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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전라 Insight] 정읍 무성서원, 차향·붓향·아이들 웃음, 교실이 세계유산 됐다

정읍 무성서원은 산속이 아닌 마을 한가운데 자리한 ‘생활형 서원’으로, 사라질 위기 속에서도 지역 유림의 노력으로 지켜져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올랐다. 아이들의 놀이터이자 공동체의 중심이었던 이 공간은 오늘날에도 체험과 사색의 장으로 기능하며, 정읍의 또 다른 도시 정체성을 보여준다.

[전라 Insight] 정읍 무성서원, 차향·붓향·아이들 웃음, 교실이 세계유산 됐다

정읍 무성서원은 산속이 아닌 마을 한가운데 자리한 ‘생활형 서원’으로, 사라질 위기 속에서도 지역 유림의 노력으로 지켜져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올랐다. 아이들의 놀이터이자 공동체의 중심이었던 이 공간은 오늘날에도 체험과 사색의 장으로 기능하며, 정읍의 또 다른 도시 정체성을 보여준다. 세계유산의 의미를 일상 속에서 묻는 현장을 담았다.  편집자

아침 안개가 아직 걷히지 않은 칠보면 무성리.

논 사이로 난 좁은 길을 따라가다 보면, 마을 집들 사이로 기와지붕이 불쑥 얼굴을 내민다. 산 깊숙이 박혀 있을 것만 같던 서원이, 뜻밖에도 평범한 마을 한가운데 앉아 있다. 정읍 무성서원이다.

“우리한텐 그냥 동네 서원이었지요. 애들 숨바꼭질하던 곳.”

서원 앞 작은 슈퍼를 지키는 한 주민은, 세계유산이니 뭐니 하는 말보다 ‘어릴 적 놀이터’라는 기억이 먼저 떠오른다고 했다. 아이들이 기와담 뒤로 숨어 장난을 치고, 어른들은 제향과 회의를 하러 들락날락하던 곳. 그 일상의 무대가, 어느 날 세계가 주목한 문화유산이 됐다.무성서원은 정읍이 세계에 내민, 가장 조용한 자기소개다.

-없어질 뻔한 서원

무성서원의 시작은 신라 말 학자 최치원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우에서 비롯된다고 전해진다. 고운 최치원, 이름만 들어도 교과서 냄새가 나는 인물이다. 유교·도교·불교를 넘나들며 글을 쓰고 정치를 논하던 신라인 선비를, 정읍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마음속 스승으로 모셔 왔다.

세월이 흘러 고려, 다시 조선. 이곳에는 지방 유학을 가르치던 향학당이 자리 잡았고, 마을 아이들은 글 읽는 소리에 잠들고 글 읽는 소리에 깨어났다. 그러다 조선 숙종 때, 임금으로부터 ‘무성서원’이라는 이름을 하사받으며 비로소 나라가 공인한 서원이 된다. 서원의 전성기가 열리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전성기는 길지 않았다. 19세기, 흥선대원군이 전국 서원을 대대적으로 없애기 시작하면서 수많은 서원이 문을 닫았다. 탐관오리와 결탁한 서원, 과도한 재산을 일군 서원들을 정리하겠다는 명분이었지만 지방 유림들은 술렁거렸다. 무성서원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때도 여기 사람들, 가만히 안 있었어요. 서원을 그냥 내주면 선비의 얼굴을 어디다 들고 다니느냐고…”

마을 어르신들은 대원군의 칼날 앞에서 정읍 유림이 어떻게든 서원을 지켜내려 했던 이야기를 전한다. 집집마다 돈을 모으고 상경해 탄원을 올리며 ‘공적인 욕심이 아니라, 마을 아이를 가르치는 공간’임을 호소했다는 것이다. 기록에 남겨진 문장보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고집이 더 생생하다.

어찌 됐든 무성서원은 살아남았다. 전국 수백 개 서원이 사라진 뒤에도 꿋꿋이 버틴 몇 안 되는 서원, 그중 하나가 이 작은 마을 서원이다. 그리고 한 세기 남짓 흐른 뒤, 이 서원은 다시 한 번 시대와 마주 서게 된다. 이번에는 칼날이 아니라, 세계유산이라는 이름을 들고서다.

-산속이 아닌 마을 서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묶인 ‘한국의 서원’은 안동, 영주, 달성, 함양 등 전국 곳곳에 흩어져 있다. 이름만 들어도 산수 좋은 명승지들이 떠오른다. 산자락 깊숙이, 물길을 끼고, 소나무 숲과 함께 숨 쉬는 서원들이다.

그런데 무성서원은 조금 다르다. 산 아래 마을 한복판에 자리 잡았다. 서원 담장 밖으로 나서면 바로 밭이고, 집이고, 마을회관이다. 관광객은 서원 구경을 온 줄 알았는데, 어느새 마을 골목을 걷고 있다.

이 독특한 입지 덕분에 무성서원은 ‘유교 건축’이면서 동시에 ‘생활 공간’이었다. 서원 마루에서는 강론이 열리고, 서원 마당에서는 마을 잔치가 열렸다. 방학이면 아이들이 몰려와 글을 배우고, 제일이면 향내와 국물 냄새가 뒤섞였다.

“지금도 제사 지내는 날이면 동네 사람들이 먼저 정신이 없어요. 그날은 서원이 마치 큰집 같거든요.”

마을 주민의 말처럼, 무성서원은 ‘세계유산’이기 전에 ‘동네 큰집’에 가까운 곳이다. 세계가 주목하는 문화유산과 주민의 생활이 같은 공간에서 겹쳐지는, 이른바 ‘마을형 서원’의 원형에 가깝다.

그래서일까. 해외에서 온 관광객은 서원 건물보다도, 그 옆에 자연스럽게 널려 있는 일상 풍경을 더 오래 찍어 간다. 빨래 널린 마당, 자전거를 타고 지나는 아이, 서원 담장에 기대 담소를 나누는 어르신들. 이 모든 것이 무성서원의 풍경이다.

-선비정신, 아이들이 다시 부른다

서원에 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안채도, 대문도 아니다. 마루다. 마루에 올라서면 앞쪽으로 넓게 열린 마당과, 저 멀리 논과 밭, 그 너머로 겹겹이 포개진 산이 눈에 들어온다. 옛날 선비들이 책을 펼친 자리도, 오늘날 아이들이 뛰노는 자리도 그 마루다.

요즘 무성서원은 다시 ‘배움의 터’를 자처하고 있다. 다만 배우는 대상이 고문이 아니라, 선비정신과 예절, 그리고 이 공간의 이야기를 품은 체험 프로그램들이다. 전통 차를 우리고, 한지를 펼쳐 붓을 드는 체험은 이미 기본. 서원 곳곳을 걸으며 옛 이야기를 들려 주는 길잡이도 있다.

-정읍 이야기, 서원에서 다시 시작

정읍을 떠올리면 사람들은 보통 동학농민혁명과 정읍사부터 말한다. 민란의 도시, 노래의 도시. 여기에 무성서원은 조금 다른 색을 보탠다. 책 읽는 도시, 사색하는 도시, 선비가 숨 쉬는 도시라는 얼굴이다.

동학농민군이 내세운 ‘사람이 하늘’이라는 구호 뒤에는, 오랜 시간 지역에 스며든 유교적 공동체 의식이 있었다는 해석도 있다. 제사를 지내고, 고을 일을 함께 상의하던 서원의 전통이, 훗날 더 넓은 세상과 인간을 향한 고민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무성서원은 정읍이라는 도시가 해 온 긴 사색의 흔적이기도 하다.

오늘날 정읍은 내장산, 동학농민혁명 유적지, 정읍사 관광지에 무성서원을 더해 ‘사색형 관광’ 도시를 꿈꾸고 있다. 빠르게만 흐르는 시대에 잠깐 멈춰 서서, 한 번쯤 물을 수 있는 질문들. ‘우리는 어떤 마을을 만들고 싶은가, 어떤 도시가 되고 싶은가’ 같은 질문에 답을 찾는 공간으로서다.

무성서원 마루에 앉아 있으면, 시간의 흐름이 조금 느려진 듯하다. 대문 밖으로 아이들 웃음소리가 스며 들고, 멀리서 예초기 돌아가는 소리가 바람을 타고 따라온다. 옛 선비들이 바라봤을 법한 풍경과 오늘의 풍경이 겹쳐 보이는 순간이다.

세계가 먼저 알아본 정읍의 작은 서원. 무성서원은 지금도 묻고 있다.

“당신이 사는 마을의 품격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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