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픽사베이
요즘 ‘미래를 준비한다’는 말은 ‘인공지능(AI)을 준비한다’는 말과 같은 의미가 됐다. 학교는 AI 교육을 앞다퉈 강화하고, 직장인은 생성형 AI로 보고서를 쓰고 자료를 정리한다. 어떤 직업이 살아남을지, 인간에게 어떤 능력이 끝까지 남을지를 둘러싼 논의도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하지만 정작 아무도 잘 묻지 않는 질문이 하나 있다. AI가 정말로 사람의 일을 덜어준다면, 우리는 그 남은 시간을 무엇으로 채우며 살 것인가.
필자는 이 질문의 답 가운데 하나가 운동과 스포츠라고 생각한다. AI가 발전할수록 자신의 몸을 움직이고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능력은 오히려 더 중요해질 것이다. 지금까지 운동의 가치는 주로 비만 예방, 체력 증진, 건강이라는 관점에서 설명돼 왔다. 하지만 AI 시대에는 한 가지 의미가 더해진다. 늘어날 여가를 제대로 누릴 수 있도록 준비하는 일이다.
◇ AI가 만들어 준 시간, 여가로 이어지려면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한국은행 조사에 따르면 국내 취업자의 절반 이상이 생성형 AI를 업무에 활용하고 있다. AI를 사용하는 근로자는 같은 일을 처리하는 시간을 평균 3.8% 줄였는데, 주 40시간 근무로 환산하면 약 1.5시간이다. 자율로봇과 협업하는 근로자도 현재 11%에서 앞으로 27%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됐다.
지금의 생성형 AI가 글쓰기와 정보 검색, 분석 같은 지적 노동을 돕는다면 앞으로 로봇과 자율시스템이 결합한 ‘피지컬 AI’는 공장과 물류, 서비스 현장까지 바꿔놓을 수 있다. 산업 혁명이 인간의 근력을 기계로 대신했다면 생성형 AI는 지적 노동의 일부를 맡기 시작했고, 피지컬 AI는 실제 공간에서 사람이 하던 일까지 대신하려 한다.
물론 AI가 한 시간의 일을 줄였다고 그 한 시간이 곧바로 여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더 많은 일을 할 수도 있고 노동 시간을 줄일 수도 있다. 기술은 시간을 만들어낼 수 있지만 그 시간을 누가 갖는지는 기업과 사회가 결정한다. 그럼에도 같은 결과를 얻기 위해 인간이 투입하는 시간과 노동을 줄일 수 있는 조건은 이미 빠르게 갖춰지고 있다. 그 변화가 커질수록 중요한 질문도 달라진다. 무엇을 하며 일할 것인가 만큼, 일하지 않는 시간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가 핵심이 된다.
2024년 생활시간조사에서 국민의 하루 평균 여가 시간은 5시간 8분이었다. 5년 전보다 21분 늘었고 스포츠·레포츠 시간도 5분 증가했다. 하지만 같은 기간 미디어 이용 시간 역시 17분 늘었다. 하루 여가 가운데 미디어 이용은 2시간 43분, 스포츠·레포츠는 35분에 그쳤다.
지난해 국민생활체육조사에서도 체육 활동에 참여하지 않는 이유로 가장 많이 꼽힌 것은 ‘시간 부족’(58.4%)이었다. 하지만 ‘관심 부족’도 51.2%, ‘체육에 소질이 없어서’라는 응답도 31.7%였다. 결국 시간만 늘어난다고 운동을 즐기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운동과 스포츠는 다른 여가와 조금 다르다. 영상을 보는 것은 오늘부터 시작할 수 있지만 수영은 물에 뜨고 호흡하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 테니스와 배드민턴도 기본기를 익혀야 재미가 붙는다. 달리기조차 자신의 페이스와 몸의 반응을 알아가는 시간이 필요하다. 운동을 즐기는 능력 역시 경험을 통해 배워야 한다.
◇ AI가 대신할 수 없는 경험
AI는 글과 그림을 만들고 음악과 영상도 제작한다. 디지털 콘텐츠는 앞으로 더 빠르고 값싸게 생산될 것이다. 반면 스포츠는 실제 사람이 실제 몸으로 결과를 만들어낸다. 축구 경기 막판에 골이 들어갈지, 마라톤에서 누가 마지막까지 버틸지는 생성 버튼으로 만들어낼 수 없다.
글로벌 회계·컨설팅 기업 PwC가 스포츠와 콘서트처럼 사람들이 실제 공간에서 경험을 공유하는 ‘공유 현실’의 가치에 주목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디지털 경험이 넘쳐날수록 실제 사람과 실제 공간에서 만들어지는 경험은 오히려 희소해질 수 있다.
스포츠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간다. 우리는 경기를 보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참여할 수 있다. 직접 공을 차고, 물에 뛰어들고, 산을 오를 수 있다. 보는 스포츠가 타인의 몸이 빚어낸 이야기를 읽는 일이라면, 하는 스포츠는 자신의 몸으로 그 이야기를 직접 쓰는 일이다.
운동만이 가진 결정적인 차이도 여기에 있다. AI는 운동 프로그램을 짜줄 수 있지만 내 심폐 체력을 대신 높여줄 수는 없다. 내 근육을 대신 강하게 만들 수도 없다. 테니스 공이 라켓 중심에 맞는 감각이나 물속에서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는 능력도 대신 익혀줄 수 없다. 운동의 경험과 신체의 적응은 다른 사람이나 기계에 위임할 수 없다.
따라서 체육 교육의 의미도 다르게 볼 필요가 있다. 체육 교육은 단순히 칼로리를 소비하기 위한 시간이 아니다. 자신의 몸으로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즐길 수 있는지를 경험하게 하는 교육이기도 하다.
아이들은 학교 체육에서 공을 차고, 달리고, 헤엄치고, 라켓을 휘둘러보는 등 여러 움직임을 경험할 필요가 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운동을 발견할 수 있다. 성인도 마찬가지다. 수영 강습을 시작하고, 라켓 스포츠의 기본기를 배우고, 달리는 법을 익힐 수 있다. 잘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나중에도 꺼내 쓸 수 있는 운동 하나를 만들어두는 것이다.
지금은 아직 AI 혁명의 과도기다. 하지만 사람이 직접 해야 하는 일이 줄어들수록 ‘남는 시간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라는 질문은 더 많은 사람에게 중요해질 것이다. 그때 운동을 시작해도 늦지는 않다. 다만 수영도, 테니스도, 러닝도 제대로 즐기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운동은 여가가 생긴 뒤 찾는 것이 아니라, 여가를 누리기 위해 미리 준비해둘 수 있는 능력이다.
우리는 AI 사용법을 배우고 미래의 일에 대비하고 있다. 이제 미래의 여가에도 대비할 필요가 있다. AI가 인간에게 시간을 돌려줄 수 있는 시대가 오기 전에, 그 시간을 즐길 준비부터 해두자. AI 시대를 준비하면서 AI만 배울 일이 아니다. 지금부터 평생 즐길 운동 하나쯤은 배워두자.
● 허찬솔 전북대 교수 프로필
서울대학교 체육교육과를 졸업하고 텍사스오스틴대학교(UT Austin)에서 운동생리학 전공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고 조지워싱턴대학교 의과대학(GWU School of Medicine) 연구원으로 재직하며 시작한 운동 피로 및 회복 분야의 연구를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현재 한국운동생리학회 상임이사로 활동 중이다.
허찬솔 전북대 체육교육과 교수 weeklyhk@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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