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 휴머노이드 클로이드. 현재 엔비디아와 협력해 소프트웨어 고도화를 진행 중이다. (사진=김지윤 기자)
[녹색경제신문 = 김지윤 기자] LG그룹이 다시 한번 ‘미래 먹거리’ 전면전에 나서고 있습니다. 이번 키워드는 로보틱스입니다.
최근 몇 년간 LG그룹의 기존 성장 공식은 다소 흔들려 왔습니다. 한때 그룹을 이끌던 가전과 화학, 배터리 사업은 성장 둔화와 경쟁 심화 속에서 예전만큼의 폭발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데요. 삼성과 SK, 현대차, 한화 등 주요 대기업들이 AI·반도체·방산·조선 등을 앞세워 존재감을 키우는 동안, LG는 상대적으로 시장의 중심에서 다소 비켜나 있었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LG가 새롭게 꺼내든 성장 서사가 바로 로보틱스입니다. 최근 계열사들의 메시지만 봐도 분위기는 확연합니다.
LG전자는 올해 1분기 컨퍼런스콜에서 실적 발표 직후 가장 먼저 로보틱스를 언급했습니다. 김창태 부사장은 “휴머노이드 사업은 올해 중 PoC(개념검증) 실증 작업에 투입할 로봇 생산 준비가 진행 중이며, 액추에이터 역시 상반기 중 초도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기업의 컨퍼런스콜은 단순 실적 설명 자리가 아닙니다. 어떤 사업을 가장 먼저 이야기하느냐는 회사가 투자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미래 우선순위와 직결됩니다. LG전자가 로보틱스를 전면에 배치했다는 건, 그룹 차원에서 해당 사업을 차세대 성장축으로 밀고 있다는 의미로 읽힙니다.
LG CNS의 행보도 이례적이었습니다. LG CNS는 지난 7일 마곡 LG사이언스파크에서 대규모 미디어 간담회를 열고 로봇전환(RX) 플랫폼 ‘피지컬웍스(Physical Works)’를 공개했습니다. 현신균 CEO와 박상엽 CTO 등 주요 경영진이 총출동해 직접 발표와 질의응답을 진행했고, 현장 시연까지 함께 이뤄졌습니다.
전통적인 B2B·SI 기업인 LG CNS는 고객사 중심의 조용한 사업 운영을 이어온 회사입니다. 대규모 공개 행사를 자주 여는 기업도 아닙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별도 플랫폼 브랜드까지 내세우며 대외 메시지를 강하게 던졌습니다. 업계에서는 LG CNS가 로봇 사업 의지를 시장에 본격적으로 드러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LG는 지금 그룹 차원에서 수직 계열화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신체에 비유하면 이해가 빠릅니다.
지주사 산하 AI연구원은 로봇의 두뇌 역할을 하는 AI 모델과 인지 기술을 담당하고, LG전자는 로봇의 몸에 해당하는 액추에이터·감속기 같은 하드웨어 구동 부품을 맡습니다. LG이노텍은 눈에 해당하는 광학 센서와 비전 모듈, LG CNS는 신경망인 로봇 운영 플랫폼과 산업 현장 연동 시스템, LG에너지솔루션은 심장과 같은 배터리를 담당하는 구조입니다.
계열사의 밸류체인을 최대한 활용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과거 스마트폰 시대에 LG전자·LG디스플레이·LG이노텍·LG화학 등이 하나의 모바일 생태계를 구축하려 했던 흐름과도 닮아 있습니다.
다만 냉정하게 보면 지금 단계의 로보틱스는 아직 ‘미래 서사’에 가깝습니다. 산업 자체가 이제 막 초기 시장을 형성하는 단계이기 때문입니다. 업계에서는 현재 로보틱스 시장이 과거 전기차 초기 시장과 비슷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한때 전기차 역시 폭발적인 성장 기대감 속에서 대규모 투자가 몰렸지만, 이후 충전 인프라와 수요 둔화 문제로 긴 캐즘(Chasm)을 겪었죠.
로보틱스 역시 기술 완성도와 비용 문제에 더해 노동 윤리 이슈까지 함께 얽혀 있습니다. 실제 산업 현장에 본격적으로 확산되기까지는 생각보다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란 전망도 적지 않습니다.
LG CNS가 선보인 피지컬웍스를 활용해 운영되는 스마트팩토리 시연. 원격조종이 아닌 실시간 판단으로 로봇이 움직이고 있다. 다만 속도와 가반 무게 면에서는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영상=김지윤 기자)
LG 역시 아직 갈 길은 멀어 보입니다. LG전자의 홈 AI 로봇 ‘클로이드(CLOiD)’는 지난 CES 공개 당시 속도와 움직임의 자연스러움 측면에서 개선 필요성이 제기됐고, 현재 고도화 작업이 진행 중입니다. 이번 LG CNS 행사에서 공개된 공장 자동화 시연 역시 실제 산업 현장 수준으로 보기엔 아직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일부 나왔습니다.
결국 지금 단계의 로보틱스 사업은 대부분 LAB 안에서 진행되는 PoC(개념검증) 수준에 가까운 상황입니다. 실제 매출 기여와 사업 성과가 본격화되기까지 몇년은 필요하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시각입니다. LG CNS 이준호 전무 역시 현장에서 “실질적인 비즈니스 성과는 2~3년 뒤를 예상한다”는 취지로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그룹 내부 소프트웨어 전략 역시 아직 완전히 정리된 모습은 아닙니다. LG전자는 클로이드 고도화를 위해 엔비디아의 ‘아이작(Isaac)’ 플랫폼을 활용하고 있는데, 이는 LG CNS가 자체 플랫폼으로 공개한 ‘피지컬웍스 포지(Forge)’의 경쟁 모델입니다.
LG CNS 역시 현재까지는 그룹 AI 모델인 ‘엑사원(EXAONE)’보다는 글로벌 범용 AI 플랫폼 중심의 협업을 확대하는 분위기입니다. 회사 측도 아직 엑사원 적용 계획은 구체화되지 않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원 LG(One LG)’를 강조하고 있지만, 실제 사업 현장에서는 글로벌 빅테크 의존도가 여전히 높은 셈입니다.
그럼에도 시장이 LG의 로보틱스 전략에 반응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LG가 내세우는 로봇 사업이 기존 핵심 역량과 자연스럽게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LG전자의 모터·구동 기술, LG이노텍의 광학 기술, LG CNS의 시스템 구축 역량은 모두 글로벌 최고 수준 경쟁력을 갖춘 분야로 평가받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사업에 무리하게 뛰어드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잘하던 기술들을 로봇이라는 하나의 산업으로 다시 엮고 있다는 점이 긍정적입니다. 특히 대규모 인수합병(M&A)을 통해 외부 기술을 사들이는 방식보다는, 그룹 내부 기술력과 계열사 협업 중심으로 로보틱스 생태계를 구축하려 한다는 점은 LG만의 차별화 포인트로 꼽힙니다.
아직 시장은 완전히 열리지 않았고, LG가 선보인 데모 역시 '입을 떡 벌어지게 할' 수준은 아닙니다. 다만 분명한 건 LG가 지금 로보틱스를 통해 다시 한번 ‘기술의 LG’라는 정체성을 시장에 각인시키려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향후 2~3년 안에 LG가 실제 사업 성과까지 연결해낼 수 있을지, 시장은 '기술의 LG'에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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