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말엔 개인 해외투자, 올핸 외국인 자금 이탈이 환율 주도”
“외화 유동성 여전히 풍부…현물환 급등·대차시장 안정 엇갈리는 이례적 흐름”
“이란 사태 안정되면 환율, 오른 만큼 빠르게 내려올 수도”
“외환당국 개입은 방향 전환 아닌 속도 조절”
“고령화·저성장만으로 구조적 원화 약세 단정하긴 어렵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사진=한국은행 제공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환율을 1200원, 1500원, 1100원처럼 과거의 특정 레벨과 단순 비교하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달러 인덱스와 비교해 얼마나 절하됐는지, 절상됐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이 더 의미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장기적인 요인 때문에 우리나라가 반드시 고환율 구조로 자리 잡을 것이라는 주장에는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은은 10일 열린 4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다음 통화정책방향 결정 시까지 기준금리를 연 2.50%로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이 총재는 이날 통방회의 직후 열린 '2026년 4월 통화정책방향 관련 총재 기자간담회'에서 "환율은 참 어려운 문제"라며 "지난해 하반기 환율이 1500원 가까이 올랐을 때, 특히 지난해 11~12월에는 달러 인덱스와 비교해 원화가 훨씬 더 큰 폭으로 절하됐다"고 말했다.
그는 "통계적으로 보면 이른바 '서학개미'로 불리는 개인 투자자들의 해외투자가 거의 세 배로 급증하면서 환율 변동을 이끌었다"며 "서학개미를 탓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올해 2~3월 들어서는 외국인의 주식 매도가 환율 변동을 주도하고 있다"며 "1월부터 4월까지 외국인의 국내 주식 순매도 규모가 478억달러에 달하는데, 지난해 연간 전체 규모가 70억달러였던 점을 감안하면 불과 넉 달 만에 7배 수준으로 늘어난 것"이라고 말했다. 또 "3월에만 298억달러가 빠져나갔다"고 부연했다.
이 총재는 외국인 매도세의 배경으로 ▲국내 증시 상승에 따른 차익 실현 수요 ▲중동 사태가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에 대한 우려 ▲한국 증시가 IT·반도체 비중이 높아 외국인 입장에서 자금 회수가 상대적으로 쉬운 구조 등을 꼽았다.
즉, 지난해 말 환율 급등은 개인의 해외투자 수요 확대라는 내부 수급 요인의 영향이 컸다면 올해 들어서는 외국인 자금 이탈과 지정학적 불안이라는 대외 충격이 더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총재는 "현재 환율은 중동 사태와 외국인의 매도세가 주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지난해 11~12월과는 차이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경상수지 흑자가 매우 커 외화 유동성은 풍부한 상태"라며 "현물환율은 달러 대비 크게 올랐지만 대차시장에서는 달러를 빌려주려는 수요가 지나치게 커 달러 가치가 가장 낮게 형성되는 이상한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전체 흐름을 지난해 말부터 지금까지 보면 WGBI 가입으로 해외자금 유입 가능성이 커졌고 개인자금의 해외투자도 3월 이후 다시 국내로 돌아오는 분위기"라며 "국민연금의 해외투자도 올해 상당 폭 줄이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란 사태가 안정되면 환율이 그전까지 매우 빠르게 올랐던 만큼 그만큼 빠르게 내려올 가능성도 있다고 개인적으로 본다"면서도 "환율 예측은 워낙 어렵기 때문에 상황을 보며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지난해 외환시장 개입에 대해서는 "당연히 잘한 정책"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외환보유액은 환율이 과도하게 절하될 때 개입하라고 있는 것"이라면서도 "다만 외환보유액 개입은 일시적으로 조정해 주는 역할이지, 영구적으로 환율 수준을 바꾸는 수단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 총재는 특히 환율을 해석하는 방식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1200원이냐, 1500원이냐 같은 숫자만 보고 판단하는 것은 벗어나야 한다. 달러 인덱스에 비해 얼마나 더 절하됐는지, 절상됐는지로 판단해야 훨씬 더 거시경제 정책적으로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제가 처음 왔을 때 환율이 1250원 수준에서 지난해 중반 1400원까지 갔는데, 이는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이 금리를 매우 빠르게 올리면서 다른 나라 통화들도 함께 절하된 결과였다"며 "1200원에서 1400원이 됐다고 해서 한국 경제에 갑자기 큰 문제가 생긴 것으로 받아들이는 인식은 이제 바뀔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환율이 1400원대 초반까지 올라갔을 때는 달러 강세와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기 때문에 큰 문제가 아니었다고 본다"며 "다만 지난해 말 DXY보다 훨씬 더 빠르게 움직인 부분, 최근 중동 사태 이후 아시아, 특히 한국과 일본이 취약하다고 평가받으며 더 크게 움직인 부분 등 달러화 대비 과도하게 변동한 영역에 대해서는 정책적으로 어떻게 대응할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일각에서는 달러가 1400원, 1500원이 되는 것이 고령화 같은 구조적 요인 때문에 굳어지는 것처럼 말하지만, 저는 이론적으로 동의하기 어렵다"며 "일본의 경우도 절하가 심화된 배경을 보면 아베노믹스 이후 저금리와 통화 팽창 정책이 장기간 이어진 영향이 컸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장기적 요인 때문에 우리나라가 반드시 고환율 국가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며 "환율에는 워낙 많은 요인이 작용한다"고 덧붙였다. 이어 "단기적으로는 수급 측면에서 지난해와 달리 이란 관련 전쟁 리스크만 진정된다면 상당 부분 안정될 수 있는 모멘텀이 형성되고 있다"며 "환율이 빠르게 절하된 만큼 다시 빠르게 절상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이창용 총재는 "변동환율제는 결국 가격이 움직이도록 두는 제도"라며 "DXY와의 비교, 그리고 우리가 채권국인지 채무국인지에 따라 영향은 모두 다르기 때문에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금융위기와 단순 비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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