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문학은 우리를 삶으로 한 발 나아가게 한다”···아비뇽서 전한 ‘연결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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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뇽 | 노정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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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뇽 페스티벌 대담 참석한 한강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오랜만에 공식 석상 참여
“봉주르” 인사, 회랑 꽉 채운 관객들은 ‘초집중’
기억과 망각, 흔적을 남기는 문학의 의미 말해
절망적인 문학도 “혼자가 아니구나” 느끼게 해
“세상과 연결돼 있다는 것이 기적”
12일(현지시간) 프랑스 아비뇽에서 한강 작가가 ‘어떻게 눈 위에 흔적을 남길 수 있을까(How can we write about snow?)’라는 주제로 열린 로르 애들러와의 대담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노정연 기자
세계 최대 공연예술축제가 열리고 있는 프랑스 아비뇽. 12일(현지시간) 한낮의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생루이 회랑(Cloître Saint-Louis)은 한강 작가를 만나기 위해 모인 관객들로 가득 찼다.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공개 석상에 좀처럼 나서지 않던 한강 작가가 아비뇽 페스티벌 공식 프로그램인 ‘카페 데 이데(Café des idées)’ 참석을 위해 모습을 드러냈다. 한강 작가는 이날 프랑스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로르 애들러와 ‘어떻게 눈 위에 흔적을 남길 수 있을까(How can we write about snow?)’를 주제로 대담을 나눴다. 약 90분간 진행된 대담에서 한강은 기억과 망각, 그리고 사라지는 것 위에 흔적을 남기는 문학의 의미를 풀어냈다.
단상에 오른 그는 프랑스어로 “봉주르(Bonjour)”라고 인사하며 “만나서 반갑고 사랑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한강 작가는 대담의 주제인 ‘어떻게 눈 위에 흔적을 남길 수 있을까’에 대해 자신의 작품 세계를 바탕으로 섬세한 사유를 이어갔다. 눈처럼 사라지는 존재 위에 글을 쓴다는 것, 그리고 망각에 맞서 기억을 남기려는 문학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였다.
12일(현지시간) 프랑스 아비뇽에서 한강 작가가 ‘어떻게 눈 위에 흔적을 남길 수 있을까(How can we write about snow?)’라는 주제로 열린 로르 애들러와의 대담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노정연 기자
그는 “<작별하지 않는다>를 쓰는 7년 동안 겨울이 오면 일부러 눈을 만지며 그 감각을 잊지 않으려 했다”며 “눈은 차갑고 부드럽고, 결국 사라지는 존재다. 우리 역시 모두 한계를 가진 존재이기에 그 위에 글을 쓴다는 것이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가장 절망적인 이야기를 다루는 문학이라도 읽는 동안에는 ‘이 사람이 고통의 자리를 지나갔고 나도 혼자가 아니구나’라는 감각을 준다. 문학은 결국 우리를 삶 쪽으로 한 발 나아가게 한다”고 말했다.
이날 대화에서 그가 가장 자주 꺼낸 단어는 ‘연결’이었다. 14살에 작가를 꿈꾸고 10년 뒤 등단하며 세상과 연결되는 기쁨을 맛봤다는 그는 30여 년간 이어온 글쓰기에 대해 “세상과 연결되어 왔다는 것이 기적처럼 느껴진다”고 고백했다.
그는 “문학을 읽을 때 느껴지는 진실한 순간들이 결국 우리를 연결하는 것 같다”며 “며칠 전 아비뇽에 비가 내렸다고 들었는데, 그 비가 3년 전 서울에서 제가 맞았던 비일 수도 있다”며 “물이 순환하듯 우리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소설 속에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
개인적 글쓰기와 정치적 글쓰기의 경계에 대한 질문에는 “저에게는 개인적인 글쓰기와 정치적인 글쓰기가 나뉘지 않는다”라며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 두 작품 모두 한국의 역사를 다루지만 인간의 보편적인 내면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인류 역사 속에서 반복되어 온 폭력과 그 이후에도 끝나지 않는 애도를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한강 작가는 자신이 글을 쓰는 방식에 대해 “소설을 시작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의 순간”이라며 “그 순간을 향해 다가가기 위해 한 권의 책을 쓰는 것 같다”고 답했다. 또 “글을 쓸 때는 몸을 사용하려고 노력한다.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따뜻함과 아픔까지 모든 감각을 문장 안에 넣으려 한다”며 “독자들이 그것을 느꼈다고 말해줄 때는 기적이 일어난 것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차기작에 대해선 “쓰고 싶은 소설이 3개 있는데, 하나를 끝내면 또 하나가 생겨난다. 끝없이 줄어들지 않는, 죽을 수도 없는 운명 같은 일”이라고 말해 관객의 웃음을 자아냈다.
한강 작가가 12일(현지시간) 아비뇽 페스티벌에서 ‘작가와의 대화’ 행사가 끝난 후 활짝 웃고 있다. 연합뉴스
12일(현지시간) 프랑스 아비뇽에서 한강 작가가 ‘어떻게 눈 위에 흔적을 남길 수 있을까(How can we write about snow?)’라는 주제로 열린 로르 애들러와의 대담이 끝난 후 관객들에게 사인해 주고 있다. 노정연 기자
한시간 넘게 대담이 진행되는 동안 관객들은 한강 작가의 말을 놓치지 않으려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관객들은 행사장 계단과 회랑 바닥, 벽면까지 가득 메우고 그의 발언을 노트에 받아 적기도 했다.
아비뇽 페스티벌측은 이번 행사를 “기억(memory), 침묵(silence), 그리고 무엇이 다음 세대로 전해지는가(what is passed on)”를 함께 이야기하는 자리라고 소개했다. 아비뇽 페스티벌은 올해 공식 초청 언어로 한국어를 선정했는데, 아시아 언어권 최초다.
한강은 오는 15~16일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를 원작으로 한 낭독 공연 <오아조(Oiseau·새)>로 또 한번 관객을 만난다. 교황청 명예극장에서 열리는 공연에는 프랑스 배우 이자벨 위페르와 한국 배우 이혜영이 낭독자로 나선다.
12일(현지시간) 프랑스 아비뇽 생루이 회랑에서 한 관객이 한강 작가의 책들을 사진에 담고 있다. 노정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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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khan.co.kr/article/202607121409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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