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선형 산업부 차장
중동의 화약고로 불리는 호르무즈 해협의 통제권 변화가 한국 경제와 산업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란의 해협 통행료 징수 시도와 무력 충돌에 따른 봉쇄 가능성, 미국의 공급망 재편 압박이라는 파고가 동시에 몰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한 지정학적 리스크를 넘어 국내 경제, 산업계의 고원가 구조를 고착화하고 에너지 안보를 위협하는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가장 즉각적인 위협은 이란이 추진 중인 이른바 호르무즈 톨게이트의 현실화다. 이란이 해협 통행료 징수를 본격화할 경우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 1척당 약 200만달러(약 30억원) 수준의 추가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된다. 중동 원유 의존도가 70%를 상회하는 국내 정유 4사의 경우 연간 수천억원에 달하는 비용 부담을 떠안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이는 정제마진의 급격한 축소로 이어져 정유업계의 수익 구조를 근본적으로 훼손할 수 있는 상황이다.
원료인 나프타를 중동에 의존하는 석유화학 업계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원가 상승분이 제품 가격에 즉각 반영되기 어려운 시장 구조상 생산할수록 손해가 발생하는 역마진 구조가 일상화될 우려가 있다. 에너지 가격 상승은 기초 소재 가격 인상을 촉발하고 이는 다시 건설, 자동차, 가전 등 전방 산업 전반으로 전이돼 제조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연쇄 반응을 일으킬 것으로 전망된다.
중동 분쟁의 여파는 반도체 공정에 필수적인 자원 수급에도 직격탄을 날리고 있다. 전 세계 반도체용 헬륨 공급의 30%를 담당하는 카타르 라스라판 산업단지가 피해를 입으면서 공급망 전반에 비상이 걸렸다.
알루미늄, 액화천연가스(LNG) 등 필수 자원의 수급난은 PC와 가전 산업으로 번지고 있다. 델과 HP 등 주요 PC 업체들은 올해 노트북 가격을 최대 20% 인상할 전망이다. 소니도 플레이스테이션5의 가격을 올리는 등 소비자에게 비용이 전가되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
가장 우려되는 상황은 무력 충돌에 따른 해협 봉쇄다. 호르무즈 해협은 국내 전력 생산의 30%를 책임지는 LNG 공급망의 핵심 축이다. 비록 수입선 다변화로 해협 의존도를 낮추고는 있지만, 이 물량이 차단될 경우 전력 수급의 마지노선이 무너질 가능성도 있다. 이와 함께 전쟁 위험 보험료의 가파른 상승은 반도체와 자동차 등 한국의 주력 수출 품목의 물류비용을 가파르게 상승시켜 수출 전선에 심각한 타격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압박도 새로운 변수로 떠올랐다. 한국에 자국산 에너지 구매를 강요하는 전략을 더 강화할 가능성도 있다. 미국산 에너지는 수송 거리와 인프라 비용 탓에 중동산 대비 도입 비용이 20~30%가량 높게 형성될 것으로 관측된다. 여기에 원·달러 환율이 1500원을 상회하는 고환율 시대가 이어질 경우 한국 기업들은 배럴당 1달러의 통행세와 고비용 에너지, 고환율이라는 삼중고에 직면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한국 경제와 산업계에 계속되는 악조건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와 기업이 한마음 한뜻으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노력하고는 있지만 한계치에 다가서고 있다. 공급망 등 기존 시스템을 바꾸는 데는 시간과 비용까지 들어 난제로 다가오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의 역할이 가장 중요할 수밖에 없는 것은 지정학적 리스크가 개별 기업의 힘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국가 안보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복합 위기를 정면 돌파하지 못하면 K-산업의 미래는 장기 저성장의 늪에 빠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갖고 국가적 역량을 실행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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