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맹학교생들 법원 찾아
시각장애 김동현 판사와 대화
서울법원종합청사를 방문한 시각장애 학생들이 법복을 입고 법대에 앉아 있다. 백성현 기자
점자로 엮인 5쪽짜리 판결문 위로 학생들의 손끝이 조심스레 움직이자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고등법원이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 아나요?”라는 판사의 질문에 “2심이요!”라는 씩씩한 대답이 돌아오자 곁에 있던 교사들과 판사들의 따뜻한 박수가 쏟아졌다. 국립서울맹학교 부회장을 맡고 있는 김 모 학생은 “교과서에서만 보던 곳에 와서, 책 속의 분들을 직접 뵈니 무척 설렌다. 오늘 많이 배우고 가겠다”라며 활짝 웃었다.
4월 17일 서울시 서초동 서울법원종합청사 동관에 국립서울맹학교 학생 24명과 교사 11명이 방문했다. 법조인과 사회과 교사를 꿈꾸는 학생들을 위해
김대웅
(사법연수원 19기) 서울고법원장 등 법관들과 시각장애인 판사인
김동현
(변호사시험 4회) 대구지법 판사가 마중을 나왔다.
견학의 하이라이트는 김 판사와의 만남이었다. 미래의 후배들을 만나기 위해 경기도 고양시에서 한걸음에 달려온 그는 “하나하나 단계를 밟다 보면 여러분도 충분히 할 수 있다”며 말문을 열었다. 김 판사는 “시각장애인 판사가 계속 늘어나려면 누군가는 계속 나와야 한다. 주저하지 말고 연락해 달라”며 동기를 부여했다.
그는 배석판사 시절 교통사고 신호등 색깔이 쟁점이 된 사건을 언급하며, 비장애인 재판장과 자신의 의견이 크게 다르지 않았던 일화를 소개했다. 시각장애가 법조인으로서 결코 단점이 아님을 강조한 것이다. 로스쿨 2학년 때 사고로 실명한 그는 “주어진 정보가 한정적이다 보니 주변의 도움을 받으며 매사에 더 신중해졌다”며 “음성 지원 파일과 타이핑 시험이 보편화된 지금, 시각장애인이라고 불리할 것은 없다”고 덧붙였다.
김 판사가 질문을 받겠다고 하자 10명이 넘는 학생이 번쩍 손을 들었다. 서로 ‘잘했어’라며 토닥이는 격려 속에서 AI 시대 시각장애 법조인의 역할부터 삼권분립의 의미, 재판에서의 보람 등 질문이 쏟아졌다. 김 판사는 사회 교사를 꿈꾸는 학생에게 “법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 어울리기 위한 약속”이라는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앞서 학생들을 환영한 김대웅 법원장은 “법원은 국민의 기본권과 약자를 보호하며 법치주의라는 큰 원칙이 시작되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이후 민사대법정으로 이동한 학생들은
유제민
(37기) 서울고법 고법판사로부터 법정 구조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당사자의 필요에 따라 판결문을 점자나 음성으로 무료 제공한다는 사법지원제도에 학생들은 깊게 고개를 끄덕였다.
견학의 마지막, 법복을 입고 법대에 앉은 아이들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었다. 어떤 사이즈가 맞을지 재잘거리며 서로의 옷매무새를 다듬어주고, 선생님들은 ‘정말 멋지다’며 연신 셔터를 눌렀다. 따뜻한 격려와 환대 속에서 미래 법조인을 향한 학생들의 꿈도 한 뼘 더 깊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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