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신재생에너지기자단 조수윤
[환경일보] 무대 위 거대한 세트와 화려한 조명, 배우들의 의상은 관객의 시선을 한눈에 사로잡으며 극에 몰입하게 한다. 그러나 막이 내리면 이 무대는 쓰레기가 돼 트럭에 실려 간다. 종연 이후에는 막대한 폐기물이 발생하지만, 관객들은 그 이후의 과정을 쉽게 접하지 못한다. 공연이 남긴 감동 뒤에는 어떤 환경 흔적이 남을까?
버릴 수밖에 없는 세트, 문제는 산업 구조
무대 세트는 나무 합판, 쇠 파이프, 철판 등으로 이뤄진다. 이는 대부분 소각된다. 작품마다 구조와 디자인이 달라 재활용이 어렵기 때문이다. 의상이나 가구, 가발과 같은 소품도 함께 버려진다. 공연이 마무리되면 소극장 규모의 공연에서만 한 번에 1톤 트럭 1~2대 규모의 폐기물이 발생한다. 대규모 공연이 끝난 뒤에는 이보다 더 많은 폐기물이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극단은 왜 정성스럽게 제작한 무대를 버릴 수밖에 없는 것일까? 문제는 공연 제작 구조에 있다. 보통 초연 공연이 재연에 성공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재연 계획이 없다면 초연 공연 때 선보인 무대나 소품은 쓸모가 없어진다. 공연 물품을 보관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공간과 비용이 필요하다. 국립극단같이 국고 보조를 받아 예산에 여유가 있다면 창고를 임대해 무대 세트를 보관할 수 있지만, 규모가 작은 극장은 보관 장소도 부족할뿐더러 창고 임대 비용보다 차라리 폐기하는 것이 더 경제적인 경우가 많다. 언제 다시 사용될지 모르는 세트를 장기간 보관해 두는 것은 극단 입장에서 큰 부담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무대 세트와 공연이 끝난 뒤 쌓인 폐기물(Chat GPT 생성) /자료=조수윤 객원기자
다시 사용되는 공연 물품 ‘공쓰재’, ‘빨간지붕 나눔장터’
공연계는 버려지는 무대 소품과 세트를 다시 사용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중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공쓰재’(공연에 쓰고 나온 무대 소품과 세트 등을 재활용하는) 플리마켓이다. 공쓰재는 스탭서울에서 주관하는 공연 예술계 최초의 친환경 캠페인으로, 업계 종사자들이 참여해 무대 소품, 의상, 세트, 음향·조명 장비 등을 나눔 및 판매한다. 온라인에서는 공쓰재 공식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나무 계단이나 대형 아크릴판 등 세트 자재를 나눔하고 있다. 2012년부터 시작된 공쓰재는 긍정적인 반응을 얻어 현재까지 매년 이어지고 있다.
국립극단에서는 2022년부터 2023년까지 ‘빨간지붕 나눔장터’를 진행했다. 이 행사에서는 국립극단 무대에서 실제 사용된 무대 소품과 의상을 민간연극 단체에 무상으로 제공했다. 특히 2023년에는 60개의 극단이 참여했으며, 국립극단은 의상, 소품, 조명 컬러필터 등 약 1800개의 물건을 제공했다. 그러나 일회성 물품 나눔 행사로는 폐기물 문제를 지속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계속해서 제기됐다.
사지 않고 빌려 쓰기 ‘리스테이지 서울’
재사용을 위한 더욱 체계적인 플랫폼이 등장했다. 바로 ‘리스테이지 서울’이다. 이는 서울시가 주최하고 서울문화재단이 주관하는 공익 목적의 플랫폼으로, 공연에 필요한 의상, 소품, 대도구를 대여할 수 있다. 사용자는 공식 사이트에서 필요한 공연 물품을 찾아 신청하고, 오프라인 창고에 방문해 물건을 찾아가면 된다. 또한 사용하지 않는 무대 소품을 맡겨 다른 공연가와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위탁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리스테이지 서울에서 2026년 1월 22일 발행한 ‘2025 서울문화재단 리스테이지 서울 친환경 리포트’에 따르면 전년 대비 이용률이 약 3배 증가했으며, 연간 총 대여 물품 수는 2023년 228점으로 시작해 2024년에는 3416점, 2025년 7638점으로 매년 증가했다. 이에 따라 공연예술인의 제작비 3억7000만원 절감 효과가 있었다고 밝혔다. 또한, 문화 및 예술 활동에서 발생하는 환경적 영향 측정 도구인 CC Tools(Creative Climate Tools)를 통해 공연 물품을 재사용해 얻은 환경적 효과, 즉 제작·구매 단계의 연간 탄소 배출량을 측정한 결과 약 59톤을 절감했다고 한다. 이전에는 공연마다 물품을 새로 구매하고 제작해야 했다면, 리스테이지 서울을 통해 기존 자원을 공유해 창작 비용을 절감하고, 제작·운송·폐기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적 부담을 줄일 수 있는 것이다.
공연 산업 역시 환경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제는 작품의 완성도뿐만 아니라 무대를 제작하고 철거하는 과정까지 함께 고민해야 한다. /사진=환경일보DB
공연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공연 폐기물을 줄이기 위한 움직임은 이미 시작됐다. 공연계에서는 플리마켓이나 공유 플랫폼을 통해 공연 폐기물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현장에서 진행되는 프로젝트를 넘어 제도적 논의로도 이어졌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는 ‘문화예술부문의 지속가능 가이드북’을,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는 ‘그린뉴딜 가이드북’을 발표하는 등 친환경 제작 방식을 고민하는 사례도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창작 현장에서는 시간과 인력 부족 등 현실적인 제약으로 인해 이를 고려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대 위의 감동은 극장 밖 환경을 해치지 않아야 한다. 공연 산업 역시 환경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제는 작품의 완성도뿐만 아니라 무대를 제작하고 철거하는 과정까지 함께 고민해야 한다.
<글 / 대학생신재생에너지기자단 조수윤 sooyun042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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