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병원은 안정적 수급 유지
병·의원급은 물량 확보에 부담
약국, 개별 포장 대신 ‘통 단위’
2주 단위 수급 조정 방안 논의
대구의사회 “자재 절약 당부”
경북서는 가격 상승 사례 포착
한 개원의가 진료실에서 의료소모품 재고와 비용 관련 서류를 확인하며 고심하고 있다. AI로 생성한 이미지.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장기화 영향이 대구·경북 의료현장으로 번지고 있다. 주사기와 포장재 등 필수 의료소모품 공급이 흔들리면서 개원가를 중심으로 물량 확보 부담이 커지고, 약국과 병·의원 전반에서 대응 방식 변화도 포착된다.
실제 중동전쟁 여파가 한 달 넘게 이어지면서 주사기, 주삿바늘, 수액백 등 주요 품목의 공급 차질과 가격 인상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지역 의료기관들은 확보 물량 등을 고려할 때 5월 중 해협 개방 여부가 수급 안정 여부를 좌우할 핵심 변수로 보고 있다. 상황이 장기화될 경우 일부 품목을 중심으로 공급 공백이 현실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의원·병원 체감 온도차…“구매 구조 따라 부담 격차”
의약소모품 수급은 유통 구조에 따른 체감 차이가 큰 것으로 파악된다. 상급종합병원은 연 단위 입찰 계약을 기반으로 비교적 안정적인 수급을 유지하고 있지만 가격 인상 조짐이 있으며, 병·의원급 의료기관은 개별 구매 구조로 운영되는 만큼 물량 확보 부담이 더 크게 작용하고 있다.
A대학병원은 “물량은 유지되고 있으나 물류 비용이 올라 이를 반영해 집행하고 있다”며 “물량은 일정 부분 유지되고 있으나 사태 장기화에 따른 공급 가격 인상 시 이를 반영하는 방안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B종합병원도 “기존에는 10개 업체 모두 물량이 들어왔다면 현재는 일부 업체가 공급을 중단한 상황이다”고 밝혔다.
특히 입원 중심에 기반을 둔 요양병원의 부담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C요양병원은 4월 초부터 수급 이상 조짐이 나타났으며, 카테터 등 필수 품목 확보가 제한적인 상황이라고 밝혔다. 주사기류는 일부 확보했지만 약포장지와 비닐 포장재는 부족한 상황이다. 발주 기간도 이틀에서 2주로 늘었으며 일부 품목은 10~50% 가격 인상이 이뤄졌다.
병원 측은 “소모품 사용량이 많은 구조상 한 품목만 부족해도 처치 전반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며 “가격 상승보다 필요한 물량을 제때 확보하지 못하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약국도 통 조제 전환…대국민 홍보 필요성 제기
약국 현장에서도 변화가 감지된다. 포장재 수급 차질로 일부 약국에서는 자동화 조제를 줄이고 수동 작업으로 전환하거나, 개별 포장 대신 통 단위 조제로 대응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영유아용 시럽 투약병 제공을 줄이는 안내도 확산되는 분위기다.
중동 전쟁 여파가 장기화되면서 약국 자동화 시스템 전문기업 JVM은 자동조제기 포장지 주원료(LDPE)의 수급 불확실성이 커지자 가수요와 물량 쏠림을 방지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공급량을 제한하기로 했다.
약국들은 남아 있는 자재를 최대한 절감하며 대응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체감 상황은 더 악화됐다”는 반응도 나온다.
대구시약사회에 따르면 현재 보건복지부와 대한약사회 차원에서 현장 요구를 수집 중이며 구체적인 지원이나 개선은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금병미 대구시약사회장은 현재 수급 상황과 관련, “특별히 진행된 추가 조치는 없고, 계속 물량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회원들로부터 앞으로 더 모자라면 어떡하나 하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약국 포장 최소화에 대한 국민의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전국 및 지역 약국에 안내 포스터 배포 등 정부 차원의 대국민 홍보가 필요하다”고 제기했다.
◇의료계 공동 대응, 의료소모품 수급 관리 착수
의료계는 공동 대응 체계를 가동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를 중심으로 시도별·진료과별 수급 현황을 동시에 점검하고 있으며, 필요 시 2주 단위로 병·의원 간 물량을 조정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불필요한 선제 확보를 자제하고 사태가 장기화할 시 중증·필수 의료 분야에 우선 배분하는 것을 기본 원칙으로 세웠다.
민복기 대구시의사회장은 “의협에서 전체적인 수급 상황을 확인하고 있고, 각 시도뿐 아니라 과별로도 현황을 파악 중”이라며 “2주 단위로 병·의원 수급을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현재 물품 자체가 국내에 크게 부족하지는 않은 것으로 파악되지만, 불안 심리로 재고가 부족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에 따라 대구시의사회는 회원들을 대상으로 자재 절감 등 사전 협조를 당부하고 있다.
민 회장은 “회원들에게 가능한 한 자재를 아껴 쓰도록 권고하고 있으며 채혈 등 처치 과정에서도 한 번에 성공할 수 있도록 주의를 당부하고 있다”며 “의협은 정부와 협의를 이어가며 수급 불안을 최소화하는 데 주력 중이며 이번 주 중 의료소모품 온라인 구매 채널을 통해 균등 배분이 이뤄질 수 있도록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 “당장 부족 아냐”…현장·정치권 “공급망 위기”
일회용 주사기, 주삿바늘, 수액백 등 의료소모품 대부분은 나프타를 기반으로 생산되며, 국내 수요의 상당 부분이 중동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이번 사태의 영향을 받고 있다.
정부는 현재 재고가 일정 수준 확보돼 있어 당장 공급 부족 상황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수액제 포장재는 약 3개월분, 주사기와 주사침은 각각 1개월과 3개월분이 확보돼 있으며, 장기화 시 나프타 우선 공급을 통해 생산을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현장에서는 수급 불안과 가격 상승이 포착되고 있다. 최근 경북도의사회 조사에서는 주사기, 주사바늘, 수액백 등 주요 품목 전반에서 공급 차질이 확인됐으며, 응답자의 76%가 가격 상승을 체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격 상승 폭은 10~30%가 가장 많았지만, 50% 이상 급등 사례도 30%를 넘었다.
의료공백 우려는 정치권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의사 출신인 이주영 개혁신당 의원은 공급망 붕괴 원인으로 원가 미만 수가 구조와 산업 기반 약화를 지목하며 국가 비축과 공급망 관리 체계 구축 등을 제안했다. 김선민 조국혁신당 의원과 한지아 국민의힘 의원도 각각 원료 우선 배분과 예비비 투입 등 선제적 대응 필요성을 촉구했다.
이아람기자 aram@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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