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헌법재판소가 탄소중립기본법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후 국회는 온실가스 감축 경로를 다시 설계하는 공론화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시민이 직접 참여해 감축 목표와 속도, 비용과 부담 문제를 논의하는 절차입니다.
<뉴스펭귄>은 공론화 과정을 총 3회에 걸쳐 짚습니다. 1회에서는 기후위기와 감축 정책의 기본 개념, 헌재 판결의 배경과 의미를 되새깁니다. 2회에서는 실제 시민대표단 토론에서 다뤄진 쟁점과 논의 흐름을 짚어봅니다. 3회에서는 공론화 결과가 향후 입법과 정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남은 과제는 무엇인지 진단합니다.
[편집자 주]
탄소중립 경로를 정하기 위한 공론화 논의가 진행 중이다. 감축 목표와 비용, 국제 책임을 둘러싼 선택지가 제시됐다. 교실에서는 기후위기의 원인과 결과를 직접 연결해 보는 교육이 진행됐다. 다른 자리에서 이뤄진 이 과정은 기후위기를 어떻게 이해하느냐가 이후 판단과 선택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함께 보여준다.
지난 29일 생중계된 시민 토론. 미래세대대표단이 온실가스 줄이기 목표가 미래에 미치는 영향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KBS 유튜브채널 캡처)/뉴스펭귄
지난 28일과 29일 '기후위기 대응 공론화' 공개 논의가 본격 시작했다. 이 논의는 탄소중립기본법 개정을 위한 과정으로, 국회 기후위기특별위원회 추진 공론화위원회가 출범하면서 의제숙의단과 시민대표단이 참여하는 숙의 과정을 거쳐 공개 토론이 진행되고 있다.
이 논의는 기후헌법소원에서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며, 미래세대를 고려한 온실가스 감축 경로를 법에 명시해야 한다"고 판단한 데서 출발했다. 이후 공론화 과정에서 미래세대 참여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어져 왔다.
이 가운데 미래세대는 기후위기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으며, 이러한 이해는 실제 논의와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
공론화가 본격 시작된 다음날, 경기도 용인의 한 교실에서 또 다른 방식의 기후 논의가 진행됐다. 학생들은 기후위기의 복합적인 구조를 직접 구성해 보고 자신의 일상과 기후위기의 연결을 인식했다.
공론화 밖, 미래세대가 학습한 기후위기는
지난 30일 경기도 용인시에 위치한 성지중학교에서 1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기후프레스크'가 열렸다. (사진 우다영 기자)/뉴스펭귄
지난 30일 용인 성지중학교에서 1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기후프레스크'가 열렸다. 기후프레스크(Climate Fresk)는 IPCC 보고서를 기반으로 개발된 참여형 기후 교육 프로그램이다. 일방적인 강의로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이 아니라, 참가자들이 기후변화와 관련된 과학 개념이 담긴 카드를 직접 배열하고 연결하면서 원인과 결과의 구조를 스스로 구성해 나가는 것이 특징이다. 온실가스 배출부터 기온 상승, 해빙, 해수면 상승 등 기후 시스템의 상호작용을 하나의 흐름으로 시각화하는 과정에서, 참가자들은 기후위기의 전개 과정을 보다 직관적으로 이해하게 된다.
과학적 사실에 기반해 구성된 카드만을 사용하고, 기후변화 원리를 설명하며, 특정한 해석이나 주장을 덧붙이기보다는 이해 과정 자체에 초점을 맞춘다. 참가자 간 토론과 협업을 통해 하나의 ‘기후 지도’를 완성하는 구조로 진행되며, 교육 이후에는 느낀 점을 공유하거나 대응 방안을 논의하는 단계까지 이어진다.
(사진 우다영 기자)/뉴스펭귄
학생들은 각 조마다 전문 교육을 받은 진행자로부터 '수송수단 이용', 'CO2(이산화탄소)', '온실 효과' 등 기후위기 원인과 결과를 설명하는 키워드가 담긴 카드를 받았다. 테이블 위에 카드를 하나씩 배열하며, "바다 얼음이 녹아요", "지구가 뜨거워져요"와 같은 쉬운 문장으로 기온 상승 과정을 이해해 나갔다.
원인과 결과를 수직적으로 정리한 뒤에는 '폭염', '강 범람', '가뭄' 등 기후위기 현상을 나타내는 카드를 추가해 구조를 확장했다. 이어 '생물다양성', '해안 침수', '기후 난민'과 같은 영향까지 연결하면서, 하나의 현상이 다른 결과로 이어지는 과정을 각자의 방식으로 설명했다.
"다양한 인과관계로 연결되는 기후위기"
(사진 우다영 기자)/뉴스펭귄
같은 키워드를 두고도 연결 방식은 다양하게 나타났다. '생물다양성' 감소는 해안 침수로 이어지기도 하고, 폭염과 연결되기도 했다. '기후 난민' 역시 가뭄이나 폭염 등 서로 다른 경로를 통해 설명됐다.
학생들은 모든 카드를 배열한 뒤 각자의 연결 방식과 논리를 공유했다. 이 과정에서 기후위기는 하나의 정답이 아니라 다양한 인과관계로 구성된 구조라는 점이 드러났다. 그리고 모든 연결의 출발점은 '인간 활동'으로 수렴됐다.
기후프레스크에 참여한 성지중학교 1학년 임△△ 학생은 "평소에 작은 실천이라도 할 수 있었는데 그동안 살면서 하지 않았던 게 많았다"면서 "어른들도 우리도 21세기를 함께 살아가고 있으니까 미래세대도 구성원으로써 노력해야 하고, 되도록 다 같이 감축 노력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만약 온실가스 감축 노력을 다 하지 못한 경우를 묻는 질문에서는 "안 되면 우리가 책임져야 하지 않겠느냐"며 "부담보다는 책임감을 더 느낀다"고 말했다.
퍼실리테이터(진행자) 조아란 강사는 "학생들이 처음 기후위기 원인과 결과를 이해할 때는 무섭고, 절망감을 느끼는 한편 마지막에는 미래를 그려나갈 거라는 다짐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기후프레스크에서는 기후위기 대응을 특정 주체의 책임으로 한정하지 않는다. 개인, 기업, 정부 등 모든 행위 주체를 하나의 구조로 보고, 각 주체의 역할이 서로 맞물려야 한다는 점을 함께 제시한다.
이날 학생들은 누구 하나만 노력해서도 안 되고, 노력하지 않아서도 안 된다는 점을 학습하면서도 "걸어 다니기", "자주 쓰는 틴트 소비 줄이기"와 같은 개인 실천을 다짐했다.
"탄소 감축, 개인 넘어 국가·산업
국제사회 역할 중요"
온실가스 감축에 있어서 누가 어디부터 어디까지 노력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꾸준히 이어져 왔다. 개인의 노력으로도 충분하지 않고,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노력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아서다.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기후위기 대응 공론화' 논의에서는 개인을 넘어 국가와 산업, 국제사회가 어떤 역할을 나눠야 하는지, 어떤 수준의 감축 노력이 필요한지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현재 한국 온실가스 배출량은 전 세계 208개국 중 13위를 차지한다. 1위는 중국, 2위는 미국이다. 일각에서는 중국과 미국이 더 노력해야 하는데, 한국만 노력해서 되겠냐는 시선도 있다.
지난 29일 KBS에 생중계 된 <기후위기 대응 공론화: 시민의 선택> 질의응답에서도 한 시민이 같은 질문을 했다. 시민은 "한국은 중국과 미국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이 현저히 적은데 뚜렷한 결과를 기대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서울대학교 공학전문대학원 구윤모 교수 (사진 KBS 유튜브채널 캡처)/뉴스펭귄
한국은 파리협정 가입국이자, 파리협정은 모든 국가의 참여를 전제로 온실가스 감축을 추진하는 국제 협약이다. 전문가 패널로 참석한 서울대학교 공학전문대학원 구윤모 교수는 "우리나라가 전 세계 배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아주 높다고 보기는 어렵고, 우리만 노력한다고 해서 기후위기를 막을 수 없는 것도 사실"이라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국가가 함께 참여하자는 것이 파리협약의 취지인 만큼, 우리 역시 감축을 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자발적으로 제출한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에 따라 감축을 이행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라며 "다른 나라에서도 같은 수준의 책임을 요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온실가스 감축 정책 설계 과정에서 '탄소 누출(carbon leakage)' 문제가 핵심으로 지적된다. '탄소 누출'은 한 국가의 규제가 강화될 경우 기업이 규제가 느슨한 국가로 생산시설을 이전하면서, 결과적으로 전 세계 배출량이 줄지 않거나 오히려 늘어나는 현상을 말한다.
구 교수는 "국내에서 감축 압력이 강한데 다른 나라에 동일한 압력이 없다면, 기업이 규제가 덜한 곳으로 이전할 가능성이 있다"며 "이 경우 우리나라에서는 배출이 줄어들 수 있지만, 다른 지역에서 더 많은 배출이 발생해 전 세계적으로는 오히려 증가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온실가스는 어느 나라에서 배출되든 지구 전체에 동일하게 영향을 미친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만의 노력으로는 한계가 있고, 다른 국가들의 참여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즉, 국내 감축 노력과 국제적인 공조를 병행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1.5도 이내로 제한하기 위해 2030년까지 전 세계 배출량을 2019년 대비 약 43% 줄여야 한다는 IPCC 권고에 기반한다. 한국이 설정한 2035년 53~61% 감축 목표는 이러한 과학적 기준과 함께 제조업 중심의 산업 구조, 에너지 전환 여건 등을 고려해 설정된 범위다. 상한선(61%)은 국제 기준에 가깝고, 하한선(53%)은 현실적인 감축 여력을 반영한 수치다.
이 가운데 감축을 둘러싼 비용과 경제적 영향에 대한 문제도 함께 제기된다. 온실가스 감축이 산업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와 달리,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환경연구원 송영일 명예연구위원 (사진 KBS 유튜브채널 캡처)/뉴스펭귄
한국환경연구원 송영일 명예연구위원은 기후위기를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닌 경제 시스템 전반을 흔드는 구조적 위험으로 봐야 한다고 짚으면서 "현재 수준으로 온실가스 배출이 지속될 경우, 21세기 말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이 20% 이상 감소할 것으로 예측된다"고 말했다.
한국이 감축 노력을 하지 않았을 경우 피해 규모도 상당할 것으로 지적된다. 송 위원은 "한국의 경우 감축 노력을 하지 않을 경우 현재부터 2100년까지 누적 경제 피해가 약 280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며 "반대로 온난화를 2도 수준으로 억제할 경우 피해 규모는 약 580조 원 수준으로 줄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
온실가스 감축 자체를 '비용'이 아닌 '투자'로 봐야 한다는 분석이다. 송 위원은 "감축을 경제적 부담으로만 인식하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로는 미래에 발생할 피해를 줄이기 위한 가장 비용 효과적인 대응"이라며 "온실가스 감축을 통해 줄일 수 있는 피해 규모를 고려하면 적극적인 투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높은 감축목표, 산업계 부담 우려?
카이스트 AI미래학과 김형준 석좌교수 (사진 KBS 유튜브채널 캡처)/뉴스펭귄
감축목표를 높이면 산업계 부담이 커진다는 목소리도 있다. 그렇다고 감축목표를 낮췄을 때 산업계 부담이 낮아진다고 볼 수는 없다. 카이스트 AI미래학과 김형준 석좌교수는 "감축목표를 낮춘다고 해서 비용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형태로 더 크게 지급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국제사회에서는 손실과 피해에 따른 보상 체계가 있다. 김 교수는 "선진국은 개발도상국의 기후 피해에 대해 재정적 책임을 나누기로 합의한 상황"이라며 "이 같은 구조를 고려하면 감축을 미루는 것은 비용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부담을 다른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에 가깝다"고 말했다.
이어 "기후위기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확한 문제"라며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와 같은 국제 규범을 통해 국가 간 책임을 재조정하려는 움직임도 이미 진행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종합하면 지난 28일, 29일 이어진 공론화 논의에서는 감축목표를 둘러싼 선택이 단순한 수치 결정이 아니라, 미래 사회의 비용과 부담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에 대한 문제라는 점이 반복적으로 제기됐다.
과학적으로는 남은 탄소예산이 제한된 상황에서 빠른 감축이 필요하다는 전제가 공유됐고, 정책적으로는 산업 구조와 비용, 국제 경쟁력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현실적 조건이 함께 논의됐다. 여기에 미래세대의 형평성과 국제사회에서의 책임까지 다양한 기준이 동시에 작동하고 있다.
결국 논의는 ‘감축 여부’가 아니라 ‘감축 수준과 방식’을 선택하는 문제로 모인다.
(자료 '기후위기 대응 공론화 의제숙의자료집-하편' 캡처)/뉴스펭귄
남은 공론화는 4일과 5일 KBS 생중계로 진행될 예정이며, 온실가스 감축 경로와 이행 방안을 논의하는 과정이 남았다. 공론화위원회가 공개한 <기후위기 대응 공론화 의제숙의자료집-하편>에 따르면 감축 경로는 총 세 가지로 나뉜다. 초기부터 빠르게 감축하는 '조기감축형', 초반과 후반 동일하게 줄이면서 초반 배출이 많은 '선형감축형', 미래에 감축을 더 많이 하는 '지연 후 후반집중형(볼록형)'이다.
특히 볼록형이라고도 하는 '지연 후 후반집중형'은 감축 시점을 뒤로 미루는 구조라는 점에서, 미래세대 부담과의 관계를 두고 공론화 초반부터 많은 우려와 논란이 제기된 선택지다.
향후 논의에서는 감축 경로 선택과 함께, 이를 둘러싼 이해와 판단 과정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도 함께 주목될 것으로 보인다. 기후헌법소원 대리인단 윤세종 변호사(플랜1.5)는 30일 <뉴스펭귄>과의 통화에서 "공론화는 상징적 참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이 실제로 쟁점을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도록 돕는 과정이어야 한다"며 "미래세대를 고려하라는 판결에서 출발한 만큼, 이들이 의견을 형성할 수 있는 환경이 어떻게 설계될지에 대한 논의도 함께 이어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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