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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양형 체험’ AI에게 시켜보니
게티이미지뱅크
상습적으로 술주정을 부리던 아들이 어느 날 만취 상태에서 집에 들어와 물건을 부수고 모친을 폭행했다. 이를 본 부친이 아들을 말리다가 홧김에 아들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 부친은 사건 직후 112에 신고를 했고, 순순히 범행 사실을 시인했다. 부지불식간 살인 사건의 피고인이 된 부친에게 적절한 형량은 어느 정도일까.
이 사례는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운영하는 국민 양형 체험 프로그램에 나온 예시 중 하나다. 체험자 중 22.5%는 이 사건의 개요만을 보고 부친에게 징역 5~10년의 실형을 내려야 한다고 판단했다. 징역 3~5년의 실형이 필요하다고 답한 체험자들도 20.1%였다.
하지만 체험자들의 판단은 피고인 아내와 친구의 탄원서, 피고인의 최후진술을 모두 본 뒤 바뀌었다. 피고인이 범행 후에도 도주하지 않고 자수한 점, 죄를 뉘우치고 있다는 점 등이 제시되자 체험자들의 29.8%가 징역형 집행유예를 택했다. 체험 전 집행유예를 선택한 비율이 8.0%에 그쳤던 것과 비교하면 확연히 달라진 변화였다. 무기징역을 선택한 비율도 체험 전 14.2%에서 체험 후 7.1%로 절반 수준이 됐다. 양형위는 19일 “사건 개요만을 보고 극단적 양형(무기징역 등)을 선택했던 체험자가 양형 체험을 통해 진지하게 고민을 한 뒤 합리적인 양형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였다”고 분석했다.
다만 인공지능(AI)의 판단은 달랐다. 국민일보가 챗GPT와 제미나이에 해당 사건을 설명하고 판단을 내리는 실험을 하자 다른 결과가 도출됐다. 앞선 사례로 제시된 살인 사건을 판단해 보라고 맡겼더니 챗GPT는 모든 사정을 듣고도 징역 5년을 택했다.
뺑소니와 마약 사건의 경우도 AI가 체험자들보다 더 센 형량을 택했다. 뺑소니 사건은 심야에 무단횡단하던 보행자를 치고 도주한 사례가 제시됐다. 체험자들은 체험 전 징역 1~3년을 택했다가 피고인과 피해자가 합의한 점, 피고인이 진심 어린 반성문을 썼다는 점 등을 고려하자 벌금형이 적합하다고 형량을 낮췄다. 반면 챗GPT는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택했다.
마약 사건은 피고인이 친구의 택배를 대신 받아주다가 마약 운반 사건에 연루된 사례가 제시됐다. 피고인이 해당 사실을 몰랐다는 점, 탄원서를 두 차례 쓴 점 등이 제시되자 체험자들은 징역 5~10년형에서 징역형 집행유예로 판단을 바꿨다. 그러나 AI의 판단은 달랐다. 챗GPT는 징역 7년, 제미나이는 징역 5년을 택했다. 실제 판결은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이었다.
이는 전후 사정을 고려한 뒤 사람과 AI의 판단이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AI 판사 도입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법대로만 판결할 AI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AI의 판단이 법 감정과 일치할지는 미지수다. 체험자들은 피고인이 중대 범죄를 저질렀더라도 피고인의 처한 상황을 고려한 뒤에는 상대적으로 가벼운 형량을 택했다. 전후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사람은 판단을 바꿀 수 있지만, AI가 어떤 선택을 할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수도권의 한 부장판사는 “판단을 AI가 할 수 있다고 해도 사람의 손을 거치지 않는 한 ‘판결’로 성립하긴 어려울 것”이라며 “재판을 받는 사람들은 법관이 나에게 공감해주길 원하는 것이지, 자로 잰 듯이 정확한 판단을 원하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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