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스트 HBM’ 선두 주자는 누구인공지능(AI) 인프라 설비투자 경쟁이 반도체 산업 전반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MS·아마존·구글 등 빅테크가 데이터센터 증설을 가속하며 AI 가속기 탑재량이 급증하자 메모리뿐 아니라 전력·패키징 구조까지 한꺼번에 바뀌고 있다. 시장 시선은 자연스럽게 ‘넥스트 HBM(고대역폭 메모리)’으로 이동한다. AI 서버가 고전력·고발열 구조로 진화하며 ▲전력 품질을 잡는 MLCC ▲초고속 신호를 실어 나르는 FC-BGA ▲추론 시대 대용량 계층을 노리는 HBF ▲패키징 판을 바꿀 유리기판 등이 ‘넥스트 HBM’ 후보로 떠오른다. ‘넥스트 HBM’ 후보들을 톺아본다.삼성전기는 MLCC 중심으로 사업 구조를 재편했다. 유리기판 핵심 소재 글라스 코어를 확보하려 지난해 일본 스미토모화학그룹과 합작법인 설립도 추진했다. 사진은 삼성전기의 MLCC(위)와 유리기판(아래)(삼성전기 제공)전력 미세 진동 잡는 MLCC탑재량 13배…수익성 급증AI 서버 전력 구조 변화의 직접적 수혜 품목으로 꼽히는 건 MLCC(적층세라믹커패시터)다. MLCC는 전기를 잠깐 저장했다가 필요한 순간 미세하게 방출해 전압을 평탄하게 만드는 부품이다. CPU(중앙처리장치)·GPU(그래픽처리장치) 같은 연산 칩은 순간적으로 전류를 크게 끌어다 쓰는데, 전원이 흔들리면 연산 오류나 재부팅으로 이어질 수 있다. MLCC는 이런 ‘전력 미세 진동’을 흡수해 부품 간 신호 간섭을 줄이고 시스템을 안정화한다.특히 AI 서버는 기존 서버보다 전력 소모가 커 고전압·고용량 설계가 필수다. 이에 따라 고내압·고신뢰성 MLCC 비중이 빠르게 확대되는 추세다. AI 서버 한 대에는 약 2만8000개의 MLCC가 사용된다. 일반 서버에 탑재되는 2200개와 비교하면 약 13배 많은 수준이다. 단순히 사용량만 늘어난 것이 아니다. 고사양 MLCC 비중이 확대되면서 평균판매단가(ASP)도 일반 제품보다 3~5배 높다. 관련 부품 수익성도 빠르게 개선되는 흐름을 보인다. 서승연 DB증권 애널리스트는 “AI 서버 고성능화로 전력 안정화와 고난도 패키징 수요가 증가하며 MLCC 존재감이 확대됐다”고 전했다.MLCC의 기술 장벽은 높은 편이다. 원재료에 여러 첨가제를 혼합해 슬러리(다양한 물질을 섞어 만든 반죽 형태의 혼합물)를 만든다. 이후 이를 미세하게 인쇄하고 층층이 적층한다. 마지막 단계에서는 도자기를 굽듯 고온에서 열처리를 진행한다. 핵심은 세라믹 재료에 어떤 물질을 첨가할지, 그리고 첨가량을 얼마나 조절할지에 있다. 이 배합과 공정 조건은 제품 성능을 좌우하는 요소로, 각 MLCC 제조사만이 보유한 고유의 기술이다.최근 불거진 MLCC 공급 부족 현상 역시 높은 기술 장벽과 맞물려 있다. 빅테크 기업이 데이터센터 설비투자(CAPEX)를 대폭 확대하며 MLCC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데이터센터에는 전원 공급 장치와 AI 칩 등 고성능 부품이 대거 탑재되는데, 신호 안정성과 전력 품질을 확보하려 MLCC가 필수적으로 사용된다. 문제는 수요 증가 속도를 공급이 따라가기 어렵다는 점이다. MLCC는 제조 공정이 까다롭고 기술 진입 장벽이 높아 단기간에 생산 능력을 확대하기 쉽지 않다. 이런 흐름은 국내 부품 기업들의 수익성 개선 기대감으로 이어진다.삼성전기와 LG이노텍이 대표적이다. 두 회사 모두 고부가가치 MLCC 중심으로 사업 구조를 재편하며 서버와 전장용 제품 비중 확대에 속도를 낸다. 현장 분위기는 공장 가동률에서도 확인된다. 과거 70~80% 수준에 머물던 삼성전기와 LG이노텍의 주요 생산라인 가동률은 최근 100%에 가까운 수준으로 올라섰다. 수익성 개선 흐름은 올해 더욱 가팔라질 전망이다. 세계 1위 MLCC 업체 일본 무라타제작소가 최근 AI 수요 급증을 이유로 가격 인상 가능성을 시사했다. 시장점유율 1위 업체의 가격 정책은 업계 전반의 가격 흐름에 영향을 미친다. 후발 업체도 가격 협상력에서 유리한 위치를 확보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칩을 뒤집어 붙이는 ‘FC-BGA’GPU·ASIC 확산이 부른 기판 호황FC-BGA(플립칩 볼그리드어레이)는 AI 칩 대형화에 따라 면적과 층수가 확대되며 부가가치가 급증하는 부품이다. FC-BGA는 반도체 칩과 메인보드 사이를 연결하는 패키징 기판이다. 기판은 반도체 칩과 전자기기 내부 메인보드를 연결하는 핵심 부품이다. 반도체 칩 내부 전기 신호 통로 간격은 매우 미세한 반면, 메인보드의 통로 간격은 상대적으로 넓다. 기판은 반도체 칩의 미세한 신호를 받아 메인보드 회로 규격에 맞게 전달하는 중간 연결 역할을 수행한다. 고성능 반도체에서 입출력(I/O) 수가 급격히 증가하며 칩과 메인보드 간 신호 처리 요구 수준도 높아졌다.이 과정에서 플립칩 본딩을 적용한 FC-BGA가 주목받는다. 플립칩 본딩은 반도체 칩을 뒤집어 기판 위에 직접 접합하는 방식이다. 칩 하단에 형성된 미세한 금속 볼(솔더볼)을 통해 기판과 전기적으로 연결된다. 기존 와이어 본딩(반도체 칩과 기판을 와이어로 연결하는 전통적인 패키징 방식)이 필요 없어 공간 효율이 높고 신호 경로가 짧다. FC-BGA가 고속 데이터 처리와 고집적 설계가 필수인 AI 반도체에 적합한 패키징 기술로 평가받는 이유다.국내 업체도 기회를 노린다. 과거 FC-BGA는 이비덴 등 일본 업체가 주도했지만, 최근 삼성전기와 LG이노텍이 북미 빅테크와 고객 접점을 넓히며 시장점유율을 끌어올리고 있다. 장덕현 삼성전기 사장은 미국에서 열린 ‘CES 2026’에서 “FC-BGA는 올 하반기부터 풀가동에 들어가고, 증설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박강호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는 “AI 가속기용 GPU나 ASIC(주문형반도체)에는 고성능 패키징 기술이 필수기 때문에 FC-BGA 수요가 늘어나는 구조”라며 “칩 크기가 커지고 연산 성능이 높아질수록 기판 층수도 증가해 시장 규모 확대 요인이 된다”고 분석했다.AI 패키징 판 바꿀 ‘유리기판’SKC·삼성전기·LG이노텍 3파전‘꿈의 기판’으로 불리는 유리기판(Glass Substrate)도 ‘넥스트 HBM’ 후보로 꼽힌다. 유리기판은 반도체 패키지 기판의 내부 코어층을 플라스틱 대신 유리로 대체한 차세대 기술이다. 기존 유기기판은 고성능 반도체 구현에 한계가 있고 표면이 완전히 균일하지 않아 열과 압력이 가해질 경우 뒤틀림이 발생할 수 있다. 유리기판은 표면 거칠기가 약 10나노미터(㎚) 수준으로 매우 낮아 안정성이 뛰어나고 변형 가능성이 작다.기술 확장성도 높다. 유리기판은 초미세회로 구현이 가능하며 MLCC 등 다양한 전자 소자를 기판 내부에 내장할 수 있다. 기판 표면에 GPU와 CPU도 탑재할 수 있다. 이런 구조를 적용하면 기존 기판 대비 데이터 처리 속도는 약 40% 향상되고 전력 소비와 패키지 두께는 절반 이상 줄어드는 효과를 기대한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AI 데이터센터에 유리기판을 도입할 경우 서버 밀도를 높이면서 전력 사용량과 센터 면적을 동시에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국내 유리기판 경쟁은 3파전이다. 상용화에 가장 근접한 SKC는 자회사 앱솔릭스를 통해 미국에서 사업 경쟁력을 강화하며 샘플 공급과 인증 절차를 병행한다. 삼성전기는 핵심 소재 글라스 코어를 확보하려 지난해 일본 스미토모화학그룹과 합작법인 설립을 추진한다. 해당 법인은 올 상반기 설립 예정이며 설립이 완료되면 조기 양산 체제를 구축할 계획이다. LG이노텍도 구미 공장에 유리기판 시범생산 라인을 구축하고 2028년 양산을 목표로 기술 개발에 속도를 낸다.다만, 초기 수율 안정화 여부가 변수다. 유리기판은 공정 난도가 높아 양산 단계에서 일정한 품질과 수율을 확보하기가 까다롭다. 생산 과정에서 미세 결함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 초기 양산 단계에서 기술적 검증이 중요한 과제로 꼽힌다. 문혁수 LG이노텍 사장은 ‘CES 2026’에서 “현재 글로벌 빅테크 기업과 손잡고 유리기판 시제품 개발을 진행하고 있고, LG 그룹 계열사와 협력 시너지를 통해 유리기판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LG이노텍은 구미 공장에 유리기판 시범생산 라인을 구축하고 2028년 양산을 목표로 기술개발에 속도를 낸다. 사진은 LG이노텍 구미 공장. (LG이노텍 제공)AI 경쟁 학습 → 추론 이동HBM 빈틈 메울 HBF 부상AI 발전 과정은 크게 두 단계다. 초기 AI 시대에는 방대한 데이터를 빠르게 읽고 정리하는 학습(Learning) 능력이 핵심 경쟁력이었다. 이 과정에서 HBM은 최적 해법으로 자리 잡았다. D램을 수직 적층한 구조 덕분에 데이터 전송 속도가 빨라졌고 대역폭이 확대됐다. 최근 AI 기술 경쟁 중심은 ‘추론(Inference)’으로 이동하고 있다. GPT-4o와 제미나이 2.5 등 최신 AI 모델이 등장하며 단순 처리 속도보다 얼마나 정확하고 논리적인 결과를 도출할 수 있는지가 중요해졌다. AI가 복잡한 질문에 깊이 있는 답을 내놓으려면 이전 대화 내용과 판단 과정에서 생성된 방대한 ‘맥락 정보’를 메모리에 지속적으로 저장하고 활용해야 한다.이 지점에서 HBM의 한계가 드러난다. HBM은 D램을 수직으로 쌓는 구조로 현재 최대 16단까지 적층이 가능하다. 적층 단수가 더 늘어나면 발열과 칩이 휘어지는 문제를 제어하기 어렵다. 이런 한계를 보완할 대안으로 주목받는 기술이 HBF(고대역폭 플래시 메모리)다. HBF는 SSD에 사용되는 낸드플래시를 수직으로 적층한 구조로, 처리 속도보다는 저장 용량에서 강점을 지닌다. GPU 한 장에 테라바이트(TB) 수준의 메모리를 탑재할 수 있어 용량 기준으로는 HBM 대비 8~16배 확대가 가능하다. 또 낸드플래시는 전원이 꺼지면 데이터가 사라지는 D램과 달리 전원이 차단돼도 정보가 유지되는 비휘발성 메모리다. 이 때문에 대규모 데이터를 저장하고 반복적으로 분석해야 하는 AI 추론 작업에 적합하다는 평가다.박성현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AI가 발전하면서 메모리 수요가 급증했지만, HBM과 D램은 공급난 탓에 가격이 너무 비싸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낮은 낸드로 돌파구를 찾으려는 움직임이 생기면서 HBF가 각광받는다”고 진단했다.HBF 시장 선점을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는 곳은 SK하이닉스다. SK하이닉스는 지난 2월 샌디스크 계열사와 함께 차세대 HBF 솔루션 표준화를 추진하기 위한 글로벌 협력 체계를 구축했다. 양 사는 HBF를 ‘대규모 AI 추론에 특화한 새로운 메모리 카테고리’로 규정하고 관련 기술 표준 마련에 협력하기로 했다. 삼성전자 역시 HBF 제조에서 뛰어난 기술력을 보유한 것으로 평가된다. 낸드 시장 1위 삼성전자는 HBM 맨 아랫부분 ‘베이스 다이’ 제작 기술도 가진 만큼 HBF 제조에 뛰어들면 경쟁력을 빠르게 확보할 전망이다.[조동현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50호(2026.03.11~03.17일자) 기사입니다][Copyright (c) 매경AX.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AI 빅뱅이 낳은 반도체 新풍속도...전력·기판·패키징도 ‘슈퍼사이클...
‘넥스트 HBM’ 선두 주자는 누구인공지능(AI) 인프라 설비투자 경쟁이 반도체 산업 전반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MS·아마존·구글 등 빅테크가 데이터센터 증설을 가속하며 AI 가속기 탑재량이 급증하자 메모리뿐 아니라 전력·패키징 구조까지 한꺼번에 바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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