대행업체 수수료를 빼고 출연팀과 공연장이 매출을 나누면 각자에게 돌아가는 돈은 몇만 원 수준이다. 공간 임차료와 인건비, 음향 장비 비용까지 생각하면 공연만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어렵다.

소규모 공연 공간이 음식점이나 술집을 함께 운영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공연만으로 공간을 유지하기 어려우니 음식과 술, 음료를 팔아 작은 수익이라도 더 만들어야 한다.

“이걸 해소하는 방법은 관객 기반을 늘리는 거죠. 관객이 늘면 공연이 늘어나죠. 공연이 늘면 새로운 공연장이 생길 가능성도 커집니다. 공연장이 늘어나면 음악을 시작하려는 젊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기회가 많이 생기는 거죠.”

황 대표는 이를 위한 활동에 ‘대구 관객 100배 만들기 프로젝트’라는 이름까지 붙였다.

“공연장이 많이 생겨야죠. 제가 지금 나이가 적지 않은데, 이런 라이브 클럽을 운영하는 사람 중 막내뻘라는 게 말이 안 되죠. 젊은 사람들이 뛰어들어 멋진 걸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저는 그쪽으로 다 넘겨주고 그 친구들이 만든 곳에 가서 놀고 싶어요. 그게 제 목표예요.”

가게 안에서 동네로 진출한 공연

이런 생각이 가장 구체적인 모습으로 드러난 것이 ‘공평사운즈’란 행사다. 공평사운즈는 2024년 새로운 공간에서 시작한 실내형 음악 축제다. 출발부터 제임스레코드의 공간 변화와 맞물려 있다.

이전 공간을 떠나야 하는 상황이 됐을 때 황 대표는 새로운 장소를 고르는 기준부터 달리했다. 단순히 더 넓은 가게를 찾은 것이 아니었다.

“무조건 페스티벌을 할 수 있는 곳으로 옮기자고 생각했어요. 그때는 공평사운즈라는 이름도 없었지만요.”

공평사운즈는 대규모 야외 음악 축제와 반대쪽에 서 있다. 멀리 찾아가야 하는 거대한 축제 대신, 자신이 사는 도시 한복판에서 부담 없이 음악을 만나는 ‘동네 축제’를 지향한다.

대구 제임스레코드에서 5월에 열린 ‘공평사운즈’ 공연 모습. /제임스레코드 유튜브 갈무리

대구 제임스레코드에서 5월에 열린 ‘공평사운즈’ 공연 모습. /제임스레코드 유튜브 갈무리

대구 제임스레코드에서 5월에 열린 ‘공평사운즈’ 공연 모습. /제임스레코드 유튜브 갈무리

올해도 지난 5월 행사에 이어 9월 11일부터 13일까지 공평사운즈가 열린다. 사흘 동안 펼쳐지는 축제에는 공평동이라는 작은 동네에서 추다혜차지스, 단편선 순간들, 우희준, 까데호, 피치트럭하이재커스 등 전국적으로 유명한 음악가는 물론 대구와 서울, 다른 지역은 물론 일본과 대만 음악까지 만날 수 있다. 그래도 출연진 절반은 지역 음악가다.

무엇보다 눈여겨볼 대목은 운영 방식이다. 공평사운즈는 자치단체나 기관, 기업 후원에 기대지 않고 음악과 지역 문화에 뜻을 같이하는 민간 기획자들이 힘을 모아 만든다.

그러다 보니 수익이 없다. 앞서 5월에 연 행사도 입장권은 거의 매진됐지만 결과적으로 적자였다. 황 대표는 그럼에도 다시 축제를 연다. 공평사운즈의 목표가 당장 돈을 버는 행사가 아니라 지역에서 공연을 즐기는 사람 자체를 늘리는 데 있기 때문이다.

이웃 가게의 문을 두드리다

공평사운즈에서 이번 기획이 주목하는 또 다른 지점은 이웃 공간과 연결이다. 축제가 커지면서 제임스레코드 혼자 모든 것을 하지 않는다. 주변 가게들을 끌어들였다. 먹거리 공간에 대구 비건 음식점 ‘더커먼’ 등 지역 업체가 참여한다.

작은 음악 공간에서 시작한 일이 음악가와 관객을 연결하고, 다시 주변 가게와 문화공간을 끌어들이는 셈이다. 황 대표는 이런 움직임이 공평동을 넘어 대구 원도심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음악뿐만 아니다.

디자인, 책, 패션, 푸드, 애니메이션, 디제잉

같은 작은 문화(서브컬쳐)가 각각 자기 영역에서 행사를 만들고 사람을 불러 모으는 것이다. 이는 특정한 거대 행사에 많은 예산을 투입하는 것과 다른 방식이다.

“음악이든 디자인이든 패션이든 음식이든 이런 것을 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정말 많아요. 저처럼 공평사운즈를 하거나 다른 기획 공연을 만드는 사람들도 있고요. 꼭 음악이 아니어도 이런 걸 만드는 사람들을 지원해 주면 좋겠어요. 여기저기서 동시에 열리면 대구 사람들이 모이고, 다른 지역에서도 이날을 위해 찾아올 거예요.”

그러면 누군가의 성공을 본 젊은이들이 ‘나도 해볼 수 있겠다’며 뛰어들 수 있다는 게 황 대표 생각이다. 대구에 또 다른 공간이나 축제가 생기면 기존 공간 역시 자극을 받는다. 서로 경쟁하고 협력하면서 결과물도 좋아진다.

“대구를 제1의 문화도시로”

황 대표에게는 조금 엉뚱해 보일 만큼 큰 꿈이 있다. 대구를 ‘제1의 문화도시’로 만드는 일이다. 그가 말하는 문화도시는 거대한 공연장을 짓거나 유명 행사를 유치하는 곳이 아니다. 작은 공연장과 미술관, 가게와 문화공간이 많고 그것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은 도시를 말한다.

“하나만 잘돼서는 안 되잖아요. 다 연결돼 있어요. 공연장도 그렇고 미술관도 그렇고 그런 것들이 같이 있어야 해요. 그래야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사람도 생기죠.”

지역 문화에서 ‘연결자’가 하는 일은 어쩌면 거창하지 않다. 한 음악가에게 무대를 내주고, 열 명 관객을 스무 명으로 만들고, 옆 가게에 함께 해보자고 손을 내미는 일이다. 그런 연결이 쌓이면 공간이 되고, 골목이 되고, 결국 한 도시의 문화가 된다.

/이서후 기자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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