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불황·시설 노후·업종 제한
3중고에 규모·매출 대폭 줄어
최근 중동 정세 불안까지 겹쳐
“이대로 가면 10년 내 무너진다”
1980년 조성된 대구염색산업단지는 한때 대구를 ‘섬유도시’로 성장시킨 산업의 심장이었다. 그러나 40여년이 지난 지금은 장기 불황과 시설 노후화, 업종 제한이라는 삼중고에 직면하며 생존의 기로에 서있다.
1980년 조성된 대구염색산업단지는 한때 대구를 ‘섬유도시’로 성장시킨 산업의 심장이었다. 전국 최초의 염색 전용 산업단지이자 공동폐수처리장과 열병합발전소를 기반으로 국내 섬유산업을 이끌며 지역 경제의 중추 역할을 했다. 그러나 40여년이 지난 지금은 장기 불황과 시설 노후화, 업종 제한이라는 삼중고에 직면하며 생존의 기로에 서있다. 업계에서는 “이대로라면 10년 안에 산단과 입주기업이 함께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감까지 나오고 있다. 본지는 염색산단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이전과 업종 다양화 등 경쟁력 회복을 위한 현실적인 해법은 무엇인지 짚어본다.
◇스팀도, 매출도 줄었다…산단 덮친 장기 불황
염색산단의 침체는 지역 섬유산업 전반의 축소와도 맞물려 있다. 1990년만 해도 대구 제조업체 3곳 가운데 1곳이 섬유 관련 업체였고 종사자는 14만4천여명에 달했다. 당시 섬유 수출은 39억달러를 넘어 지역 제조업 수출의 25%를 차지하며 대구 경제를 이끌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대기업 생산기지의 해외 이전과 인건비 상승, 글로벌 경쟁 심화 등이 이어지면서 산업 규모는 빠르게 축소됐다. 현재 지역 섬유업체는 600여곳으로 30년 전보다 약 79% 감소했고 종사자도 1만5천여명 수준으로 급감했다. 수출 규모 역시 전성기와 비교하면 70% 이상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변화는 공장 가동을 나타내는 각종 지표에서도 확인된다.
대구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해 염색산단 열병합발전소의 증기 공급량은 130만4천247t으로 집계됐다. 전년(143만4천752t)보다 9.1%, 10년 전인 2015년(219만1천4t)과 비교하면 40.5% 감소한 수치다. 공동폐수처리장 유입량도 크게 줄었다. 지난해 제1처리장은 약 155만8천㎥, 제2처리장은 242만㎥가 유입돼 2015년보다 각각 33.6%, 51.2% 감소했다.
증기 공급량과 폐수 유입량은 염색 공장 가동 상황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다. 공장 가동이 줄어들면 증기 사용량과 폐수 발생량도 함께 감소하기 때문이다. 실제 주요 지표가 동반 하락하면서 산단 전반의 매출도 눈에 띄게 위축된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해 염색산단 전체 매출은 5천164억원으로 전년(5천462억원)보다 6% 감소했다.
여기에 최근 중동 정세 불안까지 겹치면서 업계의 어려움은 더욱 커지고 있다. 미국과 이란 간 충돌 여파로 국제유가와 물류비 상승 우려가 커지면서 원자재 가격 부담이 다시 높아졌기 때문이다. 염색업계는 에너지 사용 비중이 높은 산업 특성상 유가와 가스 가격 변동에 민감한 데다 수출 의존도가 높아 글로벌 공급망 불안과 경기 둔화까지 동시에 영향을 받고 있다. 업계에서는 장기적인 산업 침체에 대외 악재까지 더해지면서 경영 부담이 한층 가중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市, 2032년까지 군위 이전 추진
막대한 비용·군민 반대 걸림돌
‘업종 제한 해제’도 쉽지 않아
“무분별 확대시 경쟁력 잃을수도”
◇ 이전이냐 업종 제한 해제냐…엇갈린 해법
장기 침체에 빠진 염색산단의 활로를 놓고 지역사회에서는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대구시는 2032년을 목표로 염색산단의 군위 이전을 추진 중이다. 군위 제1첨단산업단지에 첨단섬유복합지구를 조성해 경쟁력이 있는 업체를 중심으로 이전을 유도할 계획이다.
하지만 입주기업들은 막대한 비용 부담을 가장 큰 걸림돌로 꼽는다. 새 부지 조성과 공장 신축은 물론 폐수처리시설과 생산라인까지 다시 구축해야 하는 만큼 장기간 이어진 경기 침체 속에서 이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한 군위 주민들의 반대 여론도 만만찮은 상황이다.
이 때문에 기업들이 가장 시급한 과제로 요구하는 것은 ‘업종 제한’ 완화 또는 해제다.
현재 염색산단은 1978년 제정된 ‘비산염색 전용공업단지 조성에 관한 조례’에 따라 염색업종만 입주할 수 있다. 기업들은 섬유산업 침체가 장기화하는 상황에서도 다른 업종을 유치할 수 없어 신규 투자와 공장 매각마저 쉽지 않은 구조라고 호소한다.
기업들은 친환경 소재와 첨단 제조업, 연구개발(R&D), 물산업 등 다양한 업종이 입주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해야 새로운 투자와 산업 재편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특히 업종 제한이 완화 또는 해제되면 부지 가치가 상승해 군위 이전에 필요한 재원 또한 마련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실제 대구염색산업단지관리공단이 올해 1~3월 입주기업 127개사와 주민 8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입주기업의 69.8%가 업종 다양화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가장 큰 문제점으로는 ‘업종 제한에 따른 성장 한계’(40.4%)를 꼽았다. 희망 업종은 반도체 등 첨단산업(24.8%), 지식기반서비스업(20.2%), 물류·유통업(17.4%), 연구개발업(13.8%) 순으로 나타났으며 전면 해제보다는 단계적인 확대를 선호하는 의견이 많았다.
박광렬 대구염색산업단지관리공단 이사장은 “염색 물량이 10여년 전과 비교해 절반 이하로 줄어든 상황에서 염색업종만으로 산단을 유지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군위 이전에는 발전소와 폐수처리장 등 기반시설 구축에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필요한 만큼 이전만 기다릴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전이 현실화될 때까지라도 관리기본계획을 변경해 다른 업종의 입주를 단계적으로 허용해야 한다”며 “염색업종 비중을 자연스럽게 줄이면 업체 간 과당경쟁을 완화하는 동시에 인근 지역의 환경 개선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 주민 “이전해야”, 노동계는 “업종 제한 반대”
주민들은 악취와 대기오염 등 생활 불편으로 인해 산단 이전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염색산단의 조사 결과 산단 이전에 대해 주민의 74.3%가 찬성했으며 이전 시 생활환경이 개선될 것이라는 응답은 79.4%에 달했다. 응답자의 68%는 산단이 지역에 미치는 영향이 부정적이라고 평가했고 73.4%는 일상생활에서 불편을 겪고 있다고 했다. 가장 큰 불편 요인은 악취(63.1%)와 대기오염(40.2%)이었다.
주민의 77.5%는 염색업 외 다른 업종 유치에 찬성했으며 친환경·저탄소 제조업과 연구개발시설 등을 가장 선호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노동계는 이전과 업종 제한 완화 모두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염색업체들이 한곳에 모여 공동 폐수처리시설과 열병합발전소 등 기반시설을 공유하는 집적 구조 자체가 산업 경쟁력이라는 이유에서다. 무리한 이전이나 업종 전환보다 기존 산업 기반을 유지하면서 경쟁력을 높이는 방안이 우선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조 관계자는 “염색산단은 개별 공장의 집합이 아니라 하나의 생산 시스템”이라며 “업체들이 스팀과 폐수처리시설 등을 공동으로 이용하면서 경쟁력을 유지해왔는데 업종을 무분별하게 확대하면 이러한 장점이 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산단 이전이나 업종 전환은 말처럼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이전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는 기업은 폐업이나 구조조정으로 내몰릴 수도 있다”며 “기업뿐 아니라 수천 명의 노동자 생계가 걸린 문제인 만큼 충분한 검토와 사회적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법 찾기 첫걸음 ‘사회적 합의’
장기적 발전 방향 최우선 설정
입주 업종 단계적 확대 필요
산업구조 고도화 지원 이뤄져야
◇해법 찾기 첫걸음…‘사회적 합의’가 관건
염색산단의 업종 제한 완화가 침체된 산업단지의 돌파구로 거론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전면적인 규제 해제보다 장기적인 발전 방향을 먼저 설정하고 단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분석한다.
김진엽 계명대 도시계획학과 교수는 염색산단의 가장 큰 문제로 산업 경쟁력은 약화됐지만 공간 구조는 과거 산업단지 체계에 머물러 있다는 점을 꼽았다. 노후화된 시설과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환경 문제까지 고려하면 산업 경쟁력과 도시환경을 함께 개선하는 방향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군위 이전과 업종 제한 완화 중 하나만 선택할 문제는 아니다”며 “군위 이전은 장기적으로 검토할 수 있지만 실제 추진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 만큼 그동안은 업종 제한을 일부 완화해 새로운 산업이 들어올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제시했다.
업종 다양화가 기존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내놨다. 새로운 기업과 연구개발 기능이 유입되면 기업 간 협력이 활발해지고 기존 제조업의 고도화는 물론 청년층을 위한 새로운 일자리 창출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업종 제한을 한꺼번에 풀기보다는 단계적인 확대가 필요하다고 봤다. 김 교수는 “친환경 제조업과 첨단산업, 연구개발(R&D) 기능 등을 중심으로 입주 업종을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무엇보다 염색산단의 장기적인 방향을 명확하게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전할 것인지, 기존 부지를 재편할 것인지 큰 방향이 정해져야 기업도 투자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환경 개선과 기반시설 정비를 지속적으로 추진하면서 산업구조를 고도화할 수 있는 지원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유빈기자 kyb@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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