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중 한국도로교통공단 이사장
자율주행 시대가 현실화하고 있다. 이동의 역사는 도구의 발전을 넘어 ‘판단 주체’의 변화로 이어지고 있다. 말(馬)에서 자동차로, 이제는 인간을 인공지능(AI)이 대체하는 자율주행 시대로 진입했다. 도로 위에서 AI가 운전하는 교통 환경은 단순한 기술적 진보 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는 우리가 수백 년간 유지해온 도로 위의 질서와 안전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새롭게 써야 함을 시사한다.
현재 우리는 인간 운전자와 자율주행 시스템이 공존하는 이른바 ‘혼재 교통(Mixed Traffic)’의 과도기에 있다. 기계는 규범에 따라 정교하게 반응하지만, 인간은 상황과 감정에 따라 유연하게, 때로는 돌발적으로 판단한다. 이 이질적인 두 주체가 한 도로 위에서 충돌 없이 공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예측 가능성’이 담보돼야 한다.
실제 미국에서는 자율주행차가 보행자나 신호를 잘못 인식해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기술은 완벽을 향해 가고 있지만 도로 위의 변수는 여전히 무한하다. 이에 한국도로교통공단은 사후 단속 중심이었던 기존 교통행정의 틀을 깨고, 자율주행시대에 대비하는 ‘사전 검증과 예방’ 중심의 새로운 안전 패러다임을 구축하고 있다. 공단이 추진 중인 ‘자율주행 평가·검증단지’는 안전운전에 관한 차량 성능을 사전에 시험하는 곳이다. 도심 생활도로부터 험준한 산악도로까지, 대한민국의 복잡다단한 도로 환경을 디지털과 물리적 공간에 구현해 AI의 ‘안전 운전 능력’을 공인하는 역할을 한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차량 제조사가 달라도 같은 규칙으로 소통할 수 있도록, 도로 위의 공용어인 ‘차량-사물 간 통신(V2X)’ 데이터 표준화를 선도하고 있다. 데이터의 표준화는 안전의 표준화를 의미한다.
자율주행 시대의 진짜 경쟁력은 기술 그 자체보다, 그 기술을 포용하는 사회적 신뢰와 제도적 정교함에 있다. 사고가 발생하면 책임 소재를 가리는 다양한 체계를 정비하고, 신규 운전면허 취득자를 대상으로 자율주행 윤리 교육을 강화하는 일은 기술보다 앞선 ‘인간 존엄’의 가치를 시스템으로 구현하는 핵심 과제다. 한국도로교통공단은 자율주행이라는 거대한 흐름 앞에서, 단순한 관리자를 넘어 미래 모빌리티의 ‘안전 설계자’로 새로운 길을 열어갈 것이다.
촘촘하게 설계된 안전 기준과 이를 뒷받침하는 데이터 인프라, 그리고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는 성숙한 시민의식, 이 세 박자가 맞물릴 때 자율주행은 우리에게 진정한 이동의 자유를 선사할 것이다. 기술의 속도보다 중요한 건 결국 안전을 향한 올바른 방향성이다.
김희중 한국도로교통공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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