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회

'위기가 기회' 노총 '소실대탐'(小失大貪) 해볼 때

가뜩이나 한국 최고의 직장으로 꼽히는 삼성전자 노조가 역대급의 최고 보상 제안을 걷어차고 파업을 위협하고 있다. 안타깝고 딱한 일이다. 이런 때 양대 노동 단체가 역발상으로 어른스러움을 보이고 국가 사회를...

'위기가 기회' 노총 '소실대탐'(小失大貪) 해볼 때

더피알=허원순|정부가 노동조합 단체를 향해 한시적 휴전을 제안했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최근 양대 노조 단체의 한 축인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을 찾아 이란전쟁으로 인한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갈등 휴전’을 요청했다. 그는 “중동 전쟁이 장기화해 산업 전반을 위협하고 있는 비상한 시기를 이겨내기 위해 노사 역량을 집중하고 현장의 불필요한 갈등은 당분간 휴전하자”고 말했다. 산업정책의 주무 부처인 산업부 수장이 한국노총을 방문한 것은 20년 만이다. 김 장관은 노동계의 다른 한 축인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과도 곧 만날 계획으로 알려졌다.

김정관(오른쪽) 산업통상부 장관이 서울 영등포구 한국노동조합총연맹 대회의실에서 열린 '한국노총-산업통상부 장관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위기 상황을 맞아 파업 등 대규모 노동 쟁의 행위를 자제해 달라는 제안 겸 요청은 이런 시기에 정부 당국자로서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다. 정부가 아니더라도 경제 현실을 직시한다면 누구라도 당연히, 자연스럽게 그렇게 인식하고 판단할 것이다. 산업정책 책임자가 노총 위원장을 찾아 정색하고 요청해야 할 정도로 날이 선 대치 구도의 한국형 노사 대립이 새삼스럽고 안타깝다. 대립적 구도와 노사갈등은 덩치가 커진 한국의 산업계에 뿌리 박힌 상시적 위험이라는 사실이 재차 확인되는 장면이기도 하다.

이란전쟁이 한 달을 넘기면서 그 여파가 무척 크다. 이번 전쟁의 후폭풍은 세계의 산업과 경제, 경제를 억누르고 있다. 전쟁과 함께 글로벌 공급망 체계가 흔들리면서 생산이 원활하지 못하자 원자재 가격이 급등했다. 각종 공산품 출하에 차질이 속출한다. 국제 유가의 급등은 눈으로 바로 확인하는 불안과 불안정의 지표이면서 위험 신호가 켜진 경제 산업의 한 단면일 뿐이다. 빨간불은 급등한 기름값만의 문제가 아니다.

나프타 공급망의 이상은 온갖 종류 석유화학 제품의 생산 부족과 그로 인한 가격 상승을 예고하고 있다. 각종 건설과 공사장의 기본인 콘크리트 레미콘에도 원유에서 나오는 석유화학 물질이 강화제로 요긴하다는 사실을 이런 위기가 닥치지 않으면 보통 사람들은 제대로 알 길도 없다. 비료 산업으로는 이미 타격이 갔다. 비료 생산에 걸린 비상은 식량 가격 불안으로 이어질 조짐을 보인다. 전쟁이 조기에 끝나지 않으면 비닐 등 포장지 부족으로 가공식품과 생필품 생산도 위협받게 된다. 쓰레기 종량제 봉투가 부족해졌다고 하고, 일본에서는 의료용 장갑 가격이 2배로 뛰었다는 소식이다.

순서와 시차의 문제일 뿐 원유를 수입해 쓰는 대부분 국가의 엄연한 현실이다. 새삼 현대의 산업과 일상이 석유 기반의 화학제품에 얼마나 의존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위기에는 위기에 맞는 적합한 대응이 필요하다. 노조 세력도 이점을 잘 알아야 한다. 정부가 차량 5부제, 유류 최고가격제 등의 시행에 나섰지만, 그 정도로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까.

이런 때 정부가 뭐라도 해야 한다는 강박감을 느낄 것이니 낯익은 조치를 대책이라고 내놓는 것이다. ‘효과도 없는 탁상공론’이라는 썰렁한 소리를 듣더라도 때로는 그런 게 행정일 수가 있다. 아니면 추경 편성으로 돈 풀기 정도다. 그렇다고 경제 산업에 부작용을 동반하는 충격 요법을 정부가 마구 휘둘러서도 안 된다. 당장 급하긴 하지만 훗날도 생각해야 한다.

한국노총 찾은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 사진=뉴시스

이런 때 한국노총이 적어도 일정 기간 ‘무분규 무파업’이라도 선언하면 정책보다 훨씬 나은 심적 물적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노조가 숙고할 점이 이것이다. 위기를 맞아 자발적으로 사회적 책무를 이행하는 게 되고, 이 위기 국면을 잘 넘겼을 때 발언권이 자연스럽게 세어질 수 있다. 분명히 이익이 되는 정책적 사회적 스탠스다.

가뜩이나 한국 최고의 직장으로 꼽히는 삼성전자 노조가 역대급의 최고 보상 제안을 걷어차고 파업을 위협하고 있다. 안타깝고 딱한 일이다. 이런 때 양대 노동 단체가 역발상으로 어른스러움을 보이고 국가 사회를 이끌어가는 리더십을 보이면 감동으로 이어질 것이다.

사실 노동조합들도 사회적 책무를 재인식해야 할 정도로 나라 안팎 상황이 좋지 않다. 위기돌파 방안을 스스로 제시해 경제 산업 대란을 잘 극복할 수 있도록 대승적으로 판단하고 합리적으로 이성적으로 상식에 맞게 행동하면 노조에 대한 국민 신뢰도 크게 제고될 것이다.

방법은 어렵지 않다. 한시적 분규 자제 혹은 중단 정도만 해도 충분하다. 노조가, 노조만이 할 수 있는 선택이다. 과히 어렵지도 않다. 한국노총이 나서 산업부 장관의 무분규 제안에 적극적으로 부응하면 된다. 그렇게 위기 국면을 잘 넘겨 놓고 속된 말로 ‘계산서’을 슬쩍 청구해도 되지 않을까. 그게 노조에도 남는 장사 아닐까.

허원순

현 고려대 특임교수(전 한국경제신문 수석논설위원)

이 기사 공유하기
페이스북X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i

댓글

0

후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이 기사에 첫 의견을 남겨보세요.

댓글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