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약자 억울함 호소할 통로 필요
검찰 통제·경찰 권력 견제 장치 있어야
이병욱 게임시나리오 작가
온라인 게임을 오래 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억울한 일을 겪는다. 어느 날 갑자기 계정이 정지되거나, 핵 사용자로 오해받거나, 누군가의 허위 신고로 제재를 당하는 일이다. 이때 이용자가 가장 먼저 찾는 것은 게임 운영자가 아니다. 재심 버튼이다.
대형 온라인 게임에는 보통 여러 단계 안전장치가 있다. 게임 마스터, 이른바 GM이 신고 내용을 먼저 검토하고, 운영감사팀이 그 판단에 문제가 없었는지 다시 확인한다. 이용자는 이의신청을 통해 판정을 다시 요구할 수도 있다. 운영자에게 권한을 주되, 그 권한을 견제하는 장치를 함께 두는 것이다.
스포츠 게임 심판도 마찬가지다. 심판이 오심을 하면 비디오 판독으로 다시 확인한다. 판정이 늦어지고 경기 흐름이 끊길 수는 있다. 그래도 비디오 판독을 없애지 않는 이유는 단순하다. 빠른 판정보다 억울한 패배를 줄이는 일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최근 검사의 보완수사권 폐지 논란을 보며 이런 게임 시스템이 떠올랐다. 경찰이 수사를 마친 사건에서 빠진 증거나 미진한 부분이 발견됐을 때, 검사가 직접 추가로 확인할 수 있는 권한을 없애자는 것이다. 검찰의 권한 남용을 막겠다는 취지는 이해한다. 과거 검찰은 정치인과 권력자를 겨냥한 과도한 수사, 선택적 수사, 피의사실 공표로 많은 비판을 받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적 죽음 이후 검찰 개혁은 민주당의 오랜 과제가 됐다.
하지만 잘못된 심판을 견제하겠다고 비디오 판독 장치까지 없애는 것은 다른 문제다. 경찰의 수사가 언제나 완벽하다는 보장은 없다. 오히려 경찰 권한만 강해지고, 그 판단을 다시 살필 기관이 사라질 수 있다.
장윤기 사건은 그런 우려를 극단적으로 보여줬다. 경찰은 처음에 일반 살인 혐의로 사건을 송치했지만, 검찰의 반복된 보완수사로 강간살인 혐의와 추가 증거가 확인됐다. 수사 과정에서는 현직 경찰관인 피의자 아버지와 경찰 수사팀을 둘러싼 증거인멸과 정보 유출 의혹까지 드러났다. 경찰 수사가 그대로 끝났다면 피해자의 억울함은 누가 다시 살폈을까.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도 보완수사권 폐지에 반대하고 있다. 경찰 수사에서 놓친 성범죄 정황과 증거가 이후 검찰과 재판 과정에서 다시 검토됐다는 이유다. 다만 성범죄 목적을 밝힌 핵심 절차가 검사의 직접 보완수사였는지를 두고는 다른 해석도 있다. 그럼에도 피해자가 “다시 살펴달라”고 요구할 통로를 없애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은 가볍게 넘길 수 없다.
재심 버튼이 없어져도 돈과 권력이 있는 피의자는 큰 불편이 없을 수 있다. 비싼 변호사를 선임하고, 언론과 정치권에 호소하며, 여러 방법으로 자신을 방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사람은 평범한 범죄 피해자와 사회적 약자다. 그들에게 보완수사는 마지막 비디오 판독일 수 있다.
보완수사권 폐지를 밀어붙인 정치권의 명분은 검찰 피해를 막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제도는 정치인의 원한을 풀기 위해 설계돼서는 안 된다. 소수 힘 있는 피의자를 보호하려다 다수 피해자의 구제 통로를 막는다면 그것은 정의일 수 없다.
좋은 게임은 강한 운영자가 만드는 것이 아니다. GM과 운영감사팀이 서로 견제하고, 오심을 바로잡는 시스템이 있을 때 공정해진다. 검찰 권력이 문제였다면 검찰을 통제하고 감시하면 된다. 경찰 권력을 견제하는 장치까지 없애는 것은 개혁이 아니다. 재심 버튼을 삭제한다고 게임이 공정해지지는 않는다. ‘높으신 양반’ 보호하겠다고 수많은 피해자를 억울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이병욱 게임시나리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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