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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집중점검/ 공주 반출 문화유산의 '잔혹사'

공주 문화유산의 피해를 짚는 과정에서 드러난 상처는 해외 유출뿐만 아니라 국내유출 뒤 환수되지 않는 문제까지 매우 다양하다. 그 가운데 일제 강점기 가루베 지온에 의해 저질러진 ‘도굴’ 피해는 치명적인 상처로 남아 있다.

집중점검/ 공주 반출 문화유산의 '잔혹사'

▲ 일제 강점기 공주에서 교사로 활동한 가루베 지온의 지역내 문화유산 도굴은 문화유산의 역외 반출이라는 심각한 피해를 안겼다. 그가 발굴해 빼돌린 문화유산은 1000여점이 너는 거으로 알려지고 있다. [AI 사진 생성]

공주 문화유산의 피해를 짚는 과정에서 드러난 상처는 해외 유출뿐만 아니라 국내유출 뒤 환수되지 않는 문제까지 매우 다양하다. 그 가운데 일제 강점기 가루베 지온에 의해 저질러진 ‘도굴’ 피해는 치명적인 상처로 남아 있다.

◆국내에 산재한 공주의 유산들

이번 조사에서 확인된 국내 소재 공주 유물은 국립중앙박물관(562건)을 비롯해 국립부여박물관(72건), 동국대학교 박물관(11건) 등 전국 각지에 수천 점 단위로 산재해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국보인 ‘공주 충청감영 측우기’다. 조선 시대 충청 지역의 기상을 관측하며 행정의 과학화를 이끌었던 이 유물은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으로 반출됐다가 1971년 천신만고 끝에 환수됐다. 그러나 환수 이후에도 이 측우기는 원래 자리인 공주가 아닌 서울 국립기상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그나마 2024년 이일주 공주문화원장 등 뜻있는 인사들의 끈질긴 노력 덕분에 조선 시대 공주목사를 지낸 이익보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이익보 사적비’가 공주로 반환됐다.

◆도굴꾼 ‘가루베 지온’의 어두운 그림자

일제강점기 당시 공주 공립보통학교 교사로 재직하며 백제 고분을 무단으로 파헤쳤던 가루베 지온(輕部慈恩)의 행적은 공주시와 시민들에게 큰 트라우마다. 그는 무령왕릉 인근 송산리 고분군을 비롯해 공주 일대의 수많은 무덤을 도굴해서 얻은 수많은 유물을 일본으로 반출했다.

그는 교내에 '향토관'을 설립하고, 방학 기간 학생들에게 유물 수집을 과제로 내거나 발굴이라는 명목으로 학생들을 동원해 백제 유물을 싹쓸이하듯 긁어모았다. 가루베가 1927년부터 해방을 맞이한 1945년까지 공주 일대에서 도굴 및 무단 발굴한 백제 고분은 약 1000여 기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대한민국 정부는 한일 국교 정상화 과정 등을 통해 지속해서 가루베에게 유물 반환을 요구했으나 1970년 사망할 때까지 단 한 점의 유물도 돌려주지 않았다. 그의 사후인 2006년이 돼서야 유족들이 백제 기와 등 단 4점의 유물만을 한국(공주박물관)에 반환해 국내에서 큰 빈축을 샀다.

그가 반출한 유물들은 현재 일본 국립박물관과 대학 박물관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전문가들은 "가루베 지온에 의해 유출된 유물들은 명백한 불법성을 띠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기록의 미비로 인해 환수 요구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토로한다.

◆실물 조사, 이제 겨우 ‘첫걸음’

충남도역사문화연구원의 ‘공주 국내외 반출 문화유산 조사’ 연구에도 불구하고 연구진들은 "아직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공주시 관계자는 "인구 10만명 선이 무너진 위기의 시대에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결국 우리의 정체성인 '문화의 힘'"이라며 "이번 조사는 공주 반출 문화재의 정확한 지도를 그리기 위한 기초 작업이다. 향후 현지 실사와 법적 논거 마련 등 본격적인 환수 로드맵을 가동할 것"이라고 밝혔다. 먼 타국 박물관의 어두운 수장고에서, 혹은 연고 없는 타향의 길가에서 고독하게 숨 쉬고 있는 공주의 유산들. 그들이 전하는 무언의 메시지는 하나다. 자신들이 태어난 웅진의 땅, 공주의 햇살 아래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갈망이다. 이제 그 갈망에 응답하는 것은 공주시민과 우리 모두의 몫이다.

공주 유환권 기자 youyou9999@dy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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