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감정 등 마음의 조각 하나씩 펼쳐 화면 위에 연결”
엄마 보자기는 ‘불안·슬픔’ 기억
버려졌을 천 조각이 조각보로
기억·경험 등 모인 ‘마음의 세포’
낮은 채도 색에 안개 자욱한 풍경
색은 계획해도 결과는 통제 않아
여러 색 중첩 반복 행위 명상처럼
화면속 숫자·문자도 하나의 조각
윤동주문학관 보고 60여점 연작
김미경 작가가 윤선갤러리에 걸린 자신의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윤선갤러리 제공
김미경 개인전 ‘비추다/ Mirrors Within’가 열리고 있는 윤선갤러리 전시장에 들어서면 마크 로스코(Mark Rothko)의 색면을 떠올리는 작품들을 만난다. 하지만 두 작업 사이의 차이는 두드러진다. 강렬한 색채감에 사로잡히는 마크 로스코의 색면과 달리 김미경의 색면에는 색의 지극한 절제가 발견된다.
그의 화면에는 색으로 분할 한 면이나 색면 위의 격자무늬, 색면 위 숫자와 기호 등이 아로새겨져 있다. 작가는 화면 속 색면을 ‘마음의 조각’이라고 했다. ‘마음의 조각들을 하나씩 펼쳐 화면 위에서 연결하는 것’이 그의 작업의 핵심이다.
김미경이 ‘마음’이라는 개념에 주목하게 된 계기는 어머니의 보자기와 조각보에 대한 기억에서 비롯됐다. 어린 시절 그의 삶은 불안정했다. 작가의 어머니는 언제든 자식들을 데리고 또 다른 장소로 이사를 가야 하는 삶을 살았고, 그런 불안한 상황은 물건들을 보자기에 싸서 작은 방 한 켠에 쌓아놓도록 했다. 어머니의 보자기는 그에게 ‘불안하고 슬픈 기억’으로 남았다.
“언제든 이사를 해야 할 것 같은 생활, 공간이 부족해 물건을 보따리처럼 싸놓아야 했던 어머니의 삶이 어린 저에게는 아픔으로 남았습니다.”
김미경 작가가 윤선갤러리에 걸린 자신의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윤선갤러리 제공
그가 보자기를 다시 만난 것은 미국 유학 때였다. 뉴욕에서 그는 조각보와 보자기를 염두에 둔 작업을 시작했다. 어머니를 떠나 미국에서 유학하는 과정에 어머니의 인생을 떠올렸고, 조각보를 닮은 색면 작업이 출발했다.
조각보는 쓰지 않는 천, 자투리 천을 이어 만든 생활용품이었다. 쓰임없이 버려졌을 천 조각이 누군가의 바느질로 아름다운 조각보로 거듭난다. 그는 천 조각들을 바느질로 이어서 만든 조각보를 보며 “각각의 천 조각에 이야기가 들어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조각 하나하나를 마음의 조각으로 받아들였고, 그의 마음들은 색면 작업으로 구체화됐다.
“제게 조각보의 조각은 단순한 천 조각이 아니라 기억, 감정, 경험이 하나씩 모인 ‘마음의 세포’였습니다.”
이때부터 그의 작업은 마음속에 접혀 있거나 얽혀 있던 감정과 기억들을 하나씩 펼쳐보고, 그것들을 다시 연결하는 행위로 드러났다. 마치 어머니의 보자기에 쌓여있던 물건들을 펼쳐놓듯, 그에게 회화는 마음을 표현하는 행위인 동시에 마음을 정리하고 이해하는 일이 됐다.
“마음 속에 새겨진 기쁨, 슬픔, 상처,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등 삶에서 경험한 다양한 것들이 작업의 재료가 됐습니다.”
그의 색면들이 마음에 대한 표현이어서 그러할까? 흡사 안개가 자욱한 풍경과도 같다. 마음은 명확한 형태로 붙잡히기보다 순간순간 흔들리고 겹쳐지는 감정의 층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미경의 색면은 선명한 경계 없이 번지고 겹쳐지며, 안개가 자욱한 풍경처럼 모호하면서도 깊은 내면의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그의 마음들은 흰색과 회색을 비롯한 낮은 채도의 색들로 시각화된다. 지극한 색의 절제다. 그렇게 군더더기를 덜어낸 화면에서는 고요하고 차분한 분위기가 배어난다. 하지만 지극한 절제미에 사로잡혔다고 생각했을 때쯤, 서서히 드러나는 색들을 만나게 된다. 단순해 보였던 표면 아래로 다른 색들이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격자 사이에는 켜켜이 쌓인 시간의 흔적이 올라온다.
김미경 작가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윤선갤러리 전시장 전경. 윤선갤러리 제공
색이 절제된 김미경의 회화는 색의 빈곤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수많은 색과 시간과 기억을 품은 뒤 마지막에 남겨진 침묵이다. 묵직한 침묵 뒤에서 다양한 서사들이 자박거리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화면 속 단순한 표면과 그 속에 내재된 깊이감은 ‘쌓기’와 ‘갈아내기’의 반복에 의한 효과다. 그는 화면을 대지와 그 위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삶으로 인식한다. “쌓기는 하늘과 땅 사이 존재들의 삶에 대한 표현입니다.”
그의 화면은 땅 위 인간의 삶으로 점철된다. 작업은 땅을 의미하는 대지의 색을 여러 겹 올리는 것으로 진행된다. 삶에 발을 딛고 선다는 의미에서 대지의 색을 바탕에 두고, 그 위에 자신이 살아가며 만난 세상의 다양한 색들이 올려진다. 개인적인 삶의 토대 위에 세상과의 관계에서 얻은 경험과 감정이 색으로 축적되는 것이다.
색의 중첩은 수십번 반복된다. 색을 올리고 말린 뒤 갈아내는 샌딩 과정의 반복이 진행된다. 그 과정에서 밑색은 사라지지 않고, 샌딩 과정에서 어느 순간 모습을 드러낸다. 때로는 예상하지 못했던 붉은색이나 짙은 갈색이 표면 아래서 비집고 올라온다. 작가는 이 우연한 흔적을 지우지 않고 화면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수많은 색이 합쳐졌을 때 그 흰색의 아름다움이 드러나는 것 같아요.”
다양한 색들이 하나의 화면에 반복적으로 올려지지만, 마지막에 남는 색은 그의 기억과 연관된 색들이다. 조선의 백자나 문풍지, 전통 무지개떡이나 한복에서 떠올리는 색들이 대표적이다. 작가는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이 미처 의식하지 못했던 한국적인 아름다움에 마음이 끌렸다”고 말한다.
그의 작업은 지극히 수용적이다. 많은 색들을 수용한 후에 도자기의 표면이나 한복의 치마 저고리를 떠올리는 색채들이 자리를 잡는다. 그의 수용적인 태도는 도자기의 제작 과정과 맞물린다. 백자와 청자를 좋아하는 작가는 도공이 흙을 빚고 초벌을 거쳐 마지막 단계로 나아가는 과정을 상상하며 색을 올린다. 가마에서 불을 만나 예상하지 못했던 색과 질감이 생겨나듯 자신의 화면에서도 샌딩 과정에서 우연히 발생하는 효과를 받아들인다.
“색을 계획하지만 결과까지 모두 통제하지 않습니다.”
김미경 작가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윤선갤러리 전시장 전경. 윤선갤러리 제공
그의 작업에서 노동과 사유는 분리되지 않는다. 색을 올리고 갈아내는 반복된 작업은 육체적인 노동인 동시에 생각을 이어가는 시간이다. 특히 마지막 단계에서는 극도의 집중이 요구된다. 작은 실수 하나가 전체 작업을 다시 시작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반복적인 행위는 어느 순간 명상처럼 변하게 됩니다.”
개인의 기억에서 출발한 작가의 사유는 존재에 대한 질문으로 확장된다. 대표적인 것이 숫자 ‘1·2·3’이다. 자식 셋을 키운 어머니의 삶을 이해하고 싶었던 작가는 오랜 시간 색면 위에 1, 2, 3을 반복해서 썼다. 자녀 셋을 키운 어머니의 삶에 대한 표현이었다. 때로는 먼지처럼, 때로는 피라미드처럼 쌓아 올리며 숫자를 자신의 화면에 새겼다.
화면 속 숫자는 생명을 구성하는 주요 원소인 탄소·수소·산소·질소, 즉 CHON에 대한 관심과 만나면서 새로운 의미를 얻었다. 어머니의 삶을 이해하기 위한 숫자가 어느 순간 모든 생명의 근원을 생각하는 기호로 확장된 것이다. 화면에 흩어진 숫자와 기호는 우주 공간에 뿌려진 먼지처럼 보인다. 개인의 기억에서 시작한 작업이 인간과 생명의 근원으로 나아가는 순간이다.
이러한 확장은 김미경 작업의 중요한 특징이다. 그는 인류학과 고대 문명, 화석, 해독되지 않은 문자에도 관심을 갖는다. 지금은 읽을 수 없는 오래된 문자도 당시 누군가에게는 분명한 의미를 지닌 소통의 수단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알 수 없는 세계의 단서를 하나씩 모아 의미를 찾아가는 일은 조각보의 조각을 맞추는 일과도 닮았있죠.”
이번 전시에서 눈길을 끄는 ‘윤동주의 하늘’ 연작 역시 이러한 사유에서 출발한다. 2016년 어느 날 작가는 산행 대신 우연히 윤동주문학관을 찾았다. 물탱크를 개조한 공간과 윤동주의 친필 원고, 그의 생애를 다룬 영상은 작가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문학관을 나와 마주한 하늘은 유난히 맑았다. 젊은 나이에 생을 마친 윤동주가 이 하늘을 얼마나 바라보고 싶어 했을까. 작가는 윤동주의 마음에 비친 하늘을 상상했고, 자신이 매일 바라보는 하늘을 조각보처럼 하나씩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60여 점에 이르는 연작이 이어졌다.
작품 ‘윤동주의 하늘’은 과거의 인물을 현재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그가 바라봤을 하늘과 마음을 자신의 감각으로 상상하는 작업이다. 하나의 하늘을 여러 조각으로 나누어 연결하는 방식은 어머니의 보자기에서 시작된 작업과도 자연스럽게 만난다.
전시는 10월 11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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