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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호르무즈 해협, 원유 넘어 반도체·석유화학까지 멈춘다…'공정 중단형...

삼성전자가 일부 생산라인에 '헬륨 재사용 시스템(HeRS)'을 적용하고 있지만, 일부 공정에서 질소나 아르곤으로 대체할 수 있을 뿐 헬륨의 높은 열전도율 때문에 완전 대체는 불가능하다. 중국 대응 주요 경과. / 그래픽...

호르무즈 해협, 원유 넘어 반도체·석유화학까지 멈춘다…'공정 중단형...

나프타·헬륨 등 8대 품목 공급망 리스크 확산

브레트유 가격. / 그래픽=연합뉴스

[파이낸셜리뷰=박상민 기자] 미국과 이란 간 군사적 갈등이 장기화하면서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봉쇄되고, 전 세계 해상 원유 수송량의 32%가 차단됐다. 브렌트유가 배럴당 197달러까지 치솟은 가운데, 충격은 유가 상승에 그치지 않고 있다. 나프타·헬륨 등 석유화학·반도체 핵심 원료의 물량 자체가 끊기면서 국내 제조업이 '가격 상승'이 아닌 '공정 중단'에 직면하고 있다.

전 세계 해상 원유 수송량 32% 차단

호르무즈 해협 폐쇄로 전 세계 해상 원유 수송량의 약 32%가 차단됐다. 사우디아라비아 최대 정유시설인 라스 타누라(Ras Tanura) 공장이 드론 공격을 받았고, UAE 루와이스(Ruwais) 정유공장도 가동이 중단됐다. 중동 산유국들의 감산 조치로 하루 약 800만 배럴의 원유 공급이 줄었으며, 브렌트유 가격은 올해 1월 초 배럴당 81달러 수준에서 3월 셋째 주 197달러까지 치솟았다.

한국은 원유 수입의 약 70%를 중동에 의존하고 있다. 수입 상위 6개국 중 비중동 국가는 미국이 유일하다. 국제에너지기구(IEA) 기준 세계 6위 비축 국가이지만, 사태가 장기화하면 비축유 방출과 석유 최고가격제만으로는 타격을 피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동 리스크 8대 핵심 품목 공급망 관리 등급. / 그래픽= 한국무역협회(K-stat)

에너지 넘어 '공정 중단'으로

에너지 가격 상승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원유·LNG 공급 차질이 나프타(석유화학 기초원료), 헬륨(반도체·전자 소재), 알루미늄(자동차·건설), 암모니아(비료·화학)까지 연쇄적으로 파급되는 구조적 취약성이 핵심이다.

한국무역협회는 중동 공급 의존도, 대체 공급망 제약도, 국내 산업 영향도, 공정 중단 위험도를 기준으로 8대 핵심 영향 품목을 도출하고, 세 가지 등급으로 대응 우선순위를 분류했다.

'공정 유지 우선관리' 등급에는 원유, 나프타, 헬륨이 포함됐다. 이 세 품목은 공급 차질 시 단기간 내 생산라인이 멈출 수 있다. 특히 나프타는 리스크가 가장 높은 것으로 평가됐다. 국내 석유제품 소비의 49.4%를 차지하면서, 수입 상위 3개국(UAE·알제리·카타르)의 비중 합계가 51.6%에 달해 중동 리스크에 직접 노출돼 있다. 원유와 중간재 차질이 동시에 발생할 수 있는 구조여서, 공급 불안 시 LG화학·롯데케미칼 등 국내 석유화학 기업의 NCC(나프타분해시설) 공정 전반에 영향이 확산될 수 있다.

'수급 안정 중점관리' 등급에는 LNG, 암모니아 등이 올랐다. LNG의 경우 세계 최대 생산시설인 카타르 라스라판(Ras Laffan) 공장이 이란의 공격으로 가동이 중단됐고, 카타르에너지는 불가항력을 선언했다. 한국의 전체 천연가스 수입량 중 카타르산 비중은 약 15%다. 미국의 LNG 수출 설비는 이미 최대 용량으로 가동 중이어서 대체 물량 확보도 쉽지 않다.

'가격·물류 모니터링' 등급에는 LPG와 알루미늄이 분류됐다. LPG는 미국산 수입 비중이 높아(프로판 93.9%) 물리적 공급 부족 가능성은 낮지만, 해상운송 의존 특성상 물류비 부담 확대에 대한 지속적 모니터링이 필요하다.

반도체 공정의 아킬레스건, 헬륨

산업 현장의 긴장감이 가장 높은 품목은 헬륨이다. 영하 269도의 특수 운송 인프라가 필요한 헬륨은 천연가스 처리 과정의 부산물로 생산되며, 반도체·디스플레이 제조 공정의 냉각재로 사용된다. 한국의 카타르 헬륨 수입 의존도는 64.7%에 이른다. 카타르가 전 세계 헬륨 공급의 30% 이상을 담당하는데, 이란의 드론 공격으로 카타르 최대 헬륨 산업단지가 가동 중단되면서 글로벌 현물가가 이미 약 50% 상승했다.

글로벌 헬륨 생산국은 미국(42.6%), 카타르(33.2%), 러시아(9.5%) 등 극소수에 불과해 수입선 다변화도 쉽지 않다. 삼성전자가 일부 생산라인에 '헬륨 재사용 시스템(HeRS)'을 적용하고 있지만, 일부 공정에서 질소나 아르곤으로 대체할 수 있을 뿐 헬륨의 높은 열전도율 때문에 완전 대체는 불가능하다.

중국 대응 주요 경과. / 그래픽=박상민 기자

중국 정제유 수출 전면 중단, 일본 8000만 배럴 방출

주요국들은 이미 비상 대응에 나섰다. 중국은 3월 11일 세관 절차를 마치지 않은 모든 정제유 수출을 즉시 중단하라는 긴급 명령을 발표했다. 자국 물량 우선 확보에 나선 것이다. 일본은 역대 최대 규모인 8000만 배럴의 비축유 방출을 결정하고, 보조금을 통해 전국 휘발유 가격을 리터당 170엔 수준으로 억제하고 있다. 대만은 휘발유·경유 관세를 최대 50%까지 인하하며, 유가 인상분의 60%를 정부가 부담하는 방식으로 내수 유가 안정을 도모하고 있다.

한국도 긴급 대응에 나서고 있다. 관세청은 지난달 31일 러시아산 나프타 2.79만 톤에 대해 긴급통관을 지원했고,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미국 벤처글로벌과 LNG 20년 장기계약을 2월 27일 체결했다. 한국가스공사는 일본 JERA와 LNG 공급 협력 협약을 맺었다.

"수입선 다변화만으론 한계"… 조달 체계 자체를 바꿔야

이번 사태의 본질은 '산지 집중'과 '해상 병목'이 결합된 구조적 공급 충격이다. 일부 핵심 품목은 원료와 중간재 공급망이 모두 중동에 연계돼 있어, 수입국이 아닌 원료 생산지 기준으로 공급망 구조를 재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나프타만 해도 수입국을 다변화해도 원유 자체가 중동 의존이라 원료 기준 중동 의존도는 여전히 높다.

한국무역협회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단순한 수입선 다변화를 넘어, 평시에 민간이 물량을 선확보하고 비상 시 국내 공급으로 전환할 수 있는 '실물 확보형 비상공급 체계' 구축을 제안했다. 일본은 이미 '전략적 완충 LNG 제도(SBL)'를 통해 정부가 지정한 민간 사업자가 추가 물량을 비축하고, 위기 시 국내에 공급하는 구조를 운영하고 있다.

에너지 효율 구조의 체질 개선도 시급하다. 한국의 1차 에너지 원단위(0.131)는 OECD 평균(0.089) 대비 1.5배 높다. 국제유가 10% 상승 시 국내 제조업 생산 원가가 0.71% 오르고, 전체 수출은 0.39% 줄어든다. 설비의 전기화, 연료 다변화, 핵심 소재의 회수·재활용 시스템 구축 없이는 유가 충격이 반복될 때마다 같은 위기를 겪을 수밖에 없다.

중동 리스크가 '에너지 가격 안정' 대책의 범위를 넘어서고 있다. '산업 공정 유지를 위한 공급망 대응 체계'로의 전환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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