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현대차, SK, LG 등 4대그룹 사옥. (사진=각 사 취합)
[서울파이낸스 서종열 기자] 상법 개정안 시행 이후 국내 주요 기업들이 잇따라 자사주 소각에 나서면서 한국 자본시장의 주주환원 정책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자사주를 일정 기간 내 소각하도록 한 제도 변화에 따라 기업들이 대규모 자기주식 정리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삼성전자와 SK 등 주요 대기업을 중심으로 수십조원 규모의 자사주 소각 계획이 발표되면서 기업가치 제고와 주주환원 강화 흐름이 재계 전반으로 확산되는 분위기다.
14일 재계와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상법 개정안 발효 이후 국내 주요 기업들은 보유 중인 자사주를 소각하거나 신규 매입 후 소각하는 방식으로 주주환원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개정 상법은 기업이 새로 취득한 자사주를 1년 내 소각하도록 하고 기존 보유 자사주는 법 시행 후 1년 6개월 내 소각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사실상 자사주를 장기간 보유하는 것이 불가능해지면서 기업들이 선제적으로 자사주 정리에 나서는 모습이다.
자사주는 회사가 시장에서 매입해 보유하고 있는 자기주식이다. 이를 소각하면 발행주식 수가 줄어들어 주당순이익(EPS)과 주당순자산가치가 높아지는 효과가 발생한다. 이 때문에 자사주 소각은 배당과 함께 대표적인 주주환원 정책으로 꼽힌다.
◇ 대기업 중심 수십조원 자사주 소각 =
이번 자사주 소각 흐름은 국내 대표 대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와 SK그룹이 발표한 대규모 소각 계획은 국내 증시에 상당한 파급력을 미치고 있다는 평가다.
삼성전자는 올해 상반기 중 약 16조원 규모의 자사주를 소각할 계획이다. 이는 약 8700만주 규모로, 삼성전자가 보유한 자사주 대부분에 해당한다. 삼성전자는 앞서 지난해에도 약 3조원 규모 자사주를 매입해 소각한 바 있으며, 이후 추가 매입 계획을 발표하면서 주주환원 정책을 확대하고 있다.
재계에서는 삼성전자의 자사주 소각을 한국 기업들의 주주환원 정책 변화를 상징하는 사례로 보고 있다. 국내 최대 시가총액 기업이 대규모 소각을 단행하면서 다른 대기업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SK그룹 지주사인 SK도 대규모 자사주 소각에 나섰다. SK는 약 4조8000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소각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발행주식의 약 20%에 해당하는 규모다. SK는 보유 자사주 약 1798만주 가운데 임직원 보상 목적으로 활용할 일부를 제외하고 약 1469만주를 전량 소각하기로 했다.
현대차도 자사주 소각 정책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다. 현대차는 약 4000억원 규모 자사주를 매입한 뒤 이를 전량 소각할 예정이다. 회사 측은 임직원 보상 등 다른 용도로 활용하지 않고 전부 소각함으로써 주주가치 제고에 활용하겠다는 방침이다.
LG도 마찬가지다. LG는 2024년 말 약 5000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전량 소각 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지난해 9월 2500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소각했으며, 올해 상반기 중 잔여 자사주 2500억원 규모도 소각할 계획이다.
철강업계에서도 자사주 소각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포스코홀딩스는 약 6351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소각하기로 했다. 이는 2024년 발표한 '3년간 총 6% 자사주 소각' 계획에 따른 것으로, 계획이 완료되면 약 1조7000억원 규모의 주주환원 정책이 실행된다.
이 밖에도 한화는 약 5600억원 규모 자사주를 소각할 예정이며 두산 역시 향후 3년 동안 단계적으로 자사주를 소각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4대그룹 자사주 소각 규모. (그래픽=챗GPT생성이미지)
◇ 유통·소비재·식품업종까지 확산 =
자사주 소각 흐름은 대기업 제조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유통업계와 소비재 기업들도 적극적으로 자사주 정리에 나서고 있다.
현대백화점그룹은 계열사들이 보유한 자사주 전량을 소각하기로 했다. 현대백화점, 한섬, 현대그린푸드, 지누스 등 10개 계열사가 참여하며 총 소각 규모는 약 2100억원에 달한다.
또한 현대지에프홀딩스와 현대백화점, 현대그린푸드 등은 약 1357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추가 취득한 뒤 연내 소각할 계획이다. 계획이 완료되면 그룹 전체 자사주 소각 규모는 약 3500억원 수준에 이를 전망이다. 현대백화점그룹은 이번 조치를 통해 상장 계열사들이 자사주를 보유하지 않는 구조를 구축할 계획이다.
롯데지주 역시 자사주 정리에 나섰다. 롯데지주는 분할합병 과정에서 취득한 자기주식 가운데 약 1663억원 규모의 524만주를 소각하기로 했다. 롯데지주는 과거 계열사 분할과 합병 과정에서 자사주 비중이 높아졌는데 이번 조치를 통해 지배구조를 정비하고 주주환원 정책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이마트와 신세계도 자사주 소각을 지속하고 있다. 이마트는 발행주식의 2% 이상을 소각한다는 계획 아래 지난해 약 28만주를 소각했고 올해도 추가 소각을 추진하고 있다. 신세계 역시 매년 자사주를 소각하는 정책을 이어가고 있다.
K뷰티와 식품업계에서도 자사주 소각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화장품 기업 에이피알은 약 600억원 규모 자사주를 매입한 뒤 이를 소각했다. 이어 추가로 취득한 300억원 규모 자사주도 소각하면서 주주환원 정책을 강화했다.
아모레퍼시픽그룹도 약 688억원 규모 자사주를 소각했으며 LG생활건강 역시 향후 자사주 소각 계획을 밝힌 상태다.
식품업계에서는 동원산업이 자사주 전량 소각을 결정했다. 롯데웰푸드와 빙그레도 각각 자사주를 소각하며 주주환원 정책을 확대하고 있다.
증권업계에서는 이 같은 흐름이 소비재 기업의 주가 방어 전략과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소비 경기 둔화와 중국 시장 부진 등으로 성장성이 둔화된 상황에서 자사주 소각을 통해 기업가치를 높이려는 전략이라는 분석이다.
25일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한국거래소 사옥에서 '코스피 6000 돌파 기념식'이 개최됐다.(사진=박조아 기자)
◇ 주당 가치 상승·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기대 =
주요 기업들이 자사주 소각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유는 주당 가치 상승 효과 때문이다. 발행주식 수가 줄어들면 같은 이익을 내더라도 주당순이익이 상승하게 된다. 이는 기업가치 평가 지표인 주가수익비율(PER)이나 자기자본이익률(ROE)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한국 기업들은 글로벌 기업 대비 주가가 낮게 평가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문제를 오랫동안 겪어왔다. 자사주 소각은 이러한 할인 요인을 완화할 수 있는 대표적인 정책으로 평가된다.
또 다른 효과는 외국인 투자자 유입이다. 글로벌 투자자들은 배당 확대와 자사주 소각 등 적극적인 주주환원 정책을 기업 가치 판단의 핵심 요소로 본다. 이 때문에 대규모 자사주 소각은 해외 투자자들에게 긍정적인 신호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자사주 소각은 배당보다도 직접적인 주주환원 정책으로 평가된다"며 "대기업 중심으로 소각 정책이 확대되면 한국 증시 전반의 밸류에이션 상승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재계에서는 향후 몇 년간 자사주 소각이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국내 기업들이 보유한 자사주 규모가 상당한 만큼 상법 개정에 따라 상당 부분이 소각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자사주 소각과 배당 확대를 중심으로 한 주주환원 경쟁이 본격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기업 지배구조와 자본정책에 변화가 나타나면서 한국 자본시장의 패러다임 역시 점차 '주주 중심 경영'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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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종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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