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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이태윈 특조위] '尹 심기 경호'부터 '희생자 분산 의혹'까지…이태원 ...

단체 카카오톡방에 "대통령실 용산 이전이 근본적 문제로 비화될 소지가 크고, 앞으로 지역 행사 축제 등에... 43분의 공백 동안 상황담당관은 실장을 기다렸고, 재난안전비서관은 카카오톡 메시지로 상황을 전달한...

[이태윈 특조위] '尹 심기 경호'부터 '희생자 분산 의혹'까지…이태원 ...

"10분만 빨랐다면 100명 살았다"…이태원 청문회서 드러난 대응 실패

"죽어간다" 11건의 비명…4단계 보고망은 '의지'도 '책임'도 없었다

"대통령실 이전 없었다면…" 용산서장의 증언

재난대책 대신 전단지 제거에 나선 용산구청…'尹 내외 심기 경호' 의혹

"조용했다"는 행안장관의 0시 45분…현장 의료진에겐 "총체적 난국"

"병원 재이송, 파열음 줄이려 분산했나"

13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10·29 이태원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가 연 청문회에서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증인으로 출석해 있다. 2026.3.13 [공동취재]

"저도 본능적으로 제가 마지막 숨 쉬는 것을 직감하고 어머니께 전화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통화를 해서 스피커폰으로 얘기했습니다. '엄마 나 성호야. 나 죽어가고 있어.'"

이태원 참사 생존자 민성호 씨는 지난 12~13일 열린 '10·29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 제1차 청문회에서 참고인으로 참석해 이와 같이 증언했다.

그러면서 "구조 출동이 늦어도 너무 늦었다. 구조대가 빨리 오지 않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10분이라도 빨랐다면 100명은 살아남았을 거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참사 책임 부재를 알리는 첫 번째 증언이었다.

특별위는 지난해 5월 출범 이후 수개월에 걸쳐 검찰과 경찰의 수사기록을 재검토하는 과정에서 관련 통신기록들을 새롭게 확인했다. 해당 기록은 당시 경찰과 검찰도 확보했던 자료였지만 수사는 진행되지 않았다. 참사 발생 3년 5개월 만에 새로운 증언과 증거들이 이번 청문회를 통해 공개된 셈이다.

이날 청문회엔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윤희근 전 경찰청장·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남화영 전 소방청장 직무대리·박희영 용산구청장 등 참사 당시 담당 기관 책임자들이 증인으로 나왔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재판 대응을 이유로 끝내 청문회에 불참했다.

청문회에서는 참사 당시 경찰과 관계기관의 대응 실패 정황이 잇따라 드러났다. 특히 ▲참사 직전 접수된 112 신고 대응 부실 ▲현장 경찰 인력 부족과 배치 문제 ▲인파 위험 보고 체계 붕괴 ▲현장 구조와 지휘 실패 등이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다.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과 시민대책회의 관계자들은 청문회 종료 후 "증인들의 책임 부정과 거짓 증언이 반드시 규명돼야 한다"며 추가 조사와 수사, 그리고 책임자 처벌을 촉구했다.

"압사당할 것 같다" 11건 신고에도…경찰들은 "네 탓"만

12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10·29 이태원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이 증인선서를 거부하고 있다. 2026.3.12 [공동취재]

"해밀턴 호텔 골목에 편의점 있잖아요. 사람들이 올라가고 내려오고 하는데 너무 위험하거든요. 사람들이 내려올 수 없는데 계속 밀려 올라오니까 압사당할 것 같아요."

청문회에서 가장 먼저 다뤄진 것은 참사 직전 접수된 112 신고에 대한 대응 문제였다. 당일 18시 34분 참사가 발생한 골목의 위험성을 알리는 신고를 시작으로 22시 11분까지 '압사 위험'을 알리는 최소 11건의 신고가 접수됐다.

특히 오후 21시 다섯 번째 신고 이후에는 "대형사고 나기 일보 직전"이이라는 내용의 코드0 신고가 중복 접수됐다. 이에 대해 양성우 특조위 조사위원은 "하지만 단 한 건의 무전 지령이나 경비기동대 증원 등 경찰의 현장 출동과 통제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증인석에 앉은 경찰 관계자들은 신고 처리 과정과 현장 대응 여부 등을 두고 집중 질의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당시 이태원파출소 관계자와 서울경찰청 상황실 관계자는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을 보였다.

당시 이태원파출소에서 신고를 접수한 순찰2팀장 A씨(비공개 요청)는 "11건의 신고는 저희 (경찰 전체) 조직에 요구한 것이지 파출소에 요구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일차적 책임은 "서울청 상황실"에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일반적인 112 신고 형태가 아닌 혼잡 경비를 요했던 신고"라며 "서울청 상황실은 상황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다만 양 조사위원이 "관할 구역 내 출동할 1차적 책임은 A씨에게 있는 것 아니냐"는 질의에 A씨는 "매뉴얼상 그렇다"고 답했다.

반면 김현권 서울경찰청 112종합상황실 분석대응반 접수반장은 코드0 신고가 접수되면 분석대응반에 사이렌이 울리고 모든 화면에 표시된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현장에서 상황 보고를 저희한테 하지 않으면 상황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장에 물어봤을 때 큰 위험성이 있지 않다고 보고받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특조위는 "서울경찰청 112 종합상황실의 사건 접수와 분석·모니터링·무전 지령, 용산경찰서 112상황실의 무전지령, 이태원파출소의 출동과 종결 기록 등 4단계가 동시에 무너진 것을 확인했다. 규칙, 수단, 인력은 있었지만 의지와 책임은 없었던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날 증인으로 나온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은 이미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는 이유로 증인 선서와 진술을 거부하며 참사 유가족들의 공분을 샀다. 특조위는 김 전 서울청장을 고발하기로 했다.

경찰 지휘 라인 "대통령실 이전으로 인한 경비 공백"…'책임 논의' 통제 정황도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이 12일 오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10·29 이태원참사 진상규명 청문회에서 심문 질의에 답하고 있다. 2026.3.12 [공동취재]

"참사 이후 지금까지 생각하고 반성했는데, 결국 나오는 결론은 그거였습니다. 용산으로 대통령실이 오지 않았으면 이런 참담한 사고가 날 가능성이 훨씬 적지 않았을까."

참사 당시 서울 용산의 치안을 책임졌던 이임재 전 서울 용산경찰서장은 이렇게 말하며 "핼러윈 대비 과정에서 경찰 인력이 대통령실로 많이 분산 배치가 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대통령실 이전에 따라 용산서 직원들의 피로가 크게 누적됐고, 무력감이나 피로 누적 상태가 대응 능력 저하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앞서 2022년 5월 10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취임과 동시에 대통령 집무실이 용산으로 이전되면서 용산 일대 집회·시위가 급증한 바 있다. 특조위 자료에 따르면, 대통령실 이전 전후 용산서 부서별 평균 근무 시간은 2022년 5월에서 8월까지 3개월 간 63.5시간에서 10월에는 89.4시간으로 40% 이상 급증했다. 그러나 윤희근 전 경찰청장은 "인정할 수 없다"며 "경찰청 차원에서 인력 조정을 통해 용산서 인력 증원했다"고 반박했다.

이태원 참사는 당시 경찰력 배치만 이뤄졌어도 막을 수 있었다는 지적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당시 용산 대통령실 인근 집회·시위 관리에는 대규모 경비기동대가 동원됐지만, 코로나19 거리두기 해제 이후 3년 만에 맞은 핼러윈으로 10만 명 이상의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됐던 이태원에는 질서 유지 경비 인력이나 현장 상황을 상부에 보고해야 할 정보경찰이 배치되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윤시승 전 서울경찰청 경비부장이 12일 오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10·29 이태원참사 진상규명 청문회에서 심문 질의에 답하고 있다. 2026.3.12 [공동취재]

윤시승 전 서울경찰청 경비부장은 "일반 행사는 해당 주무기관이나 관할 경찰서에서 경찰력 지원 요청이 오면 검토하는 방식"이라며 "이태원 핼러윈의 경우 경찰력 요청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문자 특조위 조사위원은 "2015년 핼러윈 행사에는 용산서가 경비를 맡은 사례가 있다"고 반박했다.

한편 경찰은 그동안 주최 측이 있는 행사의 경우 '수익자 부담 원칙'에 따라 행사 관리의 1차 책임은 주최 측에 있으며, 이태원 핼러윈처럼 주최자가 없는 자발적 행사에 대해서는 경찰이 사전에 개입할 근거가 명확하지 않았다고 주장해왔다.

참사 직후인 2022년 10월 31일 박성민 전 서울경찰청 정보부장은 경찰청 경비국 실무자들이 모여 있는 단체 방에 "대통령실 용산 이전이 근본적 문제로 비화될 소지가 크고, 앞으로 지역 행사 축제 등에 더 많은 경력배치 문제로 연결되어 수익자 부담 원칙, 경찰 만능주의 극복에 악영향"이라는 글을 올린 바 있다.

한편 이날 이 전 용산서장은 참사 이후 서울청 안보부장으로부터 "경비기동대 배치 등에 대한 내용을 말하지 말라"는 취지의 지시를 받았다고 진술했다. 이 전 용산서장은 당시 지시한 인물이 누구였냐는 질의에 망설이다가 "역사적인 진실을 밝히는 자리이기 때문에 말씀드리겠다"며 "당시 서울청 안보부장"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윤 전 경비부장은 "누군지 기억이 안 난다"고 답변했다.

골든타임 방치하고 '전단지 제거'한 용산구청…"대통령 내외 향한 '심기 경호'였나?"

13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10·29 이태원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가 연 청문회에서 이태원참사 유가족들이 증인 선서를 하는 박희영 용산구청장을 바라보고 있다. 2026.3.13 [공동취재]

"대통령실을 위해서, 구청에서 적극 협조한 것을 저에게 자랑하려는 것 같다.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용산공원 조성 관련 업무 협의 과정에서 구청에서 적극 협조했다는 뉘앙스로 말한 적이 여러 차례 있다."

정재관 군인공제회 이사장이 특조위 조사 과정에서 이같이 진술했다고 양 조사위원이 청문회에서 밝혔다. 10·29 이태원 참사가 발생하던 시각 용산구청 당직자들이 참사 대응이 아닌 윤석열 전 대통령 비판 전단지를 제거하는 작업에 투입됐다는 증언이 나온 데 이어, 윤 전 대통령 내외의 심기를 의식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앞서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참사 당일인 2022년 10월 29일김재헌 용산구청장 비서실장으로부터 받은 전단지 제거 완료 사진 3장을 오후 10시 49분께 정재관 군인공제회 이사장에게 전송한 사실이 청문회에서 확인됐다. 박 구청장은 문자 메시지에서 "진보단체가 촛불집회 후 삼각지 국방부 건너편 담벼락에 피켓을 붙여놓고 갔다"며 "구청 당직자들이 긴급히 모두 제거했다"고 보고했다.

양 조사위원은 "정 이사장이 당시 대통령경호처 국민소통추진단장이었다"며 "이 사건의 핵심 연결고리에 있는 인물"이라고 지목했다. 이에 대해 박 구청장은 정 이사장과 알게 된 지 "10년도 더 됐다"며 "정 이사장이 장군이었을 때 모임을 통해 알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 12일 JTBC 보도에 따르면 정 이사장은 김 전 국방부 장관,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신인호 전 국가안보실 2차장 등과 함께 윤석열 대선캠프에서 '국방정책자문단 8인회'로 활동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당시 경호처장을 맡은 김 전 국방부장관이 부단장을 맡은 '청와대 이전 TF'에도 포함됐다고 알려졌다.

양 조사위원은 이어 "정 이사장은 육군사관학교 38기 출신으로 당시 대통령경호처장이었던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과 동기 사이"라며 "경호처 관련 업무를 비롯해 용산공원 조성 협조 업무와 구청장 소통 창구 역할을 했다고 스스로 말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박 구청장은 "전혀 몰랐다"며 "업무적인 이야기를 한 적은 없다"고 답했다. 다만 "사적인 전화 정도는 했다"면서도 "통화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날 특조위는 참사 전날인 2022년 10월 28일 오전 9시 45분 박 구청장이 정 이사장과 51초간 통화한 사실도 공개했다. 이에 대해 박 구청장은 "잘 지내시냐는 사적인 대화였다"고 설명했다.

양 조사위원은 이어 "그로부터 2분 뒤인 오전 9시 47분부터 뒷자리 번호가 '8100'인 대통령경호처 명의 휴대전화 사용자와 56초간 통화했다"고 밝혔다. 지난 13일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해당 전화번호는 대통령경호차장의 업무용 휴대전화 번호다. 당시에는 이른바 '카이스트 임틀막' 사건의 책임자 김종철 전 병무청장이 대토통령경호차장이 갖고 있었다. 이에 대해서도 역시 박 구청장은 "모른다. 기억 못한다. 업무 대화는 한 적 없다"고 답했다.

또 오전 9시 59분에는 '8100'이 김재헌 용산구청장 비서실장에게 전화를 건 사실도 확인됐다. 이와 관련해 박 구청장은 "모른다"고 일관했고, 김 비서실장 역시 "기억이 안 난다. 일반적인 안부 전화 정도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12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10·29 이태원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가 연 청문회에서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증인으로 출석해 질의에 답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진호 전 용산경찰서 정보과장, 김재헌 용산구청 행정지원과 비서실장, 박 용산구청장. 2026.3.12 [공동취재]

지난 13일 MBC 보도에 따르면, 참사 다음날인 2022년 10월 30일 오전 9시 45분에는 박 구청장이 '8100'에 전화를 걸어 50초 동안 통화를 했고, 8분 뒤 '8100'이 박구청장에게 전화를 걸어 13초간 통화를 했다.

또 박 구청장은 2022년 11월 8일 자택 압수수색을 종료한 직후를 비롯해 같은 해 11월 18일, 28일, 29일 경찰청 특수본에서 피의자 조사를 받은 직후마다 박 구청장이 정 이사장과 통화한 사실도 드러났다. 이에 대해서도 박 구청장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개인적인 친분이 있으니 나를 걱정해 전화했을 것"이라고 진술했다.

이에 대해 위은진 특조위 조사위원은 "압수수색 영장 기재 내용과 경찰 조사 상황을 공유하고 대응 방안을 논의한 것 아니냐"며 "경찰 조사에서 전단 제거 작업과 정재관과의 관계, 경호처 관련성에 대해 진술하지 않았다는 취지로 보고한 것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했다.

"현장에 응급의료소 없었다"…컨트롤타워 지연에 골든타임 놓쳐

12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10·29 이태원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최한조 강동경희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가 "당시 교통으로 현장 진입이 어려워 한강진역에서 내려 의료장비 가방을 나눠 들고 걸어갔다"고 증언하고 있다. [사진=10·29 이태원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지금 다들 거짓말하시는 것 같은데, 제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 임시 응급의료소를 본 적이 없습니다."

참사가 발생한 시각 재난의료지원팀(DMAT)으로 구조에 참여한 최한조 강동경희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청문회에 참고인으로 참석해 이같이 증언했다. 그러면서 "총체적 난국이었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저희가 도착했을 때 임시 응급의료소가 어디 있는지 어느 누구도 저희에게 알려주지 않아서 그 상황에서 저희는 저희가 알아서 구급이랑 그 상황을 진행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또 "당시 현장에서는 길거리에서 심폐소생술(CPR)을 하는 경우가 많아 저희 팀도 동참해 CPR을 했다"며 "이태원역 1번 출구와 6번 출구에 4~50명 정도의 환자들이 모여 있었지만 그들을 치료하거나 케어하는 사람은 없었다"고 증언했다.

이어 "폴리스 라인이 쳐져 있긴 했으나 모든 사람들이 왔다 갔다 했고 술 먹고 춤추며 다 보고 있었던 상황이었다"며 "그 시간까지 현장 통제가 전혀 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최 교수에 따르면 강동경희대병원 재난의료지원팀의 이태원 도착 시각은 새벽 0시 3분경이었다. 당시 수많은 구급대와 사람이 모였음에도 자원이 효율적으로 배분되지 않아 산소통 부족 등 구급조치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새벽 1시 6분경 서울대병원 재난의료팀과 함께 직접 현장의료소를 설치하기에 이르렀다.

12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10·29 이태원참사 진상규명 청문회에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이 증인으로 참석한 가운데 유가족들이 손팻말을 들고 방청하고 있다. 2026.3.12 [공동취재]

한편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은 최 교수가 도착한지 약 42분 뒤인 새벽 0시 45분 현장에 도착했다. 이 전 장관은 당시 현장 상황에 대해 "급한 상황은 어느 정도 진정이 된 것 같았다"며 "현장에 특별한 움직임은 없었다"고 진술했다. 이에 대해 양 조사위원이 "행안부는 현장 수습과 복구 단계에서 역할이 큰데 상황 수습이 됐다는 말이 가능하냐" 되묻자 이 전 장관은 "현장이 조용했다"고 대답했다.

재난 대응 컨트롤타워의 보고 체계 문제도 지적됐다. 중앙재난안전상황실은 이날 22시 48분에 압사 사고를 인지했지만 이 전 장관에게 보고가 이뤄진 시각은 23시 31분이었다. 43분의 공백 동안 상황담당관은 실장을 기다렸고, 재난안전비서관은 메시지로 상황을 전달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후 이 전 장관은 23시 49분이 돼서야 "현장 방문"을 지시했다.

특조위가 "보고 후 지시까지 18분 소요되는 것이 적절했느냐"고 묻자 이 전 장관은 "집행부에 속하는 소방청과 경찰청, 정책부서인 행안부의 속도가 같을 수는 없다"며 "소방과 경찰은 현장에서 직접 조치를 해야 하는 부서"라고 답했다.

또한 이날 23시 20분 윤 전 대통령이 대응 지시를 했음에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는 즉시 가동되지 않았다. 새벽 0시 30분 '중대본 가동'이 발표됐지만 실질적인 가동은 참사 다음날 새벽 2시 30분 사이에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청문회에 참석했던 행안부 관계자들에 대해 양 조사위원은 "규정을 알면서도 관례를 따랐고, 권한을 갖고서도 행사하지 않았으며 지시를 받고도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이 확인됐다"고 비판했다.

유족들 병원 전전하게 한 '희생자 시신 44곳 분산 이송' 논란

13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10·29 이태원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가 연 청문회에서 최성범 당시 용산소방서장이 위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2026.3.13 [사진=연합뉴스]

"희생자들의 시신을 모이지 않게 빨리 분산시키라는 윗선의 지시가 있었다."

청문회에서 양 조사위원은 "순천향대병원에서 각지의 영안실로 희생자를 분산 이송하는 과정과 관련해 제보를 받았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러면서 "위원회가 확보한 진술에 따르면 당시 순천향대병원에는 사복 차림의 소방 또는 경찰로 보이는 인물들이 함께 있었고, 이들이 무전으로 대화하는 과정에서 '모아두지 말고 빨리 분산시키라. 유족들이 한곳에 많이 모이면 파열음이 커질 수 있으니 분산해야 한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는 증언이 있었다"고 밝혔다.

또 "그 자리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이 시킨 것 아니냐'는 말이 오갔다는 진술도 확보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당시 소방청장 직무대리를 맡았던 남화영 한국전기안전공사 사장은 "모르는 내용"이라고 답했다.

희생자들의 시신은 참사 직후 먼저 순천향대학병원로 이송됐다. 당시 유가족들은 희생자들이 어디로 옮겨졌는지 알지 못해 새벽 내내 여러 병원 영안실을 찾아다니는 상황이 벌어졌다.

최성범 전 용산소방서장은 청문회에서 '주검 훼손'을 사유로 들며 참사 직후 희생자 시신 약 80여 구를 순천향대병원으로 이송하도록 자신이 직접 지시했다고 인정했다. 이 과정에서 시신이 한 병원으로 집중되면서 병원 복도와 장례식장 등에 시신이 임시로 놓이는 상황도 발생했다.

시신 재이송 결정은 김의승 전 서울시 행정1부시장이 내렸다고 밝혔다.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은 유럽 출장 중이어서 김 전 부시장이 직무를 대행하고 있었다. 김 전 부시장은 "사고 수습을 총괄하는 입장에서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시신을 임시영안소에서 바로 유족에게 인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했다"며 시신을 각 병원 영안실로 분산 이송한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나 김상훈 전 서울경찰청 과학수사과장의 증언은 달랐다. 당초 다목적체육관에 임시영안소를 설치해 순천향대병원에 있던 희생자들을 그곳으로 옮길 계획이었다고 밝혔다. 그런데 "순천향대병원에 있던 희생자들을 다목적체육관으로 옮겨달라고 요청했지만 현장에서 소방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일부 과학수사 인력을 순천향대병원으로 보내 지문 채취 등을 진행했다"고 말했다.

김 전 과장은 시신이 여러 병원으로 분산되면서 오히려 신원 확인 과정에 혼선이 커졌다고 지적했다. 그는 "경찰로부터 가족이 희생됐다는 연락을 받은 유가족들이 병원을 전전하는 상황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또 "참사 다음날 정오까지 140여명의 신원이 파악됐다"면서도 "문제는 시신이 여러 병원으로 분산되면서 신원 확인과 대조 작업이 어려워졌다는 점"이라고 덧붙였다.

특조위는 논평을 통해 "임시영안소 지정이 희생자 사망 이후 대응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이후 장례식장과 병원으로의 분산 이송을 누가 어떤 이유로 결정했는지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끝내 오지 않은 윤석열…특조위 "진상규명 위해 끝까지 책임 물을 것"

12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10·29 이태원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참사 당일 현장에서 한국인 4명과 미국인 1명을 심폐소생술로 살린 파키스탄인 간호사 무함마드 샤비르씨가 증언을 하고 있다. 2026.3.12 [공동취재]

"이런 사고가 발생하면 처음 몇 분이 가장 중요합니다. 빠른 응급조치가 있었다면 더 많은 사람들을 구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저는 한국이 상당히 잘 사는 선진국인데 이런 큰 행사에서 안전관리와 응급 대비가 이렇게 부족했다는데 충격이었고 안타까웠습니다."

참고인으로 참석해 이같이 증언한 무함마드 샤비르 씨는 "휴가차 한국에 와 이태원 핼러윈 축제 현장을 찾았지만 순식간에 축제가 참사 현장이 됐다"며 "나 역시 군중에 갇혀 있었지만 빠져나온 뒤 심폐소생술(CPR)을 했고 한국인 4명과 미국인 1명을 구했으나 더 많은 사람을 구하지 못해 슬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어떤 축제도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비극이 되어서는 안 된다"며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참사가 발생한 것은 2022년 10월 29일이지만 관련 약 3년 반이 지난 뒤 진상규명을 위한 청문회가 열렸다. 이태원참사 특별법은 2024년 5월 국회를 통과했지만 당시엔 윤석열 정부가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에 실제 조사는 지난해 1월 예산이 배정된 이후에야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번 청문회는 그간 검찰과 경찰이 확보하고도 수사하지 않았던 통신 기록과 증언들을 특조위가 재검토 끝에 밝혀냈다. 이날 청문회를 통해 처음 공개된 증언과 증거들로 인해 밝혀지지 않았던 구체적인 경위들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청문회가 종료된 뒤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는 논평을 내고 "특조위가 남은 기간 집중해야 할 진상규명 과제를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청문회를 통해 드러난 사실들에 대해 추가 조사와 수사, 기소가 이뤄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위은진 이태원참사 청문회 준비단장(가운데)이 10일 경기도 의왕 서울구치소를 찾아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면담을 앞두고 브리핑을 하고 있다. 이날 10·29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는 윤 전 대통령의 면담 거부로 구치소장을 만나 청문회 출석 요청을 전달했다. 2026.3.10 [사진=연합뉴스]

한편 특조위는 지난 3일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청문회 출석을 요청했으나 윤 전 대통령은 재판 일정 등을 이유로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했다. 특조위가 사건 담당 재판부에 공판기일 조정을 요청하자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이후 특조위는 윤 전 대통령이 수감된 서울구치소를 방문해 출석을 설득했지만 윤 전 대통령은 접견을 거부하고 불출석 의사를 재차 밝혔다. 전날에도 특조위에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송기춘 특조위원장은 "탄핵심판 최후진술에서 윤 전 대통령이 언급한 북한 음모론 등 이태원 참사에 대한 인식을 직접 물어보려 했으나 이뤄지지 않았다"며 "윤 전 대통령을 고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앞서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2월 25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 최후변론을 통해 "북한을 비롯한 외부의 주권 침탈 세력들과 우리 사회 내부의 반국가세력이 연계해 국가안보와 계속성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며 "북한의 지령에 따라 이태원 참사 반정부 시위 등 활동을 펼쳤다"고 주장한 바 있다.

김대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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