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원·달러 환율 시황이 표시되고 있다. 이날 서울외환시장에서 달러·원 환율은 전일 주간 종가(오후 3시 30분) 대비 21.6원 내린 1508.5원에 출발했다. [사진=뉴스1]
[아시아에이=이준호 기자] 원·달러 환율이 장중 1500원 선을 위협하는 '슈퍼 킹달러' 기조에 국제 유가 상승세까지 겹치면서 삼성전자와 LG전자 가전 사업에 비상이 걸렸다.
고환율과 고유가가 동시에 덮치며 원자재 가격과 물류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지만, 장기화된 글로벌 가전 수요 침체로 이를 제품 가격에 반영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1분기 실적 선방을 노리는 K-가전이 고환율·고유가·수요 침체 3중고로 인한 원가 압박이라는 늪에 빠진 형국이다.
2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환율과 유가 동반 상승은 실적 회복이 시급한 국내 가전업계에 치명타로 작용하고 있다.
앞서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지난해 4분기 TV·가전 사업에서 나란히 뼈아픈 실적표를 받아들었다. 삼성전자(VD·DA)는 6000억원의 영업손실을 냈고, LG전자 역시 가전과 TV 부문 합산 4000억원대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고전했다. 관세 인상 우려와 물류비, 원가 상승이 겹친 탓이다.
증권가에서는 통상 가전 성수기인 올해 1분기를 기점으로 양사 가전사업이 반등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하지만 최근 다시 1500원 선을 뚫은 환율과 치솟는 유가는 가전 부문 흑자 전환과 수익성 확대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가전제품은 스마트폰이나 반도체 대비 철강, 구리, 그리고 플라스틱 수지(레진) 등 부피가 큰 기초 원자재가 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특히 석유화학 제품인 레진은 국제 유가 흐름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유가 상승으로 원자재의 절대적인 가격 자체가 오른 데다, 이를 결제하는 환율마저 1500원대에 육박하면서 원가 부담이 이중으로 가중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덩치가 큰 가전 특성상 떼어놓을 수 없는 글로벌 해상 물류비도 유가 상승과 함께 들썩이고 있어 비용 압박을 부채질하고 있다. 해외 매출 비중이 높아 장부상 원화 환산 매출은 방어되는 듯한 '착시 효과'를 주지만, 실제 제조 및 운송에 드는 달러 기준 원가가 급등하면서 영업이익률은 뚝 떨어지는 구조다.
가장 큰 딜레마는 치솟는 원가를 제품 판매 가격에 전가할 수 없다는 점이다. 고유가는 글로벌 인플레이션을 자극해 소비자 가처분 소득을 줄이고, 이는 결국 내구재인 가전 수요 위축으로 직결된다.
업계는 당장의 이익률 방어보다 재고 소진과 점유율 유지가 시급한 상황이라 함부로 가격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수요가 얼어붙은 상태에서 판가마저 인상할 경우, 판매량 자체가 급감하는 역풍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원가 상승에 따른 손실을 제조사가 고스란히 떠안으며 버텨야 하는 실정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해외 주요 거점에서 현지 생산 체제를 갖춰 '자연 환헤지(위험 회피)' 시스템을 가동 중이지만, 고유가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 전반의 인플레이션 앞에서는 방어선이 뚫릴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냉장고 컴프레서 등 핵심 부품은 여전히 국내 생산 후 수출하는 비중이 커 타격을 피하기 어렵다.
결국 양사는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 가전 부진을 B2B(기업 간 거래)와 새로운 사업 모델로 상쇄하는 데 사활을 걸고 있다. LG전자는 냉난방공조(HVAC) 등 B2B 사업 확대와 안정적인 현금 창출이 가능한 구독 모델을 통해 파고를 넘고 있다. 삼성전자 역시 AI 가전 통합 제어를 앞세운 프리미엄 라인업 중심 믹스 개선으로 수익성 방어에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환율이 오르면 수출이 유리하다는 건 옛말이고, 지금은 유가 상승에 따른 원자재와 물류비 폭등이 훨씬 더 뼈아픈 상황"이라며 "수요가 받쳐주지 않아 원가 인상분을 판가에 녹일 수도 없어, 2분기부터는 원가 절감 등 내실 다지기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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