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째 빈 매대, 사망 사고에 유통가 장기화 우려
본부-노조 싸움에 낀 점주는 '들러리 피해자'...세븐일레븐-GS도 우려
이미지=생성형 AI
편의점 CU 매장 매대가 비어가고 있다. 화물연대 파업이 보름을 넘기면서 삼각김밥·도시락·샌드위치 등 매일 팔려야 할 간편식 진열대가 텅 빈 채 손님을 맞고 있다. 본사와 노조가 맞서는 사이, 현장에서 직격탄을 맞은 건 점주들이다. 협상력도 없고, 대체 공급망도 없고, 손실을 보전받을 방법도 없어 애만 태우는 모습이다.
매대에서 사라진 CU 간편식... BGF로지스-화물연대 실무교섭 시작
24일 유통가에 따르면 화물연대와 CU 물류 자회사 BGF로지스는 집회 17일 만인 지난 22일 교섭을 시작, 방향성을 조율하기로 한 상태다. 원청인 BGF리테일과의 협상을 요구해 온 화물연대는 우선 자회사와 협상에 나서게 됐다.
앞서 민주노총 화물연대 편의점지부 CU지회는 배송기사 처우 개선 등을 요구하며 파업을 선언한 뒤 주요 물류센터 출입을 막고 배송을 거부하고 있다.
피해가 가장 극심한 품목은 간편식이다. 삼각김밥, 도시락, 김밥, 샌드위치 등 유통기한이 짧아 매일 입고되어야 하는 간편식 품목이 가장 심각한 공급 차질을 빚고 있다. 하루라도 배송이 끊기면 곧장 빈 매대로 이어지는 구조다.
충북 진천의 BGF푸드 공장도 지난 17일부터 봉쇄돼 가동이 중단됐다. CU 진천 허브센터는 수도권을 포함해 전국 3000여 개 CU 매장에 간편식을 공급해 온 핵심 거점이다. 이 거점이 막히면서 파업 참여율이 10% 수준이어도 공급 충격은 전국 단위로 번졌다.
SNS에는 텅 빈 CU 매대 사진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화물연대 파업으로 간편식 입고에 차질이 생겼다. 본부에서도 해결이 어렵다고 한다"는 점주들의 하소연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여기에 지난 20일 경남 진주시 정촌면 CU 진주물류센터 인근 집회 과정에서 화물연대 조합원 사망 사고가 발생하면서 갈등이 급격히 격화됐다. 인명 피해가 발생하자 단순한 노사 분쟁이 사회적 이슈로 번졌고, 협상 타결까지 더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BGF로지스와 화물연대는 22일 상견례를 시작으로 실무교섭에 돌입했지만, 교섭이 시작됐음에도 안성·나주·진주 물류센터와 충북 진천 BGF푸드 공장 등 주요 거점의 차질은 여전한 상태다. 교섭 테이블이 열렸다고 매대가 당장 채워지는 게 아니라는 점에서 점주들의 불안은 가시지 않고 있다.
본사-노조 싸움, 피해는 점주 몫...경쟁사는 단기 수혜
이번 사태의 구조적 문제는 명확하다는게 유통가의 대체적 분석이다. 편의점 물류는 BGF리테일→BGF로지스→지역 운송사→개별 배송기사로 이어지는 다단계 계약 구조다. 화물연대는 실질적 결정권을 가진 BGF리테일이 원청으로서 교섭에 나서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지만, 본사는 계약 관계상 BGF로지스가 당사자라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파업에 참여한 배송기사들은 "10년 넘게 일했지만 노동강도는 계속 높아진 반면 운송료 인상은 형편없었다"고 토로한다. 매장별로 행사 상품부터 증정용 숟가락까지 정확히 맞춰야 하는 분류 작업을 무보수로 해왔다는 주장도 나온다. 기사들의 처우 개선 요구가 정당하다고 하더라도, 그 싸움의 전장이 점주의 매장이 돼선 안 된다는 게 점주들의 분노다.
CU를 운영 중인 한 점주는 "본사와 화물연대가 싸우는데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가 받는다"며 "매일 수십만원씩 매출이 빠지는데 누가 보상해주느냐"고 했다. 또 다른 점주는 "발주를 넣어도 안 오고, 안 넣자니 손님이 떠나고, 어디 하소연할 곳도 없다"고 말했다.
역설적이게도 이 사태에서 웃는 쪽은 경쟁 브랜드 점주들이다. 인근 GS25와 세븐일레븐 매장 점주들은 평소보다 물량을 넉넉히 입고하거나 방문객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다. CU 편의점 간편식 공급이 불안정하다는 소식이 퍼지면서 고객들이 인근 타 브랜드로 발길을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편의점 업계에서는 GS25 운영사인 GS리테일이 GS네트웍스를, 세븐일레븐은 롯데글로벌로지스가 물류를 맡고 있어 CU와 구조는 같지만 이번 파업에서는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고 있다. 같은 업종에서 브랜드 하나만 달랐을 뿐인데 매출이 갈리는 상황이 된 것이다.
다만 이번 사태가 CU만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서 업계의 고민은 비슷하다. 업계 관계자는 "CU를 시작으로 물류 운송비가 오를 수도 있고, 정부 개입이나 원청의 기준선이 생길 수 있다.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하나의 선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노란봉투법 시행으로 원청의 책임 범위가 확대되는 법적 환경이 만들어진 가운데, 이번 CU 사태는 편의점 물류 전반의 구조적 취약성을 고스란히 드러낸 첫 번째 대형 사례가 됐다. GS25·세븐일레븐도 언제든 같은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뜻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이번 파업 사태에서 가장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존재가 점주들"이라며 "본사에 요구할 협상력도, 노조에 맞설 법적 수단도 없어, 빈 매대 앞에서 손님을 기다리며 하루하루 버티는 게 전부"라고 우려했다.
이수호 기자 lsh5998688@tech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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