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원 이코노미스트] 미국과 이란 간의 전쟁이 길어지는 가운데, 증시 변동성을 키운 또 다른 소식이 전해졌다. 구글이 3월 25일 한 논문을 통해 AI가 활용하는 메모리 사용량을 기존 대비 6분의 1 수준으로 줄이고, 일부 작업에서 연산 속도를 최대 8배까지 높일 수 있다는 ‘터보퀀트’라는 기술을 발표한 것이다.
이 논문이 발표된 직후, 그렇지 않아도 전쟁 때문에 타격을 받던 글로벌 반도체 업체 주가는 추가로 급락했고, 우리 증시에서도 이틀 동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가 각각 10% 내외 하락하는 모습이 나타났다. 메모리 사용량의 감소와 효율의 증대가 반도체에 대한 수요 감소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반도체 기업 투자자들의 심리를 얼어붙게 만든 것이다.
이러한 단기 반응에도 불구하고 이번 소식에 대해 많은 분석가들은 이와 사뭇 다른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새로운 기술의 등장은 AI 메모리 수요가 구조적으로 사라진다는 신호가 아니라, 오히려 AI의 전체 수요를 증가시키는 뉴스라는 메시지다.
새로운 기술은 자원의 전체 수요를 증가
그런데 생각해 보면 필자는 지난 수십 년 동안 비슷한 모습을 많이 경험했다. 효율화 또는 정밀화 기술이 등장할 때 자원의 사용 자체가 줄어들 것이란 우려로 주가가 급락하는 현상, 그리고 분석가들이 이와 대조적으로 효율화 기술로 해당 혁신에 대한 수요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결국 자원의 수요도 늘어나게 된다는 주장을 펼치는 모습이 낯설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결과는 어땠을까? 결국 분석가들이 주장한 것과 같은 전체 수요의 증대였고, 이를 반영해 떨어졌던 주가가 일정 시간을 두고 복구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대표적으로 반도체 산업 자체가 이러한 반복적 패턴을 잘 보여줘 왔다. 반도체는 처음 개발된 이후 끊임없는 공정 미세화로 칩 생산 비용이 낮아졌고, 그 때마다 시장에서는 가격 하락과 수익성 악화를 먼저 우려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러한 공정 미세화가 PC, 스마트폰, 서버 보급을 더 빠르게 확산하며 반도체에 대한 총수요를 증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클라우드와 가상화 기술 역시 서버의 총량을 줄일 수 있다는 해석으로 시장에 영향을 줬지만, 결과적으로 더 많은 개인과 기업, 나아가 정부들이 클라우드를 도입하면서 데이터센터 투자가 확대되었다. 즉, 기술 발전은 항상 효율 개선을 수반하지만, 그 결과는 사용의 감소가 아니라 확대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비용이 낮아지면 적용 가능한 영역이 넓어지고, 더 많은 주체가 해당 기술을 활용하게 되며 사용 빈도 역시 높아지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기술의 발전에 따른 효율 개선은 기존 수요를 줄이기보다 새로운 수요를 만들어내는 방향으로 작동해 왔던 것이다.
이번에 이슈가 된 터보퀀트 같은 기술은 어떨까? 일단 표면적으로 보면 이 기술이 메모리 사용량을 줄이는 효율화라서 당장 반도체 수요 감소 우려가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메모리 수요를 결정하는 진짜 변수는, AI 발전 과정에서 필요한 총 연산량과 총 메모리 일 것이다. 한 번의 연산에 필요한 반도체 양이 줄어도 그만큼 더 많은 연산과 서비스를 수행하게 되면 오히려 총수요가 늘게 되고, 기억을 효율적으로 압축 저장해도 기억해야 할 분량이 더 늘어나면 총수요가 늘게 될 것이란 얘기다.
이미 업계에서는 AI 확산과 함께 연산처리와 메모리 비용이 급등하자, 같은 성능을 더 적은 자원으로 내는 시도가 계속되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 가격 급등과 의존도 증대로 제공하는 부가가치와 수익 대비 비용 부담이 빠르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효율화가 단기에 반도체 수요 축소로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도 저변에 깔려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비용이 낮아지며 AI 업체들의 부가가치 창출은 크게 늘고 적용 가능한 서비스의 범위는 확장될 가능성이 높다. 이른바 '제번스의 역설'이 나타나는 대목이다.
특히 AI는 이 역설이 특히 강하게 작동할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기술 발전 정도에 따라 AI는 인간이 하고 있던 모든 부문을 대체할 수 있는, 따라서 확장성이 무궁무진한 분야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로봇과 자동화에서는 공장을 넘어 물류와 서비스업으로 적용 범위가 넓어지고, 자율주행 역시 차량 한 대당 필요한 연산 부담이 줄어들수록 보급 속도가 급격하게 빨라질 가능성이 있다.
구글 AI 모델 제미나이가 만든 '터보퀀트' 이미지. 사진=연합뉴스
건설과 도시 개발 분양에서도 마찬가지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단순히 설계나 공정 관리, 자재 활용 최적화 등 건설업 자체가 AI를 활용하는 수준을 넘어, 도시와 주택 자체가 AI 기반으로 운영되는 구조로 바뀌기 시작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교통, 에너지, 보안, 환경 관리가 실시간 데이터와 알고리즘에 의해 통합적으로 조정되는 스마트시티나, 그리고 개별 주택 단위에서 에너지 사용과 설비가 자동으로 최적화되는 스마트홈은 엄청난 AI 수요로 이뤄질 전망이다. 이 경우 AI는 보조 도구를 넘어, 도시 전체를 운영하는 인프라가 된다.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이 중요한 산업에서도 같은 변화가 나타날 것으로 판단된다. 컨설팅, 법무, 세무, 의료 등에서는 이미 AI가 보조 도구로 활용되고 있지만, 비용이 낮아질수록 적용 범위는 보조적인 역할을 넘어 실제 의사결정과 실행 단계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제조와 서비스를 막론하고 기업의 경우에도 마케팅, 재무, 인사는 물론 영업 부문까지 AI가 침투할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인간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는 중요한 이슈다. 하지만, 경제적 관점에서 기업들이 휴식 없이 작동하는 AI를 활용해 전체 비용을 절감하려는 노력을 지속하는 것은 지극히 합리적 결정이다. 이러한 점은 결국 효율 개선이 사용 가능한 영역 자체를 넓히고, 사용 빈도를 높이며, 동시에 더 많은 참가자를 시장에 끌어들이게 됨을 의미한다. 전형적인 제번스의 역설이다.
단기적 심리 위축을 이겨내야
그렇다면 시장은 장기적 수요의 증가라는 확률 높은 가능성을 알면서도 왜 지금 이렇게 반응하는 것일까?
여기에는 심리적 이유가 있다고 판단된다. 일단 투자자는 장기적으로 더 큰 시장이 열릴 가능성보다, 단기적으로 확인 가능한 수요 감소 시나리오를 먼저 가격에 반영하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은 이익보다 손실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주가가 오른 후 새로운 정보가 등장하면 가지고 있던 기대를 낮추는 방향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장 가격은 장기적인 구조 변화보다 단기 변수에 훨씬 빠르게 반응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지금은 전쟁이라는 또 다른 변수 때문에 이러한 문제가 더 증폭되어 나타나고 있고, 역설이 의미하는 수요 증가에 대해서도 의구심이 더해지고 있는 상황일 가능성도 있다. 그래서 증시가 기술 혁신에 대한 단기적 반응 후 바로 재상승할 것이라는 일반적인 전망을 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유가가 오르며 나타날 수 있는 전력 비용의 증가나 공급망 훼손에 따른 각종 원자재 수급의 문제는 AI 투자, 반도체 생산에 있어서 또 다른 결정적 걸림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쟁이 마무리되고 유가가 안정되는 상황이 될 때, 즉 AI에 대한 총수요가 증가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 때는 반도체 업종의 주가도 빠르게 복원될 것이라 판단된다. 오히려 지금처럼 각종 비용이 증대해 산업 자체의 발전이 저해될 수 있는 환경에서 터보퀀트 기술은 AI 투자 단가를 낮춰 발전 속도를 유지하고 더 빠르게 확산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즉, AI와 관련된 기술 발전과 효율 증대 뉴스가 나올 때 투자자가 확인해야 할 것은 AI 총투자, 메모리 가격, 공급 증설 속도 등 AI 산업을 더 확대시킬 수 있는 기술 발전인가 아닌가다.
기술 혁신은 본질적으로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기술 혁신은 언제나 수요를 줄이기보다 확장시켜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에도 예외일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판단한다. 문제는 투자자 자신이 이 기간을 이겨낼 수 있는가 여부일 뿐이다.
최석원 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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