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와 닮아가는
러 페스트 유출 의혹
러 내부서도 엇갈리는 사건정황
WHO, 추가 정보요구에도 요지부동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
■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마예나 PD
■ 출연 : 이현우 기자
러시아 시베리아의 한 페스트 방역 연구소에서 28세 여성 연구원이 병원체가 든 시험관을 깨뜨린 뒤 일주일여 만에 숨진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제사회가 긴장하고 있다. 러시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설명이 서로 엇갈리면서 사건의 진상을 둘러싼 의혹도 커지는 모양새다. 러시아 정부가 진상을 공개하지 않으면서 자칫 과거 코로나19 사태와 같은 대형 팬데믹으로 이어질지 국제 보건당국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1965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진행된 페스트 연구 당시 채취한 조직에서 발견된 페스트균(예르시니아 페스티스)의 현미경 사진.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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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보건당국·지방정부, 엇갈린 페스트 유출 경로 발표
러시아 매체들에 따르면 해당 사고는 지난달 25일 시베리아 이르쿠츠크주의 페스트 방역 연구소에서 발생했다. 연구원은 나흘 뒤인 29일 중증 폐렴 증상으로 병원에 입원했고, 이달 1~2일 사이 사망했다. 현재 러시아 당국은 정확한 감염 경로와 깨진 시험관에 들어 있던 병원체의 정체를 조사하고 있다. 이에 따라 사건의 명칭도 '유출 사고'에서 '유출 의심 사고'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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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혹의 핵심은 감염 경로를 두고 정부 기관마다 설명이 다르다는 점이다. 중앙 보건당국에서는 연구소 내 시험관 파손 사고 가능성을 먼저 제기했지만, 연구소가 위치한 이르쿠츠크주 정부는 다른 가능성을 내놨다. 해당 연구원이 사고 이전 몽골과 맞닿은 부랴티야 공화국으로 출장을 다녀왔으며, 그곳에서 페스트에 감염됐을 수 있다는 것이다.
부랴티야 일대는 몽골·중앙아시아와 가까워 설치류를 매개로 한 페스트가 간헐적으로 발생하는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설치류를 사냥하는 원주민들 사이에서 감염 사례가 보고돼왔다. 이르쿠츠크주 측 설명대로라면 연구원은 출장지에서 감염된 뒤 잠복기를 거쳐 발병한 셈이 된다.
그러나 부랴티야 정부는 즉각 이를 부인했다. 사건 전후로 자신들의 관할 지역에서는 페스트 환자가 단 한 명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부랴티야 측은 "코로나19나 독감 환자는 일부 발생했지만 페스트 환자는 아무리 찾아도 없다"는 취지로 발표했다. 이처럼 지방정부들이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듯한 모습을 보이면서 러시아 중앙 보건당국도 다소 혼란에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안팎에서는 정부가 사실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대책을 세울지, 아니면 사건을 덮는 데 급급할지 판단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시험관 깨졌다고 연구원이 사망?…점차 커지는 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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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 가능한 병인데 왜 숨졌나"… 세균무기 의혹까지과학계에서는 영화에서처럼 시험관 하나가 깨졌다고 곧바로 대규모 감염으로 번지는 일은 드물다고 본다. 실험실에서 다루는 병원체는 대부분 연구용으로, 완전히 활성화된 상태로 쓰이는 경우가 많지 않다. 또 상당수 병원체는 시험관 밖으로 나오면 생존율이 급격히 떨어진다.
연구 환경도 변수다. 고위험 병원체를 다루는 연구원은 방호복을 착용하고, 사고가 나면 즉시 방호복을 폐기하고 소독 절차를 거친다. 시험관 파손만으로 감염이 이뤄지고 사망에까지 이르렀다는 설명이 쉽게 납득되지 않는 이유다.
더 큰 의문은 사망 자체에 있다. 페스트는 중세 유럽 인구를 휩쓴 치명적 질병이지만, 오늘날에는 항생제로 얼마든지 치료할 수 있다. 의학계는 발병 초기에 치료를 받으면 20대 젊은 환자가 사망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본다. 시험관 파손 직후 폐렴 증상이 나타났다면 당연히 치료를 받았을 텐데 왜 숨졌느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이 때문에 깨진 시험관 속 병원체가 일반적인 페스트균이 아니라 러시아가 비밀리에 개발하던 세균무기가 아니냐는 의혹까지 나오고 있다. 국제사회는 연구원이 출장지에서 자연 감염된 것인지, 아니면 무기 개발 과정에서 사고가 난 것인지를 가장 우려스러운 변수로 보고 있다.
특히 미국 보건당국과 WHO가 이번 사건을 주목하는 이유는 코로나19 초기 상황과 닮은 점이 많기 때문이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말이 서로 다르고, 정확한 정보가 제때 공개되지 않는다는 점에서다. 마치 코로나19 사태 때처럼 지방정부가 사건을 은폐·축소하려다 세계적 팬데믹이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온다.
2019년 코로나19 발생 초기 중국 우한시 당국은 원인 불명의 폐렴 환자 발생을 축소해 보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실제로는 훨씬 이른 시점부터 상당수 환자가 나왔고, 지방 당국이 이를 제때 알리지 않았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당시 우한에서는 대규모 지역 정치 행사와 수만 명이 모이는 집단 행사가 방역 조치 없이 열렸고, 참석자들이 각지로 흩어지면서 확산을 키웠다는 분석도 나왔다.
"우한과는 다르다"지만… 변수는 우크라이나 전선
다행히 WHO와 과학계는 코로나19 같은 최악의 상황으로 번질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가장 큰 근거는 지리적 조건이다. 사고 지역은 시베리아 한복판으로 주변에 대도시가 없다. 계절적으로도 여름이 끝나고 추위가 시작된 만큼, 병원체가 외부로 빠져나오더라도 이 지역을 벗어나기 전에 사멸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우한과의 차이도 뚜렷하다. 코로나19 발생 당시 우한은 인구 1000만 명이 넘는 대도시였다. 여러 고속도로가 교차하고 국제공항과 항구를 갖췄으며, 글로벌 자동차 공장이 밀집한 교통·산업의 요충지였다. 당국이 초기 대응 시기를 놓치자 바이러스가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질 수 있었던 이유다. 시베리아 내륙은 이런 조건과는 거리가 멀다.
다만 우려되는 변수는 우크라이나 전쟁이다. 러시아는 시베리아와 극동 지역을 가리지 않고 병력을 징집해 전선에 보내고 있다. 감염자가 징집돼 우크라이나 전선에 투입될 경우 러시아군 내 집단 감염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그 이후다. 유럽이 러시아인의 입국을 아무리 막더라도 밀수업자나 첩보 인력 등의 왕래를 완전히 차단하기는 어렵다. 이 과정에서 유럽으로 병원체가 유입되고, 나아가 전 세계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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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위험성을 고려해 국제 보건당국은 러시아가 하루빨리 조사를 마무리하고 사건의 전말을 공개하기를 촉구하고 있다. 깨진 시험관에 어떤 병원체가 들어 있었는지, 연구원의 정확한 사망 원인은 무엇인지, 출장지 감염 가능성은 어디까지 확인됐는지가 핵심이다. 그러나 러시아가 이 요구에 응할지는 불투명하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둘러싸고 서방과의 대치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민감한 연구시설 관련 정보를 스스로 공개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관측이 많다.
진상이 불확실할수록 추측은 늘어나고, 병원체와 관련된 사안인 만큼 불안감도 커질 수밖에 없다. 코로나19의 교훈은 초기 정보의 투명한 공개가 확산을 막는 가장 확실한 수단이라는 점이다. 국제사회의 불안을 잠재울 열쇠는 결국 러시아의 손에 쥐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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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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