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경식 경총 회장이 본 경제 현안
대담= 정욱 산업부장
기업은 국가경제 심장과 같아
잠재적 범죄자 취급 여론 우려
고용유연성 강조한 李대통령
노동개혁 속도 더 내주길 기대
지난 17일 손경식 경총 회장이 서울 마포구 경총회관에서 한 인터뷰에서 노란봉투법, 상법 개정 등 경제 현안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승환 기자
"근로자 입장도 더 배려할 필요가 있지만 지금은 노조 쪽에만 무게가 실린 '노조 전성시대'다. 기업이 다시 신명 나게 뛸 수 있도록 징벌적 규제부터 걷어내고 사기를 올려줘야 한다."
올해 2월 다섯 번째 연임에 성공한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87)은 60년 이상 현장을 누빈 우리 경제의 산증인이다. 그는 인터뷰에 내내 노란봉투법, 배임죄, 정년 연장까지 노동·재계 현안에 대한 의견을 쏟아냈다. 기업을 경제의 핵심으로 대우하고 기업가들이 신명 나게 뛸 수 있도록 규제의 족쇄를 풀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일관된 메시지였다.
-경총 회장을 다섯 번째 연임하게 됐는데, 올해 중점 과제는.
"중책을 맡게 돼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올해는 개정 노조법 대응, 정년 연장 논의, 산업재해 예방 등 현안이 산적해 있다. 기업 중심의 태스크포스(TF)를 상시 운영하고 경영계 목소리가 정부와 국회, 국민께 제대로 전달될 수 있도록 역량을 집중하겠다."
-노조에 힘이 실리며 기업인들이 위축됐다는 평가가 많다.
"기업은 단순히 돈을 버는 곳이 아니라 국가 경제의 심장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기업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거나 규제해야 할 대상으로만 보는 시각이 너무 강하다. 겹겹이 쌓인 과도한 형벌 리스크 속에서 어떤 경영인이 과감한 신사업 투자에 나설 수 있겠나. 이대로 가다간 경영자들이 몸을 사리고 소극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 규제 혁신으로 기업가정신이 발현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곧 나라를 살리는 길이다."
-삼성전자 1세대로서 최근 성과급 갈등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1970년대 삼성전자가 반도체 기틀을 닦을 때 우리(삼성전자공업·현 삼성전자)는 다른 계열사보다 급여를 20%씩 적게 받으면서도 아무 말 하지 않고 밤낮으로 일했다. 반도체는 전형적인 사이클 산업이다. 호황기 이익은 곧바로 차세대 기술과 설비에 쏟아부어야 살아남는다. 지금은 글로벌 재투자 전쟁 시기인데, 동종 업계 눈치만 보며 임금을 과도하게 올리는 건 스스로 경쟁력을 갉아먹는 일이다. 일시적으로 이익이 많이 났다고 돈 번 걸 다 갈라 먹어선 안 된다."
-노란봉투법 시행 한 달 평가한다면.
"쪼개기 파업 리스크가 수치로 현실화됐다. 법 시행 한 달 만에 교섭 단위 분리 신청만 117건이다. 교섭창구 단일화는 노사가 오랜 진통 끝에 어렵게 정착시킨 원칙이다. 그걸 다시 허무는 방향으로 가면 과거에 겪었던 혼란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 이게 수용되면 파업 일상화는 시간문제다."
-원청에 대한 사용자성 인정 사례가 많은데.
"한화오션 식당 급식업체 노동자들까지 원청에 직접 교섭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이런 식이면 예를 들어 백화점 매장을 빌려 입점한 시계 수리점 직원들까지 백화점 사장과 교섭하겠다고 나올 수 있다. 급식 노동자는 급식업체 사장과 계약한 사람들이다. 원청이 개입할 영역이 아니다."
-포스코의 하청 직고용 결정 후 관련 요구도 늘고 있다.
"포스코는 과거 직고용을 했다가 본사가 더 중요한 사업에 집중하기 위해 일부 업무를 하청으로 전환했고, 여러 문제가 발생하니 이번에 다시 직접 고용하겠다고 결정한 것이다. 경영 판단상 문제를 노조 문제(노란봉투법 영향)로 보긴 어렵다고 본다."
-노란봉투법으로 인한 현장 혼란을 줄이려면 어떤 보완 조치가 필요한가.
"하청 노조의 본래 사용자는 하청 기업이다. 원청에 교섭을 요구하려면 산업안전처럼 원청의 사용자성이 명확히 인정되는 사안에 한해야 한다. 범위를 벗어난 요구까지 수용하면 노사 갈등만 커진다. 교섭 거부에 대한 형사처벌 조항도 손봐야 한다. 사용자 범위가 모호한 상황에서 형사처벌까지 하면 기업 경영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이재명 대통령의 노동 정책 기조를 어떻게 평가하나.
"역대 대통령들에 비해 고용 유연성의 중요성을 아주 강하게 언급하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대통령께서 실용주의적 관점에서 노동 개혁의 고삐를 늦추지 않기를 기대한다. 물론 고용 유연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생긴다면 기업도 사회안전망 확충에 함께 책임을 다해야 한다."
-하반기 국회에 바라는 입법 과제 중 가장 시급한 것은.
"무엇보다 배임죄의 대대적인 손질이다. 우리나라 배임죄는 적용 범위가 너무 넓고 모호하다. 특히 이득액이 50억원을 넘으면 '5년 이상 또는 무기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사실상 살인죄와 맞먹는 수준이다. 독일은 최대 5년, 일본은 최대 10년에 불과하다. 한국 기업은 이렇게 규제를 받고 있고, 외국 기업은 안 받는다면 한국 기업이 경쟁력이 있겠나. "
-지난 60년간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IMF) 때였다. 정말 놀랐고 힘든 시기였다. 하지만 그때 국민이 자발적으로 '금 모으기 운동'을 하며 나라와 기업을 걱정해주셨다. 기업인들도 그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고, 위기를 극복할 힘을 얻었다."
손경식 경총 회장
△1939년 서울 출생 △1957년 경기고 졸업 △1961년 서울대 법학과 졸업 △1968년 미국 오클라호마주립대 대학원 졸업(MBA) △1968년 삼성전자공업(현 삼성전자) 입사 △1991년 삼성화재 대표이사 부회장 △1994년 CJ 대표이사 회장 △1995년 CJ그룹 회장 △2005~2013년 대한·서울상공회의소 회장 △2011~2013년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위원장 △2018년~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5연임)
[정지성 기자 정리]
댓글
0