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나를 볼 수 없다는 것만 빼면’ 한 장면. 국립극단 제공
한국어 내레이션 그대로… “자막·상황만으로 파악하는 과정이 몰입 더해”
상반기 싱가포르 ‘헤다 가블러’·홍콩 ‘십이야’ 이어 하반기 베이징·파리 무대로
국립극단이 독일 최대 국제 동시대 공연예술 축제 ‘테아터 데어 벨트(Theater der Welt)’에서 초청공연을 마쳤다고 6일 밝혔다. 싱가포르, 홍콩에 이어 하반기 중국, 프랑스 무대까지 이어지는 해외 진출 행보다.
정세영 연출의 ‘당신이 날 볼 수 없다는 것만 빼면’은 2일과 3일(현지시간) 양일간 독일 켐니츠 오페라하우스 발레스튜디오에서 상연됐다. 켐니츠는 2025년 유럽 문화수도로 지정된 도시다. 양일 공연 모두 객석이 조기 매진돼 좌석이 추가 설치됐고, 공연 종료 후에는 5분여간 환호와 박수가 이어졌다.
이 작품은 2024년 국립극단이 새로운 연극 언어 개발을 위해 도입한 연구개발 사업 ‘창작트랙 180°’에서 ‘소실점의 후퇴’라는 제목으로 첫선을 보인 프로젝트의 최종 완성본이다. 투명 인간과 유령이라는 소재를 통해 전통적인 극장의 시점과 물리적 법칙을 해체하고, ‘볼 수 없지만 보이는 것’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국립극단은 한국어 내레이션을 그대로 유지하고 독일어와 영어 자막을 제공하는 방식을 택했다. 한 관객은 예술가와의 대화에서 “한국어 사운드의 의미를 모른 채 자막과 상황만으로 극을 파악하는 과정이 투명 인간이라는 소재에 더욱 몰입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극 중 삽입된 독일 밴드 네나(NENA)의 ‘99 Luftballons’도 현지 관객들의 공감을 끌어냈다.
작품을 초청한 테아터 데어 벨트의 큐레이터 장위안은 “정세영 연출의 작업은 시각 위주의 전통적인 극장에서 벗어나 우리가 생각해야 할 극장의 새로운 이면을 연구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이것이 이 작품을 초청한 이유”라고 밝혔다.
‘헤다 가블러’의 한 장면. 국립극단 제공
국립극단의 해외 진출은 상반기 아시아 무대에서도 이어졌다. 지난 5월 말 싱가포르국제예술축제(SIFA)에 이혜영 주연의 ‘헤다 가블러’가 공식 초청돼 3회차 전 좌석이 조기 매진됐고, 3층 객석이 추가로 열렸다. 현지 언론은 “고전을 성공적으로 동시대화한 수작”이라고 평가했다. 축제 기간에는 서수연 음성해설 작가가 ‘창의적 접근성의 진화: 한국 연극의 음성 해설’ 워크숍을 진행했고, 5월 20일 열린 공개 포럼 ‘능력의 재정의: 아시아 장애예술이 나아갈 길’에는 강보름 연출가가 토론자로 참여했다. 6월 말 홍콩국제셰익스피어축제(HKISF)에 초청된 ‘십이야’는 양일간 600여 명의 현지 관객이 관람했다.
하반기 해외 공연도 이어진다. 9월 초 베이징에서 열리는 한·중·일 연극 교류 행사인 베세토(BeSeTo) 연극제에 ‘태풍’이 공식 초청됐다. 11월에는 프랑스 파리 국립기메동양박물관에서 창작극 ‘삼매경’을 입체 낭독공연으로 선보인다. 박물관이 2026년을 ‘한국의 해’로 지정하면서 기획된 프로그램으로, 대규모 무대 장치 대신 희곡 텍스트와 배우의 언어적 전달력에 집중하는 형식이다.
박정희 국립극단 단장 겸 예술감독은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넘어 세계 관객과 호흡하며 K-연극의 고유한 매력을 입증하고 있다. 앞으로도 국립극단이 세계 공연예술계의 중심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글로벌 네트워크와 유통 모델을 지속적으로 개발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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