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 500일…부동산 전문가 50명 설문
이재명 정부가 부동산 시장 안정을 국정 핵심 과제로 내걸고 고강도 규제를 잇달아 내놨지만, 현 정부 출범 이후 서울 아파트값은 18.17%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서울의 아파트 재건축 현장에 대형 크레인이 줄지어 서 있는 모습. 전민규 기자
“부동산 투기 공화국을 벗어나는 게 이 정부의 중심 과제다. 어렵다. 다들 하려고 하다가 안 됐다. 그러나 이 정부는 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18일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매주 공급 상황을 보고받고 있다고도 했다. 그러나 한 달도 안 돼 정부가 스스로 내놓은 성적표는 목표에 크게 못 미쳤다.
국토교통부가 16일 연 첫 주택공급 정례브리핑에 따르면 10월 둘째 주까지 수도권 주택 착공은 9만9000가구 이상으로 올해 목표(26만8000가구)의 37%에 그쳤다. 국토부는 연말까지 목표의 81~88%를 채울 것으로 내다봤지만, 이마저도 남은 두 달 반 남짓 동안 지금까지보다 많은 약 12만~13만6000가구를 더 착공해야 가능하다.
정부는 회복세를 강조했다. 서울의 최근 6개월(3~8월) 비아파트 인허가와 착공이 1년 전보다 각각 84%, 87% 늘었다. 하지만 공공이 주도하는 물량부터 더디다. 올해 공공주택 착공은 목표의 26%, 신축매입주택은 31%에 머물렀다.
공급이 더딘 사이 책임 공방은 거세졌다. 이 대통령은 집값 상승의 원인 중 하나로 2022년 이후 서울시의 공급 축소를 꼽았다. 서울시는 이날 공개한 백서에서 화살을 박원순 전 시장에게 돌렸다. 2012~2020년 정비구역 683곳 중 389곳(57%)이 해제돼 약 43만 가구의 공급 기회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전날 국정감사에서도 여당 의원과 오세훈 시장은 공급 실적과 공급난 책임을 놓고 맞섰다.
이런 가운데 정부 출범 500일을 맞아 부동산 전문가들이 매긴 정책 점수는 100점 만점에 평균 45점이었다. 중앙SUNDAY가 지난 12~16일 학계·연구기관·건설업계 전문가 50명을 설문한 결과, 부정 평가가 74%(‘매우 못했다’ 38%, ‘못한 편’ 36%)에 달했다. ‘잘한 편’은 6%에 그쳤다.
그래픽=이현민 기자
응답자의 72%는 임기 내 공급 목표의 40%도 착공하지 못할 것으로 봤다. 최우선 과제(복수응답)로도 ‘공급 계획의 실질 착공·실행’(62%)이 첫손에 꼽혔고, ‘전·월세 시장 안정’(54%), ‘실수요자 대출 규제 정교화’(48%)가 뒤를 이었다. 대출·거래 규제가 실수요자의 주거 이동을 막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그래픽=이현민 기자
서진형 광운대 교수는 “임대차 3법과 실거주 의무, 토지거래허가제 등 중첩된 규제가 전세 공급을 위축시키고 있다”며 “규제 중심에서 벗어나 시장 기능을 회복하고 공급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진창하 한양대 교수는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을 갖춘 중장기 주택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향후 1년 서울 집값 오를 것” 94%…98%가 아파트 월세 인상 전망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서울 아파트값은 18.17% 올랐다. 지난 정부의 취임 초기와 비교해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강남권 집값은 주춤하지만 비강남권의 상승 압력은 여전하고, 서울 강북권에서는 전·월세 부담마저 가파르게 커지고 있다.
그래픽=이현민 기자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18일 기자회견에서 강남권 집값이 내려가고 다른 지역은 오르는 현상을 두고 “일종의 평탄화 작업이 진행되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지난 8월 30일에는 집값 급락에 대비해 공공주택용 주택을 대량 매입하는 시스템을 준비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숫자가 보여주는 평탄화는 ‘하향’이 아닌 ‘상향’ 쪽이다. KB부동산에 따르면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1년 4개월간(2025년 6월~2026년 9월)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18.17% 상승했다. 취임 후 같은 기간을 기준으로 문재인 정부(11.91%)보다 6.26%포인트 높다. 박근혜 정부 초기에는 0.61%, 윤석열 정부 초기에는 10.08% 각각 하락했다. 집값은 금리와 유동성, 공급 여건 등 여러 변수에 좌우되지만, 가격 안정을 핵심 과제로 내세운 정부로서는 부담스러운 성적표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서울 집값 18% 올라
전문가도 급락보다 추가 상승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이번 설문에서 94%가 향후 1년간 서울 아파트값 상승을 예상했고, 5% 넘게 오를 것으로 본 전문가도 48%였다. 하락 전망은 2%에 그쳤다. 정부가 급락에 대비하는 동안 시장은 반대 방향을 보고 있는 셈이다.
그래픽=이현민 기자
강남과 비강남의 전망은 뚜렷하게 엇갈렸다. 강남3구(강남·서초·송파)의 집값 상승을 예상한 전문가는 48%에 그쳤고, 보합(20%)과 하락(32%) 전망을 합치면 절반을 넘었다. 반면 비강남권은 94%가 상승을 예상했고, 60%는 5% 넘게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강남의 가격 조정이 서울 전체의 안정으로 이어지기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지역으로 상승 압력을 옮길 수 있다는 얘기다.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장은 “서울 매매시장은 대출 규제로 상승 폭이 제한되겠지만 공급 부족으로 완만한 상승세를 이어갈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불안은 임대차시장에서 더 뚜렷하다. 월세 상승의 충격은 강남보다 비강남권에서 컸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1~8월 서울 아파트 월세는 6.69% 올랐다. 노원구가 11.13%로 가장 높았고 성북구(10.20%), 성동구(9.33%), 광진구(8.67%)가 뒤를 이었다. 반면 강남구는 2.42%에 그쳐, 노원구 상승률이 강남구의 4.6배에 이르렀다.
상승 속도도 가파르다. 지난 8월 서울 아파트 월세는 한 달 새 0.91% 올라 직전 10년간 8월 평균 상승률(0.12%)의 7배를 넘었다. 올해 1~8월 서울 아파트 전셋값도 7.35% 올라 매매가격 상승률(7.52%)에 육박했다. 대출 규제로 매수 여력이 줄어든 무주택자가 임대차시장에 머무는 데다 임대 매물까지 줄면 세입자의 부담은 더 커질 수 있다.
전망도 어둡다. 서울 아파트 전셋값 상승을 예상한 전문가는 96%였고, 이 가운데 68%는 5% 넘는 상승을 점쳤다. 월세 역시 약 98%가 상승을 전망했고, 10% 넘게 오를 것이라는 응답도 42%에 달했다. 윤수민 NH농협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전·월세난은 내년 이후 본격적으로 확대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진미윤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월세 세 자릿수 시대다. 주거비 부담 완화를 정책의 우선순위에 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제 개편이 임대차시장 불안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세제 개편의 영향을 묻는 질문(복수응답)에 80%가 ‘전월세 물건 감소’를 꼽았다. ‘증여 등 우회 거래 증가로 매물 잠김’은 64%, ‘초고가 주택 가격 조정’은 46%였다. 반면 다주택·비거주 보유자의 매물이 늘어날 것이라는 응답은 22%에 그쳤다. 한승백 한국공인중개사협회 대의원은 “다주택자와 실수요자를 동시에 옥죄는 규제가 매물 잠김을 부르고, 이것이 전·월세난과 월세화 부담으로 번지고 있다”고 말했다.
연말 만료되는 토지거래허가구역 규제도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우세했다. 서울 전역 규제를 일부 해제해야 한다는 응답이 56%, 전면 해제가 24%로, 80%가 규제 완화를 요구했다. 현행 유지 의견은 16%였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토지거래허가구역은 선별적으로 해제하고, 3기 신도시 용적률 상향 등으로 입주 물량을 늘려 매수 심리를 안정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일각 “흔들림 없는 정책 추진 땐 성과”
공급 확대의 실현 가능성에도 의문이 제기됐다. 정부의 수도권 주택 공급 목표 가운데 임기 내 착공 물량이 40%에 못 미칠 것으로 본 전문가가 72%에 달했다. 공사비 상승과 프로젝트파이낸싱(PF) 경색, 인허가 지연 등이 걸림돌로 꼽혔다. 정민하 지인플러스 대표는 “주택시장에 정책 개입은 필요하지만 시장이 자연스럽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공급에서 수익이 나지 않는 구조를 만들어놓고 공급을 늘리라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문길주 대신이엔디 회장은 “브리지론과 PF 금융 규제를 완화하고, 소규모 주택과 준주택의 주택 수 산정 제외 등을 통해 민간 공급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정부의 정책 의지에 기대를 거는 시각도 있다. 이상규 경매락 대표는 “기득권층의 저항이 만만치 않겠지만, 흔들림 없는 정책 기조로 국민 신뢰를 얻는다면 성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의지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문상동 구도디앤씨 대표는 “부동산은 생물이다. 대책의 가짓수보다 실행력과 정밀도로 승부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설문 응답해주신 분(가나다순)
강영훈(부동산스토리 대표) 고준석(연세대 상남경영원 교수) 김광일(티피랩스 대표) 김영수(한국안전기술건설원 대표) 김인만(김인만부동산경제연구소 소장) 김제경(투미부동산컨설팅 대표) 김지엽(성균관대 건축학과 교수) 김진명(가람감정평가법인 이사) 김태욱(토문건축사사무소 이사) 김태현(트라움그룹 상무) 김형일(건행경제연구소 소장) 김홍규(레클리스리얼티 대표) 남혁우(우리은행 부동산연구원) 류창화(법무법인 화우 부동산전문위원) 문길주(대신이엔디 회장) 문상동(구도디앤씨 대표) 문서영(우솔감정평가법인 이사) 문천수(대현에스씨엠 대표) 박기용(케이에스엠기술 부사장) 박민수(더스마컴퍼니 대표) 박원갑(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위원) 박지민(월용청약연구소 대표) 박합수(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 반성우(블루하우스코리아 대표) 서진형(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 손성현(DL이앤씨 부장) 송승현(도시와경제 대표) 양지영(신한프리미어 패스파인더 전문위원) 윤수민(NH농협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 윤지해(부동산평론가) 윤형석(광운대 건설법무대학원 교수) 이동현(하나은행 수석전문위원) 이범구(전 산업은행 지역개발금융단장) 이상규(경매락 대표) 이상영(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 이은형(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이주현(지지옥션 전문위원) 이필용(건영씨앤피 이사) 이한웅(미래에셋컨설팅 팀장) 이현권(법률사무소 니케 대표변호사) 이현정(즐거운경매 대표) 전필경(디딤플래닛 대표) 정민하(지인플러스 대표) 정보현(NH투자증권 부동산연구위원) 조은상(리얼투데이 이사) 진미윤(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 진승만(태웅제이앤씨 대표) 진창하(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한승백(한국공인중개사협회 대의원) 함영진(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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