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립
논설위원
이창무 서울총괄건축가 겸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가 24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도시 축소기에 대비한 도시 정비의 필요성에 대해 역설하고 있다. 조태형 기자
930만 인구가 모여 사는 서울은 풍부한 인프라와 자본, 인재가 집결된 정치·산업·금융·교육·문화의 중심지다. 하지만 주택 부족과 치솟는 집값, 교통 체증과 대기오염 등 삶의 질을 악화시키는 구조적 문제들이 서울의 지속 가능한 성장과 도시 경쟁력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최근 서울시의 제5대 서울총괄건축가이자 G3서울기획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된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24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지난 수년간 수도권 외곽의 고밀 개발에 매달린 결과 출퇴근 시간 낭비로 인한 사회적 비용 부담과 환경 문제가 더욱 악화했다”며 “외곽 확산이 아닌 도심 고밀화로 도시 정비의 방향을 잡아야 한다”고 단언했다. 이 교수는 “지금이 일본과 같은 ‘도시 축소기’에 대비할 골든타임”이라며 “경쟁력 있는 대도시권 공간 개조를 통해 주거 공간 확보와 생산성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시의 공간 운영에서 가장 역점을 두는 과제는 무엇인가.
△서울시는 하나의 행정구역일 뿐이다. 큰 틀에서 남쪽으로 확대된 ‘서울 대도시권’의 중심 도시라는 관점에서 서울시의 역할과 책임을 고려하려 한다. 당장 시급한 과제는 도시의 80%를 차지하는 주거 공간 확보다. 현재 논의 중인 주택 공급 정책과 연계해 경쟁력 있는 대도시권 공간 개조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 주택 공급 입지가 제대로 확립돼야 과거의 비효율적 공간 구조에서 비롯된 생산성 저하를 장기적으로 개선하고 일본의 대도시가 겪고 있는 ‘도시 축소’ 문제에 직면했을 때 살아남을 여력을 갖출 수 있다. 지금이 앞으로 다가올 도시 축소기에 대응할 골든타임이라고 생각한다.
-도시 축소 문제란 무엇인가.
△일본은 저출산으로 인구가 줄어든 지 15년이 지났다. 지방뿐 아니라 과거 인구 성장기에 도쿄 외곽에 지은 신도시들도 인구 감소로 빈집이 늘어나고 쇠락하면서 도시 규모가 축소되고 있다. 일본보다 저출산 속도가 가파른 한국의 대도시권도 유사한 상황에 놓일 가능성이 크다.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도시 규모 위축으로 골머리를 앓은 일본은 현재 도심의 활력을 키우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도심 재건축·재개발에 속도를 내면서 도쿄 중심부인 23개 구는 인구가 증가하고 활기를 찾고 있다. 반면 한국은 서울 중심부에 대한 수요가 많은데도 도시 정비가 외곽을 넓히는 방향에 치중돼왔다. 방만한 도시 확산과 주변부 고밀 개발에 매달리다가는 다가올 인구 축소, 도시 축소기에 타격을 받을 수 있다. 물론 결혼·출산과 해외 인구 유입이 늘면 걱정할 일이 없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아직은 시간적 여유가 있으니 그동안 채우지 못한 도심 개발, 중심부의 주거 밀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
-글로벌 도시로서 서울의 경쟁력은 어느 정도로 평가되나.
△일본 모리기념재단이 경제, 거주, 환경, 교통 접근성 등에 기반해 평가하는 세계도시종합경쟁력지수(GPCI)에서 서울은 지난해 6위를 기록했다. 서울시의 목표는 글로벌 톱3 도시(G3)로 도약하는 것이다.
-도시 경쟁력을 키우는 핵심 요소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도시는 공간 집적의 경제를 누리는 실체다. 경제·사회 활동 주체의 공간 이동에 따른 비용을 최적화해 집적의 경제를 극대화하는 것이 도시 생산성을 높이고 경제적 경쟁력을 높이는 기본 조건이다. 출퇴근에만 3시간이 걸리는 낭비적 통근은 심각한 사회적 비용이다. 고용 중심지에 더 많은 사람이 살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글로벌 도시들과 경쟁할 수 있는 문화적·사회적 인프라를 갖추고 혁신을 창조하는 능력도 중요하다. 혁신을 통한 고용 창출 능력은 G3 도약의 중요한 기반이다. 여기에 건강·문화 등 삶의 질 향상이 얹혀야 한다.
-인위적으로는 쉽지 않은 일 같다.
△그런 의미에서 성수동은 재미있는 곳이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개발 기획보다는 민간의 사회적 임대 공간을 활용하는 소셜벤처 기업들이 태동하고 분당·
판교 등지의 정보기술(IT) 기업 종사자들이 몰리면서 2010년대 중반부터 자생적으로 고용이 집적해 발전한 사례다. 특히 경기도로 남진한 강남 지역의 고급 인력을 강북으로 끌어들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강남 주도에서 벗어나 ‘강북 전성시대’를 현실화하려면 구호에만 머물지 말고 이처럼 강북의 경쟁력을 찾아 역할을 확장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아울러 G3라는 큰 그림에 도전하려면 서울시 내 균형발전을 위한 고민이 단순한 강남·강북 관계를 넘어 대도시권 전체가 기반이 돼야 한다. 그래야 도시가 성장하고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다.
-다른 글로벌 도시들과 비교해 서울의 장단점을 꼽는다면.
△서울은 물리적으로 특이한 도시다. 평지에 자리 잡고 면을 넓혀가는 다른 대도시들과 달리 지형이 복잡하다. 구도심과 강남을 제외하면 산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는 ‘회랑식’ 구조다. 그것이 강점도, 약점도 될 수 있다. 경제적 효율성과 생산성 측면에서는 불리하다. 도시가 면적으로 확산돼야 고용 중심지를 주축으로 두터
운
배후지를 형성하고 부도심이 자유롭게 커나갈 수 있는데 회랑을 따라 도시가 확장되면 부도심이 성장하기 힘들고 공간 이동의 비용도 커질 수밖에 없다.
다만 이러한 약점이 오히려 장점으로 승화될 수 있다. 도시 안에 들어와 있는 큰 강과 산 등의 자연을 삶의 질 제고의 요소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연과 여유, 건강이라는 주제를 발전시켜 서울만의 강점으로 삼을 수 있다.
-인구뿐 아니라 기후 리스크 대응의 관점에서도 서울의 공간 설계가 달라져야 하지 않나.
△도시가 저밀 상태로 면적을 넓혀가는 것은 기후 대응 측면에서 좋지 않다고 본다. 차량을 이용한 장거리 출퇴근이 많아지면 이산화탄소 배출과 대기오염이 불가피해진다. 그보다는
도심을 고층
고밀화하면서 일조와 바람길 등을 적절하게 구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형적 구도를 활용하고
녹지를
도시 내로
끌어들이면 기후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서울 도심의 적정 개발 밀도를 어느 정도로 봐야 하나.
△절대적인 기준으로 고밀 개발을 바라보고 인프라 부담 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다. 하지만 어느 도시 한 곳이 고밀 개발되지 않으면 다른 곳이 개발될 수밖에 없다. 도심 개발을 억제하느라 외곽의 녹지와 논밭 한가운데에 아파트가 들어서는 부작용이 반복되고 있지 않나. 고밀화가 필요한 곳에서 개발 수요를 수용하는 것이 오히려 부작용을 덜 수 있는 길이다. 도심을 개발하면 대중교통 이용이 늘어 체증 부담도 오히려 줄어든다. 도심 고밀화에 적정 밀도는 없다고 본다. 상대적 관점에서 밀도는 충분히 높아질 수 있다.
-서울시 정비 사업이 전월세난을 악화시키지 않나.
△그 여파가 무서워서 노무현·문재인 정부가 번번이 발목 잡힌 결과가 지금의 모습이다. 영향이 없을 수는 없다. 하지만 그 파장을 관리하는 방식에 있어 다양한 선택지가 있을 수 있다. 노후한 강남 아파트의 재건축을 마냥 지연시킬 것이 아니라 비정비 사업을 통해 이주 수요를 받아낼 물량을 적극적으로 확보하고 이주 시기를 오히려 앞당기는 방식으로 조정할 수도 있다. 무작정 미룬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여러 유연한 대안이 나올 수 있다.
-재건축 수요 자체도 예전에 비해 줄어든 것 같다.
△수요는 있지만 비용 부담이 커지면서 수익성 차원에서 우려가 많아진 것이 사실이다. 다만 비용 부담이 과도하게 높아진 데는 임대주택 공급, 기부채납, 재건축부담금 등 정부의 요구 조건이 늘어난 영향도 크다. 아파트를 짓기만 하면 많이 남았던 시기에는 괜찮았지만 성장이 둔화하는 시기에는 개발이익 발생 강도도 약해진다. 성장기에 만든 개발이익 환수 장치는 줄일 필요가 있다.
-서울 도심 정비에서 시급하게 손대야 할 지역이 있나.
△주거의 재개발·재건축도 중요하지만 구도심 내 쇠락하는 구역들이 많다. 2006년 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된 세운상가와 주변 지역은 입지는 좋지만 역사 문제와 사회적 갈등으로 힘을 잃어가고 있다. 종묘 논란이 있는 세운4구역도 마찬가지다. 이 밖에도 어떤 지역들은 밤중에 돌아다니기 무서울 정도다. 도시를 옛 모습대로 보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삶의 공간을 만들고 개선하는 것도 중요한 목표다. 적정선에서 타협해 쇠락한 구도심을 되살려야 한다.
-그린벨트를 풀어 주택 공급에 활용하는 정부 정책 방향을 어떻게 평가하나.
△기본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본다. 그린벨트는 우리나라 도시계획의 재난적 선택 중 하나라는 것이 개인적 의견이다. 산지와 녹지를 지키면서도 얼마든지 서울 대도시권을 개발할 수 있었는데 그린벨트 지정으로 활용 가능한 땅들이 묶이자 도심에서 외곽 신도시로 개구리 뜀뛰듯이 택지 개발이 이뤄졌다. 낭비적 통근을 조장한 가장 큰 원인이다. 그렇다고 개발이 통제된 것도 아니다. 성장을 물리적 규제 수단으로 막을 수는 없다.
-정부는 ‘부동산 망국론’을 제기하고 있다. 서울 집값 상승을 국가적 위기로 봐야 하나.
△그렇지 않다. 과거의 일본처럼 전국 대도시의 부동산 가격에 거품이 끼면 위기 상황일 수 있지만 우리는 수도권 일부에 국한된 국지적 상승세다. ‘똘똘한 한 채’의 집값 잡기에 정부가 올인하는 것이 오히려 풍선효과를 일으켜 문제를 심화시킨다. 그 부작용은 고용 접근성을 누려야 할 청장년 전월세 가구들이 온몸으로 받고 있다. 과도한 불안에서 촉발된 비정상적 정책 선택에 힘들어지는 것은 결국 서민들이다.
이창무 서울총괄건축가 겸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가 24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도심 내 녹지 조성을 통한 기후 대응을 강조하고 있다. 조태형 기자
◇He is…
1963년 서울대 도시공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도시공학 석사,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도시및지역계획학과 박사 학위를 받았다. 펜실베이니아대 워튼스쿨 부동산학과 선임연구원, 서울시정개발원 부연구위원, 서울대 지구환경시스템공학부 연구부교수를 거쳐 2003년부터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대통령 직속 지역발전위원회 위원, 국토교통부 중앙도시계획위원회 위원,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위원, 한국주택학회 회장, 한국부동산분석학회 회장, 아시아부동산학회 회장 등을 역임한 도시계획·주택정책 전문가다. 최근 서울시 G3서울기획위원회 공동위원장과 제5대 서울총괄건축가로 위촉돼 서울의 미래 공간 설계를 주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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