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TI 하루 새 97달러→106달러…환율 재차 1520원 육박
외국인 11거래일 연속 순매도, 삼성전자·SK하이닉스 동반 급락
전날 8% 급등으로 5400선을 되찾았던 코스피가 2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국민 연설을 계기로 하루 만에 4% 넘게 급락했다. 전일 형성됐던 종전 기대감이 단 하나의 연설로 완전히 되돌려진 모습이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코스피는 이날 전장보다 244.65포인트(4.47%) 내린 5234.05에 마감했다. 지수는 5551.69로 출발해 1%대 상승세를 보였으나 한국 시간 오전 10시 트럼프 대통령의 백악관 연설을 기점으로 하락 전환했고, 한때 5170.27까지 밀렸다. 장중 코스피200 선물 가격 급락으로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에 매도 사이드카가 잇따라 발동되며 전날의 매수 사이드카와는 정반대 양상이 연출됐다.
트럼프 대통령 발언의 초점은 종전이 아니라 공세 지속에 맞춰졌다. 그는 연설에서 “앞으로 2∼3주에 걸쳐 이란을 극도로 강하게 타격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와 관련해서도 중동산 원유·가스에 의존하는 국가들이 스스로 해협을 지키거나 미국산 석유를 구입하라고 언급해 조기 종전 선언을 기대하던 시장에 공습 경고와 에너지 안보 부담을 동시에 던졌다.
금융시장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5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장중 97달러대에서 움직이다 연설 이후 106달러대로 급등했고, 브렌트유도 100달러 아래에서 108달러 이상으로 치솟았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18.4원 오른 1519.7원에 마감했고, 장중 한때 1524.1원까지 오르며 이틀 만에 1520원선을 다시 넘어섰다. 미 10년물 국채 금리는 4.3783%로 전날 대비 6bp 상승해 안전자산 선호와 인플레이션 우려가 동시에 반영됐다.
수급은 외국인과 기관의 동반 순매도, 개인의 저가 매수 구도로 정리됐다. 유가증권시장에서 외국인과 기관은 각각 1364억원, 1조4526억원 순매도했고 개인은 1조2065억원 순매수했다. 외국인의 코스피 현물 순매도는 이날까지 11거래일 연속으로 이어지며 2023년 9∼10월 이후 약 2년 6개월 만에 가장 긴 순매도 기록을 다시 썼다. 코스피200 선물시장에서도 외국인은 3055억원 순매도로 돌아섰고, 코스닥시장에서는 외국인과 기관이 914억원, 5055억원 순매도, 개인이 6161억원 순매수로 대응했다.
대형 반도체주와 경기민감 업종 전반이 큰 폭의 조정을 받았다. 삼성전자는 5.91% 급락하며 17만원대로 밀렸고, SK하이닉스도 7.05% 하락해 이른바 ‘83만닉스’ 수준으로 내려섰다. 현대차, SK스퀘어, 두산에너빌리티, 셀트리온 등 시가총액 상위 종목들이 일제히 약세를 보였고, 코스닥에서는 전날 하한가를 기록했던 삼천당제약이 이날도 18.15% 급락하며 사흘 연속 폭락했다. 반면 전쟁 장기화 가능성이 부각되면서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현대로템 등 방산주는 6%대 강세를 보이며 시장 내 위험 회피 수요를 흡수했다.
아시아 증시도 비슷한 방향으로 움직였다. 일본 닛케이255는 2.38% 하락했고, 대만 가권지수도 1.82% 내렸다. 중국 상하이종합지수와 선전지수, 홍콩 항셍지수까지 모두 1% 안팎 약세를 나타냈다. 글로벌 자산운용사들은 "이번 연설로 전쟁 종식 기대보다 분쟁 장기화 가능성이 다시 부각됐다"며 "위험자산 회피 심리가 강해질 수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이날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의 거래대금은 각각 33조2480억원, 15조6300억원이었고, 대체거래소 넥스트레이드 거래대금은 20조5850억원으로 집계됐다.
국내 증권가는 이번 발언을 전쟁 종식 의지의 후퇴라기보다 협상 압박 수위를 높이려는 전술적 메시지로 해석하면서도, 단기적으로는 변동성 확대 구간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이란이 협상에서 지연 전략을 펴는 가운데 미국이 군사·에너지 카드를 동시에 활용해 주도권을 유지하려는 구도가 이어지고 있다는 평가다. 핵심 변수는 호르무즈 해협 통항과 유가 경로다. 한국은 수입 원유의 상당 부분을 중동에 의존하고 이 물량 대부분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만큼, 해협 봉쇄와 유가 급등 리스크가 당분간 한국 증시와 환율, 금리를 함께 흔드는 구조가 지속될 수 있다.
사진=연합뉴스
민병권 기자 kdf@kdf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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