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시티는 자율 주행차와 초고속 통신망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시민이 안심하고 일상을 영위할 수 있는 '보이지 않는 안전망'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도시는 생명력을 얻는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불편한 질문 앞에 서 있다. 과연 우리는 기술의 진보만큼 안전한 도시를 만들고 있는가. 답은 현장에 있다. 그리고 현장의 언어는 숫자다.
■ 반복되는 참사, 외면할 수 없는 숫자
고층 빌딩과 대형 물류창고의 화재는 언제나 같은 공식을 반복한다. 초기 감지 실패, 골든타임 상실, 그리고 돌이킬 수 없는 피해. 건물의 유형은 달랐지만 결말은 하나였다.
▲[오피스빌딩·고층 오피스텔]=2010년 10월 1일, 부산 해운대 마린시티 골든스위트(38층). 4층 미화원 탈의실의 전기 누전 한 건이 발단이었다. 가연성 알루미늄 복합패널이 불쏘시개가 되면서 불길은 불과 20분 만에 38층 꼭대기까지 치솟았다. 화재가 발생한 4층에는 스프링클러가 없었다. 출동한 소방차 사다리는 고층에 닿지 않았다. 7시간여 동안 화마가 건물을 점령했다. 다행히 사망자는 없었지만, 현장에서 나온 한마디가 고층 화재의 본질을 꿰뚫었다.
"화려하고 웅장한 초고층 건물도 화재 앞에서는 한낱 성냥갑에 불과하다."
▲[고층 아파트·주상복합]=2020년 10월 8일 밤 11시, 울산 고층 주상복합(33층). 강풍을 타고 번진 불길은 가연성 외장재를 타고 33층 건물 외벽 전체를 순식간에 삼켰다. 50m 고가사다리차는 상층부에 닿지 않았고, 소방 헬기도 강풍 속에서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16~33층 16가구가 전소됐고 56가구가 반소 또는 부분 피해를 입었다. 영국 BBC를 포함한 다수 외신이 긴급 보도할 만큼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이 건물은 스프링클러 의무화 기준이 완비되기 전인 2009년 준공 건물이어서 당시 법 적용 대상조차 아니었다. 제도의 공백이 만들어낸 화약고였다. 두 사건 모두 사망자가 없었던 것은 기적에 가까웠다.
▲[대형 물류창고]=숫자가 참혹하다. 최근 5년간(2020~2024) 경기도에서만 발생한 물류창고 화재는 81건, 사망자 47명을 포함한 사상자 73명, 재산 피해 5,862억 원이다(경기도소방재난본부, 2025). 연도별로 2020년 13건, 2021년 18건, 2022년 18건, 2023년 25건으로 빈도는 증가추세다. 2020년 이천 물류창고 화재는 38명이 목숨을 잃었다. 2021년 덕평 물류센터 화재에서는 소방관이 순직했다. 초기 8분간 스프링클러가 작동하지 않았고, 수천억 원대의 피해가 발생했다(경향신문, 2022). 2025년 5월 이천 물류센터 화재는 연면적 8만여 ㎡ 규모에서 불길을 잡는 데 5시간 30분이 걸렸다. 건물 안에 보관된 리튬이온 배터리 8톤이 초기 진화를 더욱 지체시켰다.
물류창고가 유독 위험한 이유는 구조에 있다. 층고 10m 내외의 광대형 공간에서는 불씨가 작을 때 발생하는 연기와 열기가 천장의 스프링클러에 닿기 전에 수평으로 확산된다. 스프링클러가 작동할 때는 이미 늦은 경우가 많다. 물류창고 화재의 재산피해 비중은 전체 화재 건수 점유율(3.5%)의 세 배가 넘는 12.1%에 달한다(소방청 화재통계연감). 시설이 대형화될수록 한 번의 사고가 남기는 상흔은 그만큼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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