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화 추천 기술로 성장한 스타트업 데이블은 이제 ‘애드테크(광고기술) 회사’라는 수식어를 거부한다. 이채현 데이블 대표는 “비정형 데이터를 기반으로 산업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인공지능(AI) 엔진 회사로 재도약한다”고 밝혔다. 데이블은 조직 내부에도 AI를 주체적으로 사용한다는 뜻의 ‘AI 오케스트레이터’ 개념을 도입해 업무 방식을 바꾸고 있다. AI 네이티브 기업으로 진화하는 데이블의 전략과 생존 방식을 들었다.
이채현 데이블 대표는 2015년 네이버와 SK플래닛 출신 개발자들과 의기투합해 창업에 나섰다. 최기웅 기자
뉴스 웹사이트에 들어가면 하단에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가 뜨고,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몇 번의 클릭만으로 취향에 맞는 상품이 진열된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 접속하면 첫 화면부터 추천 콘텐트가 줄지어 배치된다. 모두 인공지능(AI)이 사용자의 클릭과 체류 시간, 소비 이력 등 발자취를 면밀히 추적해 취향을 정교하게 분석한 결과다.
시장조사기관 모르도르 인텔리전스(Mordor Intelligence)에 따르면 글로벌 추천 엔진 시장(Recommendation Engine Market) 규모는 지난해 91억5000만 달러에서 2030년 381억8000만 달러로, 연평균 성장률 약 33%를 기록할 전망이다. 이커머스 플랫폼의 초개인화 마케팅 경쟁과 OTT 서비스의 콘텐트 큐레이션 수요 급증은 시장 확대를 견인하는 핵심 동력으로 꼽힌다. 정보의 과잉 속에서 사용자에게 최적의 선택을 제시하는 기술이 기업 경쟁력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이 분야에서 독보적인 기술력을 인정받는 스타트업이 데이블이다. 2015년 네이버와 SK플래닛 출신 추천 알고리즘 전문가들이 설립한 데이블은, 외산 솔루션이 주도하던 시장에서 개인화 추천 기술을 국산화했다는 공로를 인정받아 2020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소프트웨어 산업 발전 유공’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현재 한국과 대만을 포함한 아시아 주요 국가에서 개인화 뉴스 추천·네이티브 광고 서비스 등을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이채현 데이블 대표는 “더는 애드테크(광고기술) 기업으로 한정하지 않을 것”이라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지난 3월 12일 서울 강남 데이블 사무실에서 김익환 한세실업 부회장과 만난 이 대표는 “광고는 AI 엔진 성능을 입증하는 도메인 중 하나일 뿐”이라며 “본질은 비정형 데이터를 처리해 산업의 문제를 해결하는 AI 솔루션에 있다”고 강조했다.
최근 데이블은 스스로를 ‘AI 엔진 회사’로 재정의하고 사업 영토를 확장 중이다. 주력인 뉴스 추천 외에도 애플리케이션(앱) 광고주용 매체 구매 플랫폼(DSP) 솔루션 ‘웨어즈에이아이(Wheres.ai)’와 리테일 미디어 플랫폼(RMP) ‘티켓부스트’를 론칭해 기술 적용 범위를 넓히고 있다.
데이블은 조직 운영 방식에도 AI 네이티브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내부적으로 ‘AI 오케스트레이터(Orchestrator)’ 개념을 도입해 단순 반복 작업뿐 아니라 매출 하락 원인 분석 등 고난도 판단이 필요한 업무에도 AI 에이전트를 이용한다. 이 대표는 “AI를 활용해 생산성을 10배로 끌어올리고 2027년 상장을 목표로 성장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대표에게 추천 알고리즘에 매료됐던 초기 커리어와 AI가 화이트칼라의 업무를 대체하는 시대에 대비하는 데이블의 생존 전략 등을 물었다.
애드테크의 한계를 넘기 위한 AI 엔진 전략
외산에 의존하던 시기, 추천 알고리즘에 꽂힌 계기는 무엇인가.
포항공대에서 컴퓨터공학과 학사와 석사를 마친 뒤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서 인턴으로 근무했다. 당시 연구소의 선행 기술이 실제 서비스로 구현되기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 점에 갈증을 느꼈다. 연구보다는 실제 사용자가 체감하는 서비스를 만들고 싶어 네이버 검색개발센터에 입사했다. 웹 수집 로봇을 개발하며 대규모 데이터 처리와 비정형 데이터 정제 기법을 익혔다. 당시 개인적으로 관심이 많았던 분야는 추천 알고리즘이었다. 퇴근 후 직접 네이버 영화 리뷰 데이터를 수집해 개인화 추천 기능을 구현해봤는데, 수백만 명 데이터 속에서 알고리즘이 내가 좋아할 만한 영화를 정확히 짚어내는 것을 보며 기술의 실효성을 실감했다.
SK플래닛 시절 경험이 창업의 밑거름이 됐다고 들었다.
개인화 추천팀에서 티스토어 추천 시스템을 담당했다. 당시 시스템은 사용자의 구매 여부에만 의존해 구매 이력이 없는 상품은 추천되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었다. 이를 해결하고자 앱 설명 텍스트 데이터를 분석해 추천하는 콘텐트 기반 방식을 도입해 성과를 냈다. 이후 사내벤처에 도전해 11번가, 신세계면세점, 삼성전자몰 등 약 100여 개 커머스 기업에 추천 기술을 플랫폼 형태로 제공했다. 3년 정도 운영해보니 대기업 안에서는 리스크가 낮은 만큼 보상과 성장의 폭도 제한적이었다. 더 자유로운 실험과 도전을 위해 2015년 분사를 결정했고, 당시 SK플래닛 대표로부터 시드 투자를 받아 데이블을 설립했다.
데이블을 광고 회사가 아니라 ‘AI 엔진 회사’로 정의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현재로서는 애드테크가 우리 사업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내부 비전도 ‘모든 광고를 위한 단 하나의 AI 엔진(One AI engine for every ad)’으로 정했다. 하지만 기술적 본질을 명확히 정의해야 할 때가 왔다고 판단했다. 광고는 우리가 보유한 추천 엔진이 작동하는 가장 큰 도메인일 뿐이다. 단순히 광고 지면을 파는 곳이 아니라 AI와 데이터를 바탕으로 산업의 문제를 푸는 기업을 지향한다. 웹, 앱, 리테일 미디어라는 세 플랫폼에 동일한 AI 엔진을 접목해 기술의 범용성을 증명하는 중이다.
신규 사업인 ‘웨어즈에이아이(Wheres.ai)’와 ‘티켓부스트’의 메커니즘이 궁금하다.
웨어즈에이아이는 DSP다. 야놀자가 데이블을 인수한 뒤 자체 DSP 구축을 원했고 첫 고객인 야놀자를 기반으로 시스템을 완성했다. 초기에는 여행 데이터에 집중했으나 현재는 무신사, 29CM 등 커머스 전반으로 확장했다. 여행 분야에서 검증한 AI 모델이 다른 영역에서도 유효하게 작동한다는 점을 확인한 것이 큰 수확이었다. 티켓부스트는 인터파크 티켓 등 플랫폼 내 검색 결과에 광고를 노출하는 리테일 미디어 솔루션이다. 흩어져 있는 티켓 예매 플랫폼들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묶어 광고주가 한곳에서 캠페인을 집행하고 성과를 측정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향후에는 호텔이나 일반 이커머스 영역으로도 네트워크형 모델을 확장할 계획이다.
최근 주목하고 있는 ‘오프사이트 광고’는 어떤 개념인가.
커머스 플랫폼 내부의 광고 지면은 한정적이다. 광고 수요는 많지만 노출할 공간이 부족하다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오프사이트 광고다. 특정 플랫폼을 방문했다가 구매 없이 떠난 이용자가 다른 외부 웹이나 앱에 접속했을 때 해당 플랫폼의 상품 광고를 다시 보여주는 방식이다. 커머스사는 외부에서 광고 지면을 확보할 수 있고 데이블은 자사 엔진을 이용해 외부 지면에서 최적으로 타기팅한다. 금융권과의 협력도 모색 중이다. 결제 데이터를 기반으로 특정 사용자군을 정의하고 데이블이 이들에게 맞춤형 광고를 보여주는 구조를 논의하고 있다.
김익환 한세실업 부회장과 이채현 데이블 대표(오른쪽)는 인공지능(AI) 시대에 인간의 역할에 대해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눴다. 최기웅 기자
AI 네이티브 조직이 만드는 생산성 혁신
광고 소재 제작에도 생성형 AI를 활용한다고 들었다.
광고주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이 광고 문구와 이미지 제작이다. 우리는 단순히 범용 거대언어모델(LLM)을 쓰는 것이 아니라 데이블이 보유한 과거 광고 성과 데이터를 학습한 모델을 활용한다. 클릭률(CTR)이 높았던 제목 패턴을 분석해 업종별로 최적의 타이틀 3~4개를 제안하는 식이다. 현재는 이미지 생성까지 AI가 보조하는 단계로 발전했다. 콘텐트 종류가 다양해지면 광고 엔진이 사용자별로 더 적합한 소재를 매칭할 수 있어 결과적으로 전체적인 광고 효율이 올라간다.
언론사 상생 모델을 위해 광고 외 부가서비스도 제공한다고.
단순히 광고 수익만 주는 것이 아니라 미디어의 트래픽을 늘리는 도구를 함께 제공한다. 브라우저 푸시 알림, 이용자가 이탈하기 직전에 다른 기사를 추천하는 기능, 기사 요약 위젯 등이 대표적이다. 또 미디어 대시보드를 이용해 유입 검색어와 성별 인기 기사 등 관련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공유한다. 기술 투자를 바탕으로 언론사닷컴 기사 환경에 최적화된 사용자 경험을 제공한 덕분에 10년 넘게 상생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조직 운영 전반에 ‘AI 네이티브’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AI가 할 수 있는 일은 더는 사람이 하지 말자’는 원칙을 세웠다. 이를 위해 ‘AI 오케스트레이터’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데이블 전 직원이 AI를 주체적으로 사용한다는 의미다. 가령 매출이 급감하면 AI 에이전트가 데이터 저장소를 검토해 광고주 이탈이나 시스템 오류 등 원인을 즉시 짚어낸다. 광고팀이 가장 시간을 많이 쓰는 문의 메일 응대도 80% 수준까지 자동화를 진행 중이다. 사업팀의 간단한 기능 수정 요청은 AI가 스스로 코드를 고쳐 배포까지 마친다.
AI가 업무를 대신하는 경우가 늘면 사람의 역할은 어떻게 되나.
실무 수행 능력보다 AI가 맥락 이해하도록 환경을 설계하는 능력이 더욱 중요해질 전망이다. AI가 업무를 잘 처리하려면 문서 정보를 ‘AI 친화적’으로 정리해야 한다. 예를 들어 ‘다음 달부터’ 같은 상대적 표현 대신 ‘2026년 2월 1일부터’와 같은 절대적 수치를 기입해야 AI의 정확도가 올라간다. 이제 개인의 경쟁력은 AI가 일하게 만드는 설계 역량에서 나온다. 특히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AI 도구를 써보고 위기감을 느껴야 조직 전체의 전환이 가능하다. 나 역시 설 연휴 기간 AI를 집중적으로 사용해보며 ‘쓰지 않으면 회사가 망할 수도 있겠다’는 확신을 얻었다. 현재 클로드 등 유료 AI 도구를 전폭 지원하며 전 구성원이 업무 대행을 실험하도록 독려하고 있다.
개발자 출신 경영자로서 강조하는 기업문화가 독특하다.
업무를 가장 잘 아는 실무 담당자가 직접 의사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한 명의 동료로서 의견을 낼 뿐이고 담당자가 내 의견을 따르지 않아도 상관없다. 그래야 건강한 토론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수평적 소통을 위해 대표인 나를 포함한 전 구성원이 ‘님’ 호칭을 사용한다. 또 어색한 만남을 의도적으로 만든다. 2개월마다 무작위로 그룹을 짜 점심을 먹는 ‘랜덤 런치챗’을 예로 들 수 있다. 동료가 책임이 불분명한 업무를 먼저 맡아 솔선수범하면 이를 사내에 공유하고 보상하는 ‘피어 보너스’ 제도도 운영한다.
데이블의 중장기적인 매출 목표는 무엇인가.
네이티브 광고, 앱 DSP, 리테일 미디어라는 세 축을 고도화해 2027년 상장을 목표로 한다. 한국 외에 해외시장은 수익성이 명확한 대만을 중심으로 로컬라이징을 강화할 계획이다. 대만의 주말 트래픽 패턴 등 문화적 차이를 학습한 엔진을 앞세워 일본 등 동아시아 시장을 공략할 것이다. 광고라는 도메인에서 그치지 않고 AI로 산업의 문제를 푸는 진정한 AI 기업의 면모를 시장에 증명해 보이겠다.
김익환
노동력 위주의 제조업인 한세실업에 IT를 접목해 성과를 내고 있는 혁신 CEO다. 한세드림, 한세엠케이, FRJ 등 패션 자회사들의 경영에 직접 참여해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끌었다. 최근에는 기업의 사회적 역할에 관심을 갖고 국내외에서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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