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슈머타임스=김하은 기자 | 은행권이 올해 '생산적금융'을 핵심 전략으로 내세웠지만, 정작 시장의 관심은 혁신기업 지원보다 생계비 지원·대환대출·상생금융 등 '포용금융'에 쏠리고 있다. 경기 둔화와 부실 우려로 기업금융 확대에는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반면, 정책 호응과 ESG 이미지 효과를 동시에 얻을 수 있는 포용금융에는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이다.
주요 금융지주들은 올해 초부터 생산적금융 확대를 주요 경영 과제로 제시한 바 있다.
하나금융그룹은 'Hana One-IB 마켓 포럼'을 열고 AI·인프라·바이오·헬스케어 등 혁신 산업 중심 금융 지원 방안을 논의했다. KB금융과 신한금융 역시 스타트업·중소기업 투자와 기업금융 확대를 핵심 전략으로 내세우고 있다.
은행권은 기업대출 확대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금융당국이 가계대출 증가세를 억제하는 대신 생산적 분야로 자금 공급을 유도하면서 은행들도 기업여신 중심 포트폴리오 전환에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올해 1분기 주요 은행들의 순이자마진(NIM) 개선 배경에도 기업대출 확대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시장 체감은 다르다. 최근 은행권의 대외 홍보와 실제 상품 출시를 보면 포용금융 사례가 생산적금융보다 많다는 평가다.
우리은행은 최근 2금융권 대출을 은행권 저금리 상품으로 전환해주는 '우리WON 드림 갈아타기 대출'을 출시했고, 신한은행과 KB국민은행도 저축은행 이용자 대상 대환대출 상품 확대에 나섰다.
인터넷전문은행 카카오뱅크는 압류 상황에서도 월 최대 250만원까지 보호받을 수 있는 '전국민 생계비통장'을 선보였고, KB국민카드 역시 자립준비청년 대상 신용관리 지원 사업을 진행 중이다.
하나은행의 '무더위 쉼터' 운영과 하나금융의 무료 안과검진·금융상담 서비스 등도 대표적인 포용금융 사례로 꼽힌다. 토스뱅크가 최근 선보인 시각장애인을 위한 전자점자 서비스도 비슷한 마케팅이다. 이처럼 최근 금융권 ESG 활동이 대부분 취약계층 지원과 민생 안정 중심으로 확대되는 분위기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기업금융보다 포용금융이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현재 경기 둔화 우려와 중동발 지정학 리스크, 부동산PF 부실 여파 등으로 기업여신 건전성 부담이 커진 상황이다. 이 가운데 중소기업과 자영업자 대출은 경기 변동에 민감해 연체율과 부실 위험도 확대됐다.
포용금융은 정책 기조와 맞물려 금융당국과 정치권 요구에 부응할 뿐만 아니라 ESG 평가와 대외 이미지 개선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실제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금융권에서는 취약계층 금융지원과 상생금융 확대 요구가 더욱 강해지는 분위기다.
특히 올해 들어 은행권 대외 홍보에서 '생산적금융'이라는 표현 자체가 줄어들고 있다는 점도 눈에 띈다. 혁신기업 투자나 산업금융 확대보다 서민금융·상생 프로그램이 더 적극적으로 부각되면서 생산적금융의 존재감이 상대적으로 약해졌다는 평가다.
문제는 생산적금융의 본래 취지가 흐려질 수 있다는 점이다. 생산적금융은 혁신 산업과 중소기업, 미래 성장동력 분야에 자금을 공급해 실물경제 성장을 뒷받침하자는 개념이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생산적금융의 본래 취지보다 포용금융·상생금융 중심으로 해석되면서 초기 정책이 흐려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생산적금융은 본래 혁신 산업과 기업 성장을 지원하는 것이 핵심인데, 최근에는 상생금융 프레임에 묻히는 분위기"라며 "은행들도 경기 불확실성과 건전성 부담 때문에 리스크가 큰 기업금융보다 포용금융에 더 집중하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생산적금융이 실질적인 산업 투자와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정책적 유인과 리스크 분담 구조를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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