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전선, 해저케이블 포설선으로 해상풍력·HVDC 시공 병목 장악
-LS에코에너지, 베트남 AI 데이터센터 전력망 공급 디지털 핵심 진입
대한전선의 두번째 CLV ‘스칸디 커넥터’(Skandi Connector)호 [사진=대한전선]
전선업이 달라지고 있다. 예전에는 구리를 뽑아 케이블을 만들고, 납품하면 끝나는 제조업에 가까웠다. 지금은 아니다. AI 데이터센터, 해상풍력, 국가 간 전력망, 초고압직류송전(HVDC)이 한꺼번에 커지면서 전선은 산업의 부품이 아니라 국가 인프라의 목줄이 됐다. 전기를 누가 만들고, 어디로 보내고, 누가 마지막까지 연결하느냐가 산업 경쟁력과 에너지 안보를 가르는 시대가 온 것이다.
이 변화의 한복판에서 대한전선과 LS에코에너지가 서로 다른 전선을 잡았다. 14일 대한전선은 1만톤급 해저케이블 전용 포설선 ‘스칸디 커넥터’를 인수하며 바다 밑으로 들어갔다. LS에코에너지는 베트남 최대 통신사 비엣텔의 60MW급 AI 데이터센터 전력망에 케이블을 공급하며 동남아 AI 인프라 시장으로 들어갔다. 하나는 해저 전력망, 다른 하나는 데이터센터 전력망이다. 그러나 본질은 같다. 전력망의 병목을 누가 쥐느냐다.
대한전선이 확보한 스칸디 커넥터는 단순한 선박이 아니다. 한 번에 해저케이블 7000톤을 실을 수 있고, 지금까지 27개 프로젝트에서 약 1300km의 해저케이블을 포설한 검증된 자산이다. 기존 팔로스호에 이어 두 번째 해상풍력용 CLV를 확보하면서 대한전선은 국내에서 해상풍력용 포설선 선대를 갖춘 거의 유일한 사업자가 됐다. 해저케이블 시장에서 포설선은 공장 설비보다 더 중요한 병목이 될 수 있다. 케이블을 만들어도 바다에 깔 배가 없으면 프로젝트는 멈춘다.
해상풍력의 경제성도 이 지점에서 갈린다. 터빈이 전기를 만들어도 해저케이블이 육상 계통까지 연결하지 못하면 전기는 시장에 들어오지 못한다. 특히 서해안처럼 수심이 얕고 조류가 강한 해역에서는 선박의 위치를 정밀하게 유지하는 DP2 시스템, 대형 캐로셀, 텐셔너, 평저형 선체가 시공 성패를 좌우한다. 대한전선이 스칸디 커넥터를 확보한 것은 케이블 생산 기업에서 해저 전력망 시공 기업으로 넘어가겠다는 뜻에 가깝다.
더 큰 의미는 HVDC에 있다. 재생에너지는 발전지가 수요지와 떨어져 있다. 해상풍력은 바다에서 전기를 만들고, AI 데이터센터와 산업단지는 육지에서 전기를 먹는다. 이 간극을 메우는 기술이 HVDC와 해저케이블이다. 장거리 송전, 국가 간 전력망 연계, 해상풍력 외부망이 커질수록 해저케이블 포설 능력은 전략 자산이 된다. 대한전선이 팔로스와 스칸디 커넥터를 함께 운용한다는 것은 프로젝트별로 선박을 나눠 투입할 수 있는 시공 선택권을 갖게 됐다는 의미다.
LS에코에너지의 무대는 동남아 AI 전력망이다. 베트남 비엣텔이 하노이 인근 신도시에 구축하는 60MW급 AI 데이터센터에 전력 케이블을 공급한다. 60MW는 4만~5만 가구가 동시에 쓰는 전력 규모다. AI 데이터센터는 반도체와 서버만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GPU가 늘어날수록 전력 사용량과 발열이 폭증한다. 전기가 흔들리면 서버가 멈추고, 냉각이 흔들리면 연산 효율이 무너진다. 그래서 AI 인프라의 진짜 하부 구조는 전력 케이블, 변전 설비, 배전망, 광통신망이다.
베트남이라는 위치도 중요하다. 동남아 데이터센터 투자는 싱가포르에서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태국, 베트남으로 퍼지고 있다. 싱가포르는 전력과 부지 제약이 크다. 글로벌 빅테크와 통신사들은 전력이 있고, 토지가 있고, 성장하는 디지털 소비시장이 있는 곳으로 이동한다. 베트남은 제조업 기지에서 AI·클라우드 인프라 거점으로 올라서려는 단계다. LS에코에너지는 하이퐁 생산법인 LS-VINA를 통해 현지 생산 기반을 갖고 있다. 전력망 사업에서 현지 생산은 단가 문제가 아니라 납기와 정치적 신뢰의 문제다.
두 회사를 함께 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한전선은 전기를 바다 밑으로 옮기는 능력을 확보했고, LS에코에너지는 전기를 AI 도시 안으로 밀어 넣는 능력을 보여줬다. 전력망의 앞단과 뒷단이다. 앞단에는 해상풍력과 HVDC가 있고, 뒷단에는 데이터센터와 초고밀도 배전망이 있다. 이 둘이 연결될 때 AI 산업은 비로소 작동한다. 전기는 이제 보조 인프라가 아니라 AI 산업의 원재료다.
지경학적으로 보면 이 흐름은 더 선명하다. 미국과 유럽은 중국산 태양광·배터리·전력장비 의존도를 줄이려 하고, 아시아 각국은 AI 데이터센터 유치를 위해 전력망을 키우고 있다. 전선과 해저케이블은 이 두 흐름의 교차점에 있다. 바다 밑 케이블은 국가 간 전력 거래와 해상풍력 연결망을 만들고, 데이터센터 케이블은 AI 연산 주권을 떠받친다. 누가 케이블을 만들고, 누가 깔고, 누가 유지보수하느냐가 곧 산업 주권의 문제가 된다.
대한전선의 스칸디 커넥터 인수는 이 병목 가운데 ‘시공권’을 잡는 행보다. LS에코에너지의 베트남 공급은 ‘수요지 전력망’을 잡는 행보다. 하나는 바다의 전력 고속도로이고, 다른 하나는 AI 도시의 혈관이다. 전선업의 가치는 이제 톤당 판매가격이 아니라 프로젝트를 끝까지 수행할 수 있는 통합 능력에서 나온다. 설계, 생산, 운송, 포설, 배전, 통신까지 묶어 낼 수 있는 기업만이 다음 전력망 투자 사이클에서 살아남는다.
전선업계 관계자는 “AI 경쟁은 반도체 경쟁으로 시작했지만, 실제 병목은 전력망에서 나타나고 있다”며 “해저케이블 포설선과 데이터센터 전력 솔루션을 가진 기업은 앞으로 단순 기자재 업체가 아니라 국가 전력 인프라를 설계하는 전략 기업으로 평가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
[뉴스로드] 최지훈 기자 jhchoi@newsroa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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