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요 10:16)
나는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몇 가지 성경 구절을 좌우명으로 삼았다. “크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고”(막 10:43)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마 25:40) 등이 그렇다. 그 가운데 목회자가 된 내게 지침이 된 게 오늘 본문이다.
이 말씀은 ‘목자장(牧者章)’으로 유명한 요한복음 10장에 있다. 신자라면 누구나 선한 목자가 나오는 이 장을 좋아한다. 그러나 여기서 선한 목자만 나오는 건 아니다. 신자들은 흔히 요한복음 10장을 15절까지만 읽어서 16절 이후 내용을 잘 모르는 경우가 적잖다. 그러나 이 장은 ‘목자장(牧者長)’ 되신 예수님의 두 가지 면을 말한다. 먼저 1~15절에는 우리 안에 있는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선한 목자가 등장한다. 삯꾼은 양을 버리지만 선한 목자는 목숨을 버린다. 우리 예수님은 그런 분이시다.
한편 16~18절에는 비록 지금은 우리 밖에 있지만 언젠가 우리 안으로 들어와 ‘한 목자’ 아래 있을 양을 부르는 목자가 나온다. 우리는 죄인이고 자기중심적이다 보니 신앙도 그런 식일 때가 많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신자나 교회나 사역의 구심성(목회)과 원심성(선교)의 균형을 맞추지 못하곤 한다.
우리와 달리 예수님의 시각은 다르다. 우리는 우리 안의 양만 보기 쉬우나 예수님은 우리 밖의 양까지 보신다. 예수님은 신자를 사랑하는 목회자이자 비신자를 부르는 선교사이다. 99마리 양을 놔두고 1마리 잃어버린 양을 찾아 나선다는 비유가 빈말이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요한복음 10장은 1~15절과 16~18절을 같이 읽어야 뜻이 제대로 산다. 예수님처럼 동시에 선한 목자이자 한 목자가 돼야 한다. 곧 목회적 선교, 선교적 목회를 해야 한다. 그러나 역량이 부족해 한 가지만 택해야 하면 무엇을 택할까. 나는 이 말씀으로 인해 후자를 택하는 마음을 품었다. 곧 내 소명 구절이다.
아직 우리에 들어오지 않은 양이 참 많다. 그래서 나는 장애인 선교와 세계 선교 등 전선(frontier)과 주변(margin), 약자를 향하는 길을 지향했다. 사역 방향을 결정할 때 이 구절이 지침이 되곤 했다. 지금도 우리 밖의 양을 우리 안의 양으로 옮기는 예수님의 위대한 사역에 동참할 걸 생각하면 힘이 솟고 신이 난다. 그간 여러 가지 공부를 하고 다양한 일을 해왔다. 겉에서 보면 잡다할 수 있지만 안에서 보면 다 이유가 있고 일관성이 있는 일이었다. 내게 요한복음 10장 16절은 예수님의 큰 선물이다.
<약력>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총회 북한선교연구소장 △한국장애인신학회장 △전 몽골 선교사 △장로회신학대 은퇴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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