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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논밭에서 찾은 무병장수의 꿈 ‘에그리 메디’

농업은 반도체·자동차를 넘어 인류 건강을 설계하는 4차산업 혁명의 심장이다. 흙 묻은 장화와 하얀 가운이 손을 잡는 순간, 우리 농촌은 위기를 딛고 인류 미래를 수확하는 ‘희망의 땅’으로 거듭날 것이다. 박태균...

과거의 농업이 인류의 배고픔을 해결하는 ‘생존’ 영역이었다면, 미래의 농업은 질병을 고치고 수명을 늘리는 ‘생명’ 영역으로 진화하고 있다. 농업과 의학의 결합, ‘에그리 메디(Agri-Medi)’ 혁명이다. 첨단 생명공학이 논밭으로 스며들면서 농산물은 단순한 먹거리를 넘어 고부가가치 의약품과 치료제로 변모하고 있다.가장 극적인 사례는 식물을 의약품 생산 플랫폼으로 활용하는 ‘분자 농업’에서 나타났다. 캐나다 바이오기업 ‘메디카고(Medicago)’는 담배의 일종인 ‘니코티아나 벤타미아나’를 이용해 2022년 세계 최초로 식물기반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성공하며 세계를 놀라게 했다. 기존 동물 세포배양이 수개월 걸리는 데 비해 이 식물은 유전자 주입 후 4∼7일이면 원하는 단백질을 수확할 수 있어 팬데믹 대응에 최적인 것으로 평가받았다.국내에서도 2022년부터 경북 포항을 중심으로 그린백신실증지원센터가 가동되는 등 농업과 의료의 만남이 활발하다. 센터는 식물기반 단백질 치료제를 생산하려는 기업을 위해 밀폐형 식물배양실, 백신 생산공정시설, 효능평가시설 등을 제공한다. 센터에 입주한 한 기업은 이 시설을 활용해 세계 최초로 식물기반 돼지열병(CSF) 그린백신을 상용화했다.농업과 의학의 결합은 식탁 위 풍경도 바꾸고 있다. 단순히 몸에 좋은 음식을 넘어 특정 질병의 예방과 치료를 돕는 ‘메디푸드’ 시장이 급성장 중이다. 최근 국내 기업은 당뇨 환자를 위한 ‘혈당 조절 기능성 쌀’이나 신장질환자를 위한 ‘저칼륨 채소’를 맞춤형으로 생산하고 있다.농산물이 단순한 건강식품을 넘어 의학적 데이터에 기반한 ‘먹는 처방전’으로 진화하고 있다. 세계 시장조사기관(그랜드 뷰 리서치, 2023)에 따르면 식물기반 의약품과 기능성 작물시장은 2030년까지 매년 15%가 넘는 고성장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최근 의학계의 화두인 ‘대변 미생물 이식(FMT)’도 농촌 들녘으로 향하고 있다. FMT 기반 치료제 개발은 농업에 두가지 선물을 안겨준다. 먼저 농산물 가치를 ‘정밀 의약품’으로 격상시킨다. 치료제에 쓰이는 유익균을 증식시키기 위해선 특정 성분이 든 기능성 작물이 필수적이다. 이는 농가가 고부가가치 원료 공급처로 변모하며 소득을 크게 높이는 계기가 된다. 또 토양 복원이다. FMT 원리를 땅에 적용하면 화학 비료 대신 미생물 생태계를 되살려 땅의 면역력을 높이는 ‘토양 백신’ 개발이 가능해진다.건강한 땅에서 자란 작물은 그 자체로 의학적 가치가 높은 미생물을 품게 된다. 이처럼 FMT 기술은 농업을 첨단 생명산업의 상단에 올려놓으며 농촌을 인류 무병장수를 위한 ‘바이오 공장’으로 탈바꿈시키고 있다.농업과 의학의 만남은 농가엔 새로운 수익원을, 의료시장엔 저비용·고효율 해법을 제시한다. 하지만 우리가 ‘그린 골드’의 꿈에 부풀어 있는 사이, 현장에서 혁신은 낡은 규제의 쇠창살에 갇혀 있다. 식물 유래 의약품은 여전히 수십년 전 동물 세포 기준으로 설계된 인허가 장벽에 막혀 있고, 메디푸드는 법적 정의조차 모호한 ‘회색 지대’에 머물러 있다.이제 농업을 바라보는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농업은 반도체·자동차를 넘어 인류 건강을 설계하는 4차산업 혁명의 심장이다. 흙 묻은 장화와 하얀 가운이 손을 잡는 순간, 우리 농촌은 위기를 딛고 인류 미래를 수확하는 ‘희망의 땅’으로 거듭날 것이다.박태균 한국식품커뮤니케이션포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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