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 중심 일본·메이커 보조 한국·유통 주도 중국…3국 유통 지형도
철강 유통, 내수침체·산업 트렌드·메이커 수익성 악화 ‘저성장 고착’
‘지속 가능 성장’ 위한 혁신…토탈서비스·DX·반조립 모듈화로 돌파
철강재 유통구조는 일반 소비재와 궤를 달리한다. 소비재 유통이 브랜드와 진열, 소비자와의 접근성이 핵심 경쟁력이라면 철강재 유통은 가공과 물류, 거래처별 맞춤 재고, 적기 납기가 핵심이다. 재고관리 방식도 다르다. 일반 소비재가 빠른 회전과 유행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반면, 철강재는 국제 원자재 가격, 환율, 건설과 제조업 경기 동향, 심지어 중국의 수출상황까지 살핀다. 따라서 철강재 유통은 제조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수준을 넘어 산업 공급망을 지탱하는 핵심 인프라다. 이번 기획에서는 철강재 유통의 발전사를 되짚어보고 현재 직면한 구조적 한계를 면밀히 진단한다. 일본, 중국의 유통 구조와 비교 분석하고, 향후 국내 철강 유통업계가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나아가야 할 전환의 길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1. 닮은 듯 서로 다른 韓·中·日 철강 유통구조
◇ 일본, 상사 중심 철강 유통 구조…독보적 리스크 관리
일본 철강유통은 종합상사가 중심축을 이루고 있으며, 전체 거래량의 95% 이상이 상사를 통해 유통된다. 메이커가 상사에 지분투자와 인력 배치(出鄕)를 통해 내수와 수출을 컨트롤하는 구조다.
일본의 종합상사의 역사는 19세기 후반 메이지 유신부터 시작돼 150년이 넘는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950~70년대 고도성장기를 거치며 현대적인 유통 체계를 확립했다. 일본 철강산업이 급성장한 배경에는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전쟁과 냉전이 있다.
패전 이후 미군정(軍政)은 군국주의 부활을 막기 위해 재벌 해체와 독점 금지법을 제정했으나, 냉전이 시작되면서 소련 견제를 위해 규제를 완화하고 자금과 기술까지 지원해 일본 산업 재건을 도왔다. 이때 다시 등장한 것이 계열(系列)형태로 이름을 바꾼 철강계 상사다. 제조업체의 해외 영업망이 취약했던 시절, 시장 개척과 정보 수집 기능을 수행하며 성장했다.
메이커-상사-코일센터-수요가로 이어지는 유통구조에서 메이커 직판비중은 5%에 불과하며, 대다수 코일센터와 물류센터를 보유하고 있다.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한 정보 수집력, 물류 시스템 최적화, 프로젝트 파이낸싱 등이 결합된 종합적인 리스크 관리 능력은 일본 철강 유통의 최대 강점이다.
◇ 한국, 메이커의 단순 가공·재고 보유 ‘보조’…시장 대응력 ‘차별점’
한국 철강 유통이 본격적으로 발전한 시기는 1973년 포항제철 준공 이후다. 해방 이후에도 서울 을지로와 문래동, 부산 범내골, 대구 동성로 등지에 소규모 유통이 있었지만 주로 수입품(함석, 철선 등)을 취급하는 영세한 형태였다.
지역별·품목별 지정 판매점 제도가 도입된 것은 1980년대 후반이다. 대량 생산된 쇳물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도록 판매망을 구축하기 위함이었다. 1990년대 들어서는 일본을 벤치마킹하여 판재류 유통업체가 가공설비를 도입했다. 뒤이어 2000년대부터는 봉형강 업체의 가공설비가 붐이 일었다.
그러나 한국의 철강 유통은 메이커의 단순 가공 및 재고 보유 기능을 보조하는 역할로 시작됐다. 이로 인해 철강 제조업은 비약적으로 성장했지만 유통업은 상대적으로 취약한 환경에서 발전해 왔다.
물론 소량·다품종 제품의 적기 공급과 소형 실수요자의 가공 업무 대행 등 시장 대응력을 갖추었다는 점은 차별화된 장점이다. 일본과 중국에 비해 유통 비중이 낮고 규모가 영세한 편이지만 점차 유통 비중 확대와 대형화·전문화가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자료-한중일 문헌 및 인터넷 정리
◇ 중국, 유통 중심 시장 구조…정부 주도 디지털·물류 혁신
중국이 철강산업에 본격적인 투자를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중반 장쩌민(江澤民) 시대다. 1992년 사회주의 시장경제 도입과 2001년 WTO 가입을 기점으로 중국의 철강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했으며, 철강 유통 시장도 급격히 커졌다.
중국의 가장 큰 특징은 정부가 의도적으로 유통 구조를 재편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대형 유통단지와 전자상거래다. 한국·일본과 달리 중국은 유통진영이 시장지배력을 쥐고 있어 내수 거래의 60% 이상이 유통을 통해 이뤄진다. 이로 인해 가격변동성이 크고 메이커가 유통 시황에 끌려 다니는 모양새다. 이에 2011년부터는 상위 10대 메이커가 시장의 60%를 지배한다는 목표 아래 대형 유통을 키워왔다.
중국은 생산과 판매(수출 포함)가 이원화되어 한국과 일본을 합친 모양새를 띤다. 메이커는 내수를 전담하는 회사와 수출을 전담하는 회사를 두고, 그 아래 4~5개의 대형 판매점을 거느리는 구조다.
거래 방식도 다양하다. 특히 2012~2014년 사이 전자상거래 플랫폼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시황 악화와 대출 규제로 인한 기존 유통망의 붕괴된 것이 오히려 디지털 플랫폼 구축의 계기가 됐다는 평가다. 최근에는 방대한 국토에 따른 수송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속철도망을 활용해 물류 합리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와 함께 구조조정을 통해 국영기업 중심의 초대형 종합상사를 키우고 있다. 막대한 자금력과 인력을 바탕으로 제품뿐만 아니라 원료, 설비, 해외 투자까지 전방위로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2. 철강 유통, ‘저성장의 늪’에 빠진 이유
자료-상장 7개사(문배, 한일, 동양, 부국, 대동, 경남, 대창) 기업 공시. (단, 2025년 대동, 대창 실적은 추정치)
국내 상장 철강 유통업체 7개사의 영업이익율 추이를 보면 2022년을 정점으로 급격히 하락하는 양상이다. 대형 유통업체의 영업이익률은 1990년대 5~7%대를 유지했으나, 2000년대 3~ 5%로 낮아졌고, 2020년 이후에는 1%대를 유지하기도 어려운 처지다.
첫 번째 원인은 인구 감소에 따른 내수 시장 규모의 축소다. 한국 인구는 2020년 5184만명을 피크로 감소세로 돌아섰다. 철강 소비량 역시 2014년 5700만톤을 정점으로 하락 곡선을 그리고 있다. 2024년은 10년 전 대비 10.9%나 줄었다.
두 번째는 산업 트렌드의 변화다. 고도성장기인 1995년과 경기 침체기인 2023년의 수요구조를 비교해 보면 건설비중은 50%에서 34%로 급감했으나 여전히 가장 큰 비중 차지하고 있다. 반면 자동차는 15%에서 31%로, 조선도 7%에서 16%로 성장했다.
문제는 이들 주요 제조업체가 신규투자를 해외 현지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이다. 산업 구조도 철강 수요가 많았던 중후장대산업에서 IT, 바이오, 배터리, 에너지 등으로 이동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국내 철강 수요가 다시 반등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세 번째는 메이커의 수익성 악화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말은 철강 대리점에 딱 맞는 표현이다. 한국경제는 2020년 이후 2%대 저성장 구조가 고착화됐다. 지난 40년간 지속된 ‘제조업+수출중심’ 구조에 안주하다 보니 신성장 산업으로의 전환이 늦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연히 메이커의 수익성도 우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메이커 자체의 생존이 급급해지다 보니 과거와 같이 대리점과 상생을 도모하는 것은 고사하고 오히려 갈등을 빚고 있는 양상이다. 유통 스스로 안고있는 내부적인 문제도 존재다. 과거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구매가 성장의 최우선 전략이었다.
3. 전환점 맞은 철강 유통, ‘지속 가능 성장’ 위한 혁신
혹자는 “더 이상 철강 유통은 미래가 없다”고 말한다. 실제로 가업 승계를 포기하고 유통업을 정리하는 2·3세 경영인도 있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한국은 여전히 제조업 중심의 국가이며, 수출을 해야 생존할 수 있는 경제 구조다. 또한 산업 트렌드가 급변하더라도 ‘제조’와 ‘유통’영역은 엄연히 분리돼 존재한다.
과거처럼 대량생산을 통해 원가를 낮추는 시대는 지났다. 수요가의 니즈가 갈수록 다양하고 까다로워지며 소량 주문이 대세를 이루는 시대일수록 유통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본다.
다만 과거의 성장전략에 안주해서는 안된다. 과거에는 메이커 가까이에 있는 전략이었다면, 이제는 수요가 곁에서 정밀 가공, 보관, 물류, 납기 관리를 통해 고객사의 제조원가를 낮춰주는 ‘토탈 서비스 기능’을 수행 해야 한다.
이미 메이커는 친환경, 고부가가치 제품의 생산비중을 늘리고 있다. 전기차와 드론을 포함한, 모빌리티, 휴머노이드 로봇, 신재생에너지, 데이터센터 건립에 사용되는 강종의 생산 비중은 갈수록 확대될 것이다. 유통업계는 이러한 변화에 발맞춰 정밀 설비와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디지털전환(DX)을 통한 ‘스마트 물류 파트너십’ 구축도 시급하다. 앱을 통해 실시간 재고를 확인하고 주문하면 곧바로 가공 스케줄에 반영되는 온디맨드(On-Demand)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메이커-유통-실수요가를 연결하는 공급망 관리 통합도 필요하다. 고객사의 생산 계획과 SSC 가공계획이 연결되어 고객사가 재고를 쌓아두지 않아도 적기에 자재를 공급할 수 있는 JIT 시스템을 완성해야 한다.
최근 중국이 사용하는 반조립 모듈화도 시도해 볼 만한 선택지다. 용접이나 간단한 조립까지 마친 상태로 납품하는 구조다. 바이오 설비나 신재생 에너지 타워건설 현장에서 환영받고 있는 모델이다.
이러한 혁신은 유통업체 혼자의 힘만으로는 힘들다. 메이커의 전폭적인 동반 지원이 수반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부 정책의 일관성과 지속성이다.
국내 철강 시장에 필요한 유통은 단순히 규모가 큰 곳이 아니라 유통 본연의 부가가치 창출 기능에 충실한 유통이다. 향후 유통업의 경쟁력은 데이터, 물류 효율성, 가공 서비스 역량, 친환경 대응 능력에서 판가름 날 가능성이 높다. 국내 철강 유통업체들이 플랫폼화, 전문화, 디지털화, 친환경화를 통해 새로운 지속 가능한 성장 모델을 구축해야 할 골든타임이 바로 지금이다.
최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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