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주 문씨어터 문찬호 대표
기타 장인 운영 록 공연장·공방
미국 기타 제작 과정 ‘갤룹 스쿨’
2006년 동양인 최초 이수 이력
이승환 등 가수·연주자 기타 제작
개관, 30여 년 전 캐나다서 키운 꿈
문찬호 ‘문기타·문씨어터’ 대표.
지난 7월 18일. 진주에 있는 공연장 ‘문씨어터’에서 뜻깊은 페스티벌이 열렸다. 이름하여 ‘서진주IC 록 페스티벌’로, 올해 첫 회를 치른 이 축제엔 오프닝으로 선 ‘이그니스 노바’부터 ‘오딘’, ‘메써드’, ‘해리 빅 버튼’, ‘디아블로’까지 국내 유명 헤비메탈 밴드들에 부산 출신 기타리스트 피킹맨과 두루미까지 가세해 평소 지역에선 접하기 힘든 이열치열의 무대를 팬들에게 선물했다.
이 페스티벌을 기획한 사람은 진주 출신의 문씨어터 대표인 문찬호(57) 씨다. 그는 수제기타를 만드는 장인이기도 하다. 기타 브랜드명은 공연장 이름과 비슷한 ‘문기타’이다. 과거 TV에서 ‘잉베이 말름스틴’의 공연을 보고 록 음악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문 대표는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서 미술을 전공했다. 20대 중반까지 그는 학원에서 기타를 배워 ‘미스터 빅’, ‘밴 헤일런’ 같은 기교파 밴드들을 카피하며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고 한다.
진주시 석갑로(신안동)에 위치한 ‘문씨어터’ 외관. 공연 관람, 공연장 및 합주실 대여를 모두 할 수 있다.
미대생 시절 꾸준히 사보던 일본 기타 잡지 <영 기타> 속 사진들을 참조해 처음 기타를 만들어 본 그는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을 들고 취업을 위해 캐나다로 떠났으나, IMF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어학연수만 마치고 돌아왔다. 자유 영혼이 체질에 맞았던 그는 고향 진주에서 인터넷 판매업이 고개를 들던 2000년대 초 중고 악기를 취급했다. 그러다 2002년에 수도권으로 갔고 ‘기타기타’라는 사이트를 열어 일산에서 기타 수입사를 운영했다. 기타 자체를 알고 싶어져 미국 미시간주 ‘갤룹 스쿨’에 들어가 기타 제작 마스터 과정을 동양인 최초로 이수한 건 2006년의 일이다. 문 대표는 그렇게 2008년 12월까지 미국에 머물다 이듬해 귀국해 기타 수입업을 정리하고 기타 만드는 일에 집중했다.
“기타 제작은 몇 년을 죽었다 생각하고 자기 것을 만드는 시간을 가져야 하는데 특유의 ‘뒤처지는 느낌’을 주는 한국 사회에선 그러기가 쉽지 않습니다. 가령 속이 빈 어쿠스틱 기타 경우 같은 나무라도 산지는 물론 나무의 밑부분과 윗부분, 밀도와 강도, 탄성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본인 데이터를 쌓아야 하거든요.”
문찬호 대표가 만든 기타들이 전시돼 있다. 문 대표는 이 공간도 작은 공연장으로 쓸 예정이라고 했다.
누군가에겐 살면서 기타 한 대 만들어보는 특별한 의미겠으나, 그걸 직업으로 삼으면 문제는 달라진다. 일단 기타 제작이 생업이 되기 위해선 지속적인 수요가 일어나야 하는데 그 자체가 여의치 않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재료비도 문제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목재부터 접착제까지 안 오른 게 없고, 관련 부품들 값은 최소 두 배 이상이 됐다. 이처럼 가정 경제에 비추었을 때 한국에선 기타 제작이 ‘고급 취미’에 가까운 일이 되어가고 있다.
“그래서 솔리드 바디를 쓰는 일렉트릭 기타는 물량과 단가를 현실적으로 조정한 시스템으로 4~5년 전부터 새로 론칭을 준비하고 있어요. 기타 제작, 판매와 관련해선 계속 방향성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결정적으로 유튜브 등을 통해 기타 제작 소스가 공개된 현실은 문 대표 같은 장인에겐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이른바 기타 제조의 르네상스 시대인 것. 과잉 공급이란 얘기다. 문 대표 말로는 이제 한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일에 매달릴 필요 없이 깎고 다듬는 건 외주를 주는 식으로, 아이디어만으로도 누구나 기타를 만들 수 있는 세상이 됐다. 흔해졌으니 가격이 내려가는 건 당연한 일.
“한마디로 희소성이 사라진 겁니다. 춘추전국시대가 좋은 것만은 아니죠.”
‘문기타’ 공방 모습.
한때 문 대표는 새벽 5시에 출근해 밤 10시까지 기타 제작, 수리, 레슨 등으로 하루 12시간 넘게 일을 했다. 이제 나이가 있어서 기타 제작과 수리, 일생의 목표인 공연 일, 그리고 아직 어린 아들과의 소중한 추억 사이에서 시간 분배를 잘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문기타’는 그룹 다섯손가락의 리더인 이두헌 씨부터 가수 이승환과 최성수, 들국화 출신 기타리스트 정현철의 손에서 울렸거나 지금도 울리고 있다. 자고 일어나면 바뀌는 세상 앞에 살짝 주춤은 해도, ‘문기타’가 멈출 일은 없어 보인다.
문 대표의 공연 일은 1990년대 후반에 운영한 ‘소나무’라는 기획사까지 거슬러 간다. 당시 소공연장에서 유료 관객 25명을 기록한 헤비메탈 밴드 ‘게임오버’ 콘서트가 아마도 공연 기획자로서 문 대표의 초기 이력일 것이다. 언젠가 진주교육대학교 인근에서 라이브 바 ‘더 클럽’을 운영하기도 했던 문 대표는 2015년 경남문화예술회관 옥탑에서 사흘간 일정으로 공연을 진행했다. 비슷한 시기 사천시에는 록 페스티벌의 씨앗도 뿌렸다. 이후 ‘서진주IC 록 페스티벌’까지 이어지는 문 대표의 페스티벌 사랑은 사실 캐나다 유학 시절 보았던 영화 〈웨인즈 월드 2〉의 록 페스티벌 에피소드와 서부 캐나다 최대 규모 대학생 야외 음악 페스티벌인 ‘UBC(University of British Columbia) 블록 파티’에서 비롯됐다. 3만 명이 모인 UBC 페스티벌을 보고 문 대표는 막연히 한국에서도 이런 걸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제가 밴쿠버에서 생활했는데요, 지리상 가까운 시애틀에 가서 많은 공연들을 접했어요. 한 번은 여섯 명 정도 관객 앞에 선 메탈 밴드 테스타먼트의 바(Bar) 공연을 1m 앞에서 봤는데, 이후 3일 동안 이명 때문에 고생한 기억이 납니다.”
이두헌, 홍경민, 최희선, 이근형, 블랙홀 등이 무대에 선 ‘문씨어터’에는 규모별, 장르별로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공연장이 지역민들을 기다리고 있다.
30여 년 전 캐나다에서 했던 막연한 구상이 진주에서 구체화된 ‘문씨어터’가 꾸준히 운영되기 위해선 역시 지역 사람들의 관심이 필수일 터. 한 번은 문 대표가 진주 관객들 참여율이 궁금해 공연표를 세어봤는데, 10%도 안 됐다. 이유는 관(官)이 주도하는 무료 공연을 향한 지역민들의 의존도와 내가 보고 싶은 공연보단 시군에서 보여주는 공연만 보는 수동성이 이중으로 작용한 때문으로 보였다.
티켓팅 난조는 실력 있는 지역 뮤지션에게도, 전국구 음악가들 공연 지역 유치에도 똑같이 악재일 수밖에 없다.
“문화주권을 잃어버리는 거죠. 그렇게 못 오고 안 오다 보니 음악팬들은 그 먼 서울로 자비를 들여 가야 하는 상황이 오는 겁니다. 이게 좀 바뀌어야 하는데 말이죠.”
문 대표는 지역민들이 더 적극적이길 원한다. 공연장이 절실한 사람, 헤비메탈 동호회 같은 커뮤니티가 아쉬운 사람 모두에게 ‘문씨어터’는 언제나 열려 있다.
“이번 서진주IC 록 페스티벌이 더 성장해 경남권 록 음악 저변을 넓히는 데 작게나마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우리가 수도권 인구 얘길 많이 하지만, 사실 경남 쪽도 인구가 적은 건 아니거든요. 관건은 역시 하려는 사람들과 즐기려는 사람들의 의지인 것 같습니다.”
수도권에 내놓아도 훌륭한 수준일 이 소중한 공간의 유지, 발전은 결국 경남지역 음악인과 음악팬들에게 달려있다.
‘서진주IC 록 페스티벌’ 무대에서 헤비메탈 밴드 메써드가 공연 중이다.
/글·사진 김성대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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