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장수성 난징시 장수성미술관 초대
‘김광호의 사군자와 존재미학’전은 15일까지
산둥성 르자오시 미술관 초대전은 10월 15일부터 한달간
김광호 작가가 자신의 작업실에서 작품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황인옥기자
흔히 사군자라고 하면 한지에 먹으로 그린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를 떠올린다. 그러나 조각가 김광호는 사군자의 선입견을 허문다. 한지와 먹이 아닌 철로 사군자를 조각한다. 종이 위에서 붓의 속도와 먹의 농담으로 표현되던 사군자를 철의 선과 면으로 옮기고, 그 사이에 비어 있는 공간을 만든다. 여기에 빛이 닿으면 철의 형상 뒤로 또 하나의 사군자가 나타난다.
실체와 그림자가 겹쳐지며 하나의 작품을 이루는 그의 사군자 조각이 사군자의 원류인 중국에서 소개되고 있다. 2회에 걸쳐 중국에서 열리는 그의 초대전은 사군자의 문화적 뿌리를 공유하는 중국에서 한국 작가가 전통 회화의 익숙한 소재를 현대 조각의 언어로 다시 풀어낸다는 점에서 의미를 더한다.
먼저 중국 장수성(江蘇省) 난징시(南京市)의 장수성미술관에서 ‘김광호의 사군자와 존재미학’전이 15일까지 열리고 있다. 난징대학교 예술대학이 주최하고 장쑤성미술관이 주관하며 한중도시우호협회와 주상하이한국문화원이 지원하는 이번 난징 전시에는 매화·난초·국화·대나무를 소재로 한 사군자 조각을 비롯해 김 작가의 작업세계를 보여주는 50점여의 작품이 소개된다. 가로 8m에 이르는 매화 대작도 선보인다. 특히 장쑤성미술관 개관 90주년을 기념하는 첫 해외 작가 초대전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는 이어 10월 15일부터 산둥성(山東省) 르자오시(日照市) 미술관에서 한 달간 두 번째 초대전을 연다.
김광호 작가가 자신의 작업실에 걸린 사군자 조작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황인옥기자
김광호가 사군자를 조각의 소재로 삼은 것은 단순히 전통 소재를 현대적으로 변주하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그의 작업에는 오히려 ‘평면은 어떻게 입체가 되고, 입체는 어떻게 다시 이미지가 되는가’라는 조형적 질문이 놓여 있다.
회화의 소재가 되기 이전 사군자는 자연 속에서 입체로 존재했다. 매화는 가지를 뻗고, 대나무는 마디를 세우며 공간을 점유한다. 그러나 인간은 이 입체적 존재를 종이 위에 평면으로 옮겨놓았다. 김광호는 바로 이 지점에서 작업을 시작한다. “제 작업은 오랜 시간 회화 속에서 평면화된 사군자를 다시 공간으로 끌어내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김광호 사군자 조각의 주된 재료는 철과 돌이다. 특히 철은 단단한 물질이면서도 가공을 통해 선과 면, 굴곡과 공간을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매료됐다. 종이 위의 붓질은 철의 선으로 바뀌고, 회화에서 비어 있던 여백은 실제 공간으로 전환된다. 결과적으로 사군자의 ‘그림’을 조각하는 것이 아니라 사군자가 회화로 존재해 온 방식을 조각의 관점에서 다시 해석하는 셈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 ‘그림자’가 들어온다. 입체가 된 사군자 조각에 빛이 내리쬐면 그림자가 만들어진다. 그런데 김광호는 그림자를 조각의 뒤편에 빛에 의해 우연히 생기는 부수적인 현상으로 두지 않는다. 실체가 있어야 발생하고 빛이 있어야 드러나는 그림자는 그 자체로 존재의 조건을 드러내는 매개가 된다.
“내가 누구냐에 대한 답이 그림자입니다. 실체가 있어야 그림자가 생기고, 빛이 있어야 그림자가 드러나니까요. 그리고 그림자는 곧 빛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의 작업에서 그림자는 실체에 종속된 결과물이면서 동시에 실체를 다시 규정하는 존재가 된다. 철로 만들어진 사군자가 하나의 형상이라면, 빛이 만들어낸 그림자는 그 형상이 공간 속에서 어떻게 존재하는지를 보여주는 또 다른 형상이다. 조각과 그림자가 서로를 설명하면서 작품의 의미가 완성된다.
여기에서 김광호의 작업은 전통적인 조각의 개념에서도 한 발짝 벗어난다. 일반적으로 조각은 물질의 부피와 무게, 표면과 구조를 통해 존재감을 드러낸다. 반면 그의 작품에서는 비어 있는 부분이 적극적으로 조형에 개입한다. 철과 철 사이의 공간, 프레임 안의 여백, 그리고 그 여백을 통과한 빛이 만들어내는 그림자가 모두 작품의 구성요소가 된다. 비어 있음이 결핍이 아니라 하나의 적극적인 형태로 기능하는 것이다.
그는 이를 ‘평면을 입체로 환원하는 작업’이라고 설명한다. 전통 회화가 자연의 입체를 평면의 이미지로 옮겨놓았다면, 그는 다시 그 이미지를 입체로 되돌린다. 그러나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입체가 된 사군자는 빛을 만나 다시 그림자가 되고, 그림자는 또 다른 평면적 이미지가 된다. 평면에서 입체로, 입체에서 그림자로 이어지는 순환구조가 그의 조각을 형성한다.
김광호 작
작품 제작은 다층적으로 진행된다. 작업은 작가가 직접 종이에 사군자를 그리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그린 이미지는 촬영하여 컴퓨터로 옮겨진 후에 캐드(CAD) 작업을 통해 철판 절단용 데이터로 변환한다.
이후 레이저 절단으로 철을 원하는 형태로 잘라내고, 기본적인 형상이 완성되면 다시 작가가 개입한다. 그라인딩으로 표면을 다듬거나 거칠게 만들고, 용접과 열처리를 더해 질감과 색을 완성한다.
흥미로운 것은 전통적인 붓질이 이 과정에서 전혀 다른 물질적 언어로 바뀐다는 점이다. 붓이 종이 위를 움직이며 남긴 선은 디지털 데이터가 되고, 다시 레이저에 의해 철판 위에 물리적인 선으로 새겨진다. 이후 작가의 손을 거치면서 표면의 질감과 흔적이 더해진다. 전통적 회화의 즉흥적인 붓질과 현대적 산업기술, 작가의 수작업이 한 작품 안에서 만나게 되는 것이다.
철의 표면에 나타나는 색도 중요한 조형 요소다. 특히 열처리를 통해 철의 표면에는 온도와 시간에 따라 노랑이나 분홍빛 등 다양한 색이 나타난다. 일부 작품에는 페인트를 사용하지만, 불에 의해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색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검은 철의 무게감과 열처리로 발생한 색의 미묘한 변화는 먹의 농담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군자의 정서를 환기합니다.”
철을 선택한 이유 역시 그림자와 연결된다. 철은 견고하면서도 원하는 형태로 가공할 수 있어 얇은 선을 휘거나 돌출시키고, 서로 다른 깊이의 구조를 만들 수 있다. 김광호는 이를 통해 실제 조각뿐 아니라 조각이 만들어내는 그림자까지 하나의 조형물처럼 보이게 한다. 작품의 물질적 실체와 비물질적 그림자가 서로 다른 층위를 형성하면서 공간에 깊이를 만든다.
김광호 작
그의 작품에는 전통 회화의 화면 구성도 남아 있다. 사각 프레임 안에 사군자를 배치하고 여백을 남기는 방식이다. 그러나 회화에서의 여백은 조각에 이르면 물리적인 공간으로 바뀐다. 프레임은 화면의 경계를 설정하면서 동시에 그 경계를 넘어서는 공간을 만든다.
“작품에 따라 벽에 걸어 회화처럼 보여줄 수도 있고, 공간에 세워 조각이나 설치작품처럼 연출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김광호의 작품은 회화와 조각의 중간에 놓인다. 철의 선은 붓의 선을 닮았고, 프레임은 회화의 화면을 연상시키지만, 그 안의 여백은 실제 공간이다. 그리고 그 공간에 빛이 들어오면서 그림자가 새로운 이미지를 만든다. 회화적 요소가 조각으로 확장되고, 조각적 형상이 다시 회화적 이미지로 환원되는 구조다.
사군자는 중국 관람객에게도 익숙한 소재다. 중국에서 비롯돼 한국과 일본으로 전해진 사군자는 동아시아 회화의 중요한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중국에서는 오랜 문인화 전통과 연결돼 있어 문화적 기억 속에 깊이 자리한 소재다. 김광호는 바로 그 익숙함에 현대 조각의 낯선 형식을 끼워 넣는다.
중국 관람객에게 익숙한 매화와 대나무가 철로 만들어지고, 붓의 선은 산업적인 레이저 절단을 통해 구현된다. 여기에 빛과 그림자가 더해지면서 전통적인 사군자는 새로운 공간적 경험으로 바뀐다. 전통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전통이 지닌 조형적 원리를 다른 매체로 이동시키는 방식이다.
이 점에서 그의 중국 전시는 단순한 해외 전시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사군자가 시작된 중국에서 한국 작가가 사군자를 새롭게 번역해 보여준다는 것은 전통의 계승과 변용이 한 문화권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시대와 매체를 오가며 계속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익숙한 소재를 낯선 형식으로 제시함으로써 오히려 사군자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김 작가가 중국 전시에 의미를 두는 이유도 결국 작품을 통한 소통에 있다. 그는 “중국에서 전시를 해서 많은 사람들이 나와 소통을 같이 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자신의 작품이 어디에서 얼마나 높은 평가를 받느냐보다, 익숙한 전통을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게 하고 작품을 매개로 관객과 만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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