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오션이 건조한 첫 부유식 액화천연가스 생산설비(FLNG). 한화 제공
조선과 방산 등 국내 주력 수출산업의 소재·부품·장비 공급망을 강화하기 위한 대규모 투자가 시작됐다. 국내 기업의 완제품 기준 글로벌 경쟁력은 높아졌지만 일부 핵심 기술과 기자재는 여전히 해외 의존도가 높은 만큼, 정부와 기업이 공급망의 빈틈을 메우는 데 나선 것이다.
특히 조선 분야에서는 한 척에 수조원이 오가는 고부가가치 해양플랜트인 FLNG(부유식 액화천연가스 생산설비)의 핵심 액화공정 기술 국산화가 본격화된다. 국내 조선사가 세계적인 FLNG 건조 능력을 갖췄음에도 막대한 원천기술 사용료를 해외 기업에 지급하고, 핵심 기자재 선택에도 제약을 받아왔던 구조를 바꾸겠다는 취지다.
18일 산업통상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전날 소재·부품·장비 경쟁력강화위원회를 열고 경남 조선과 대전 방산, 전북·충남 반도체 등 4곳을 제3기 소부장 특화단지로 지정했다. 정부는 향후 5년간 단지별 약 400억원씩 총 1600억원을 지원한다. 민간에서는 수요기업 투자 4조원을 포함해 2030년까지 총 7조7000억원 규모의 투자가 예정돼 있다.
소부장 특화단지는 핵심 소재와 부품, 장비를 생산하는 기업과 수요기업, 연구기관 등을 특정 지역에 모아 기술개발부터 실증·생산까지 연결하는 산업 거점이다. 정부는 지난 2021년과 2023년 각각 5곳씩 총 10곳을 지정했으며 2030년까지 10곳을 추가할 계획이다. 새로 선정된 특화단지에는 연구개발(R&D)과 기반 구축, 인력 양성뿐 아니라 민간투자가 적기에 이뤄질 수 있도록 인허가·규제·정책금융 등을 지원한다.
FLNG 건조 뛰어나지만 핵심 기술은 해외에…한화오션 1.5조 투자
이번 지정에서 조선 분야의 핵심 지역은 경남 거제다. 한화오션을 앵커기업으로 FLNG 액화공정 원천기술과 핵심 기자재 국산화에 나선다. 산업부가 제시한 경남 조선 분야 민간투자 규모는 2030년까지 1조5000억원이다.
FLNG는 해상 가스전에서 생산한 천연가스를 육상으로 옮기지 않고 바다 위에서 직접 액화한 뒤 저장·출하하는 대형 해양플랜트다. 심해나 육상시설을 짓기 어려운 원거리 가스전 개발에 적합하다. 축구장 3~4배 크기로 플랜트 설계와 화학 공정, 배관, 특수 액화설비를 정밀하게 배치해야 해 높은 수준의 엔지니어링 기술이 요구된다. 1기당 수주액만 4조원을 넘는다.
국내 조선업계는 FLNG 건조 분야에서 경쟁력을 확보했지만 정작 천연가스를 액화하는 공정의 원천기술은 전량 해외 기업에 의존하고 있다. 한화오션 역시 FLNG 건조 실적을 보유하고 있지만 액화공정 기술 자립은 별개의 과제로 남아 있다.
국내 조선사는 FLNG를 건조할 때마다 수주액의 2~3%에 해당하는 로열티를 해외에 지급하고 있다. 수주액 4조원 규모의 프로젝트를 기준으로 단순 환산하면 800억~1200억원에 해당한다.
부담은 기술료에 그치지 않는다. 해외 원천기술 업체가 특정 기자재 공급업체를 지정하는 이른바 ‘벤더 고정’ 구조 탓에 국내 소부장 업체가 관련 기술과 제품을 보유하고도 실제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어려웠다는 게 경남도의 설명이다. 이는 프로젝트 수익성을 낮추고 기자재 공급망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요인으로도 지목됐다.
정부와 경남도는 2031년까지 745억원을 투입해 이 같은 해외 의존 구조를 낮춘다는 방침이다. 국산화 대상은 FLNG 액화공정 설계기술을 비롯해 수분 흡착제와 터보 팽창기, 극저온 열교환기 등이다. 기자재뿐 아니라 원천 설계기술까지 국내에서 확보하는 것이 목표다.
경남 조선해양플랜트 소재·부품·장비 특화단지의 FLNG 핵심 전략품목. 액화공정 기술과 극저온 팽창기·열교환기, 수분 흡착제 등의 국산화를 추진한다. 경상남도 제공
앵커기업인 한화오션도 2031년까지 대형 해양플랜트 건조설비와 스마트 제조 자동화, 안전관리 체계 구축 등에 1조522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핵심 기술 국산화와 성능 검증, 실증 지원, 협력 소부장 기업의 기술 고도화에도 참여한다.
거제시와 경남테크노파크, 연구기관, 지역 대학 등도 힘을 보탠다. FLNG 핵심기술·기자재 개발과 함께 실증 인프라 구축, 시험·평가·인증, 전문인력 양성을 맡는다. 기존 조선기자재 업체에는 친환경·고부가가치 해양플랜트 분야로 사업 영역을 넓힐 수 있도록 기술개발부터 인증, 사업화, 판로개척까지 지원할 예정이다.
국산화가 이뤄지면 국내 조선사의 수익성과 공급망 양쪽에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원천기술 확보로 해외에 지급하는 로열티를 줄이고, 벤더 고정 구조를 완화해 국내 소부장 업체의 FLNG 프로젝트 참여 기회를 넓히는 방식이다. 경남도는 핵심 기자재의 안정적인 국내 조달이 FLNG 수주 경쟁력 향상으로도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K9은 이미 95% 이상 국산화…방산은 정밀 전자·광학부품 강화
방산 분야는 조선과 상황은 조금 다르다. 완제품을 중심으로 이미 높은 수준의 국산화를 이룬 무기체계가 있는 만큼, 이번 특화단지는 정밀 전자·광학부품의 기술 경쟁력을 높이고 공급망을 한층 강화하는 역할을 맡는다.
대전 방산 소부장 특화단지에서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LIG D&A 등을 중심으로 KF-21과 K9 등 주요 무기체계에 활용되는 정밀 전자·광학부품을 개발한다. 관련 부품의 생산 자립 기반을 갖춰 K-방산 수출 확대에 대응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K9 자주포는 이미 상당 부분 국내 공급망을 확보한 상태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관계자는 쿠키뉴스에 “K9의 경우 이미 핵심 구성품을 포함해 95% 이상의 국산화율을 확보해 놓았다”며 “다만 수출용 K9은 고객 국가의 요청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방산 특화단지는 완제품 전체의 국산화율을 처음부터 끌어올리기보다는 정밀 전자·광학부품 등 특정 분야의 기술력을 높이고 국내 소부장 업체가 공급망에 참여할 기반을 넓히는 데 무게가 실린다.
정부는 향후 5년간 신규 특화단지에 총 1600억원을 지원하고, 민간에서는 2030년까지 7조7000억원 규모의 투자를 추진한다. 이번 특화단지는 조선에서는 원천기술과 핵심 기자재, 방산에서는 정밀 전자·광학부품을 중심으로 산업별로 다른 공급망의 빈틈을 메우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박상미 기자 nanhong@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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